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이후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던 조지 휘트필드, 찰스 스펄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물이다."(이안 머레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다."(캔달 박사)
마틴 로이드 존스(1899-1981)는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로서, 종교개혁 이후 마르틴 루터, 존 칼빈, 존 오웬, 조지 휘트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등으로 이어져온 개혁주의 및 청교도 신앙을 정립하고 널리 전함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계를 장악해가던 20세기에 개혁주의 대표 설교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설교자였던 찰스 스펄전이 1892년에 세상을 떠난지 7년 후인 1899년에 스펄전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19세기 최고의 부흥사였던 디엘 무디도 세상을 떠났는데, 하나님은 디엘 무디의 사망 이틀 전에 마틴 로이드 존스를 세상에 허락하심으로 스펄전과 무디의 신앙을 잇게 하신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영국 남웨일즈의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웨일즈장로교회에 정규적으로 출석하며 18세 때 주일학교 부장으로도 봉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20세에 웨스트민스터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설교를 들은 후 죄에 대한 자각을 가지면서 비로서 복음을 깨닫고 회심과 중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후 사람들 앞에서 '나는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백했고, 그때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불과 26세에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 촉망 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보다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1926년 의사로서 그의 고향인 웨일즈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의 설교에 매혹된 교인들이 정식으로 그에게 자신들 교회의 목사가 되어달라는 청빙을 했습니다. 로이드 존스가 그 청빙을 받아들여 2,500파운드의 연봉을 받는 의사를 포기하고 225파운드의 연봉을 받는 목사가 되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게 됩니다.
그 후 1927년부터 1938년까지 샌드필즈에서 본격적으로 설교 사역을 담당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개혁 신앙에 입각한 설교를 통해 놀라운 부흥을 주심으로 웨일즈 전역에 새로운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에 사람들은 의사를 포기하고 목사가 된 그에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메시지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931년 로이드 존스의 개혁주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20세기 초의 웨일즈 부흥을 기억하는 한 나이든 성도는 "오, 이것이 부흥이다. 성령의 능력이 1904년보다 지금 여기서 더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샌드필즈에서 있었던 집회 때마다 참된 부흥에서 나타나는 회개의 역사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의 인도로 1938년부터 1968년까지 30년 동안 런던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가 사역한 후 웨스트민스터채플은 주일 예배에 약 2,500명이 참석하는 런던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됩니다. 물론, 로이드 존스는 영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목회자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로이드 존스는,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신복음주의가 20세기를 장악해가고 있을 때 일체 타협하지 않고 개혁 신앙을 지켰습니다. 특히, 빌리 그래엄이 1966년에 개최된 유럽 전도 대회의 의장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의장직보다 그 대회가 진정한 부흥에 초점을 맞추도록 제안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은퇴 이후 1957년에 설립된 (본 연구소에 신앙서적 컨텐츠를 후원해주는) '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를 통해 믿음의 선진들의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청교도 서적들을 발굴하여 출판하는 문서 사역을 통해 전세계에 복음을 널리 전했습니다. 한국에도 그의 설교집에 대한 200여권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강력한 지도력을 통해서 일단의 젊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청교도 및 개혁주의 대회(The Puritan and Reformed Conference)를 통해 정규적인 토의장을 창출해서 매년 12월 초에 한차례씩 모였고, 1967년 이후에 이 모임은 웨스트민스터대회(The Westminster Conference)로 이름을 바꾸어 모이면서 전세계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깃발(The 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 외에도 런던복음주의도서관과 런던신학교가 만들어지는 데도 실질적 기여를 했고, 웨일즈 복음주의운동과 연합해서 목회자 모임과 그 연례 회합이 생겨나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유럽 전역과 미국을 다니며 순회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했던 그는 진정한 '영혼의 의사'로서 사명을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