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2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이자 시공의 제약을 받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세계이자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 완전한 세계에 속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가장 먼저 회개와 함께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천국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천국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곳은 영원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하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미래를 예언한 사도 요한의 위의 말처럼, 처음 하늘과 땅인 이 세계가 없어지면서 영원한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두 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즉,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육체도 가지고 창조되었고, 영원한 세계에 살 수 있는 영혼도 가지고 창조된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 처소가 많다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예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야 될 참된 처소는 이 세계에 있지 않고 영원한 세계에 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실 영원히 존재하는 우리 영혼이 살아야 될 처소는 유한한 이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왜 영원한 처소에서 바로 살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아이가 잉태되어 엄마 뱃속에서 10개월 정도를 사는 것은 세상에 나와 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창조되자마자 바로 천국에 가서 살지 않고 이 세상을 거치도록 하신 것은 영원한 세계에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를 보면 외형적으로는 성장한 인간이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씩 가르쳐주셔야 되었는데, 문제는 지식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가령 1+1=2 는 지식으로 알 수 있지만, 사과의 맛이나 꽃의 향기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 없이는 두 아들 모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말로 설명한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아들인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살면서 철저히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경험으로 깨우쳐 알게 되면서 아버지의 능력도 동시에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시고 얼마나 사랑이 풍성하시며 얼마나 완벽한 분이신지 알고자 하지만, 자신을 몰라 아버지도 알지 못한 맏아들의 위치에서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알아야 하나님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기독교강요 1권 1장)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탕자에게 먼 나라를 허락함으로 탕자가 자신의 모습을 배우게 되고 아버지에게 돌아와 행복하게 살게 된 것처럼, 하나님은 잠시 머무르는 유한한 이 세계에서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우리에게 정확히 깨우치고자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