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_개역한글)
위는 진리를 전한다는 의미의 전도서에 나오는 말씀인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슬퍼하라’가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시험에 합격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일이 잘 되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는 반면 시험에 떨어지거나 돈을 많이 잃거나 일이 잘 안 되는 곤고한 날에는 슬퍼하거나 고통하며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곤고한 날에 고통해하지 말고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고 하실까요? 이는 곤고한 날이 불행한 날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교회에 열심히 나간 분이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회에 나가며 신앙에 열심을 내서 자타가 공인하는 신앙심이 뜨거운 독실한 신자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을 만나게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궁금해진 저는 재차 질문했고, 결국 그분은 한숨을 쉬면서 아래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제 아들이 올 해 재수하여 대학 시험을 보게 되어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이번에는 꼭 합격시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 이번에도 떨어졌어요. 그렇게 새벽마다 매달리며 도와달래도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을 제가 왜 믿어야 되나요?”
이런 사례는 흔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행복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행복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일락(pleasure)을 추구합니다. 일락이란 자기 향락으로 자기가 원하는 어떤 조건 하에서 누리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기쁨은 ‘항상 기쁨’입니다. 즉, 언제 어디서나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든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으로 온전한 기쁨과 행복입니다. 이 온전한 행복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분명히 다름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세상이 주는 것은 어떤 조건에 따라 기뻐하는 일락입니다. 이 기쁨은 온전한 기쁨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 기쁨을 주는 조건과 환경이 아니면 오히려 슬픔과 불행을 안겨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일락을 좋아하길 원치 아니하십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_개역한글)
위와 같이 살았으나 죽었다는 표현처럼, 일락은 행복인 것 같지만 사실은 불행입니다. 마치 취하면 황홀해하다가도 떨어지면 고통하는 마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더큰 문제는 마약에 취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듯 일락에 취하면 참되고 온전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참 행복이 아닌 일락의 정체를 깨닫고 당신 앞에 나아와 항상 기뻐하는 온전한 행복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일락의 정체는, 곤고한 날 곧 일락을 누리지 못하는 날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곤고한 날에 불행해하지 말고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