“우주의 모든 것은 자연의 기본적인 힘에 의해 정해집니다. 그 힘의 세기는 기본 상수라고 불리는 숫자로써 표현됩니다. 상수는 너무나도 센시티브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면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이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확해야 했는지를 나타냅니다.”(Laura Danly, 그리피스 천문대 소장, 천문학자)
“자연의 상수와 법칙 등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존재하게 하려고 조정되었다는 생각을 가져야할 것 같습니다.”(Leonard Susskind, 스탠포드대 물리학 교수, 끈 이론의 선구자)
현대 우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천문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우연으로 존재하기에는 불가능한 확률로 아주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우주의 미세 조정’으로 부르는데, 우주는 전 세계 바닷가의 모든 모래들 중 단 하나만 더하거나 빼는 경우의 수 이상의 확률로 그 존재 여부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행 17:24,25)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사 45:18)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가 거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온 우주를 세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 3:2)는 말씀처럼 인간은 실수가 많기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절대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실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도는 완전”(시 18:30)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福) 역시 완전합니다.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이란 ‘완전(完全)’의 사전적 의미처럼, 하나님의 복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아래의 말씀들에서 소개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부분은, 하나님은 ‘범사’ 곧 ‘모든 일’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특정한 일에 있어서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보기에 어떠하든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완전한 복을 얻게 되면 온전히 즐거워할 수 있고,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 16:15)
“항상 기뻐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많은 이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잘 되거나 바라는 어떤 것들을 얻게 될 때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고 기뻐하며 감사해하는데, 어떤 조건을 따라 부분적으로 기뻐하고 감사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복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된 복을 얻게 되면 반드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온전히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설령 모든 것이 늘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늘 유익을 준다.”(찰스 스펄전)
스펄전의 위의 언급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일은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복이 틀림이 없지만 늘 즐겁지는 못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범사가 하나님의 복이라면 당연히 범사에 감사해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요? 이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위한 하나님의 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위와 같이 성경은 인간을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에서는 몸과 영혼으로만도 구분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삼분설이니 이분설이니 하면서 한쪽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둘 다 표현하고 있기에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봅니다. 스펄전은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지하는 중생론은 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오직 육과 혼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나, 그가 거듭나게 되면 새롭고도 고상한 본성 곧 '영'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세 부분 곧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된 존재가 되고, 영이 세 부분 가운데 지배적 능력이 됩니다."(찰스 스펄전, The Soul Winner p.22)
"작가들은 인간을 몸과 정신을 가진 두 부분으로만 표현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들을 표현하는 데에는 그러한 표현이 맞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몸(body)과 혼(soul), 그리고 영(spirit)'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몸은 혼의 지배를 받고, 혼은 영의 지배를 받습니다."(찰스 스펄전, 1858년 6월 20일 주일설교)
삼분설과 이분설은 표현의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신차를 설명할 때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에는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지만 세밀하게 설명할 때에는 내부 안에서도 엔진파트와 구동파트 등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둘 다 내부에 있지만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외부의 물질 세계와 접촉되는 외적 부분과 내부의 정신 세계와 접촉되는 부분으로 크게 나눌 때에는 몸과 영혼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만, 내부의 정신 세계를 자세히 설명할 때에는 단순한 정신 세계를 가진 혼과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를 갖는 영은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의해야 될 점은, 몸과 혼과 영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르기에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복들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중 어떤 것은 몸에는 유익하지만 혼과 영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축복은 영과 혼에는 유익을 주지만 몸에는 유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이해하려면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인인 몸과 혼과 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몸에게는 몸에게 맞는 복을, 혼에게는 혼에게 맞는 복을, 영에게는 영에게 맞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범사를 만날 때 하나님이 어떤 부분에 축복을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일인지를 헤아려야 됩니다.
“예일대학교의 생화학자인 헤롤드 J. 모로위츠는 인간 생명은 6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헤모글로빈은 그램당 285달러 ... 프로클랙틴은 그램당 175만 달러라는 것이다.”(한국일보, 2009.11.12)
위는 인간의 구성 중 몸에 관한 가치에 대한 기사입니다. 인간은 몸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욕구들을 추구하며,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최고다’는 말처럼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면 쉽게 만족해합니다. 하지만 몸의 만족만으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혼(魂), 곧 정신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엘리자베스 여왕 1세)
“작가인 롤링은 그간 인세 수입만 11억 5,000만 달러(1조 3,100억 원)를 벌었고, 2016년 기준 해리포터 시리즈는 약 250억 달러(한화 약 28조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시사저널, 2017.6.26)
위의 작가들처럼 정신은 상상력이나 창의력 등을 발휘하는데, 그 가치는 몸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신 역시 필요로 하는 여러 욕구들이 있어, 사람들은 몸의 만족이 채워지면 음악, 독서, 오락, 게임 등을 통해 혼의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몸과 혼의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도 온전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란 말처럼, 인간에게는 영(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은 영적인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 종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은 영원히 존재하기에 유한한 천하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영으로, 영을 위한 축복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위와 같이 영은, 손의 모양을 따라 장갑이 만들진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졌기에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이 만족할 때 인간은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몸과 혼, 그리고 영을 위한 행복을 모두 준비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8,9)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의문 중에 하나가 에덴 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의문은 하나님의 본심을 모를 때 가지게 되고 거기서 오해가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는 말씀처럼, 모든 것에 복을 주시는 것이기에 선악과 역시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 그리고 영으로 구성된 인간의 무엇을 위한 복이냐는 것입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 2:16,17)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낙원인 에덴 동산에 먹을 수 있는 실과와 먹지 말아야 되는 실과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물론, 먹을 수 있는 실과는 몸과 혼을 위한 복이었습니다. 배부름이란 몸의 만족과 성취감이란 혼의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먹을 수 없는 실과는 몸과 혼을 위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데, 왜 먹을 수 없는 선악과를 동산, 그것도 중앙에 두신 것일까요? 그것은 몸과 혼이 아닌, 영을 위한 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합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복을 기억하고 감사해할 때입니다.
그래서
“내 복으로 내 백성에게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4)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4)는 말씀처럼, 인간은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게 됩니다. 교만은 어떤 것을 얻게 되면 자신의 힘으로 되어졌다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 8:17,18)
그래서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선악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즉, 먹을 수 없는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으면, 먹고 싶은 실과를 마음껏 따먹다가도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때문임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몸과 혼, 그리고 영을 위한 완전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