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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문 1위인 크리스천투데이에 게재된 제임스강 목사의 칼럼과 인터뷰 모음
단 한번, 그러나 영원히 (2026.7.6)
크리스천투데이에서 2026년 7월 6일 아래와 같이 "단 한번, 그러나 영원히"라는 제목의 제임스강 목사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크리스천투데이에 게재된 칼럼 바로 가기] 역사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금요일 오후 세 시가 있습니다. 약 이천 년 전,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 해는 아직 하늘에 떠 있었지만 온 땅에는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성전의 휘장은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고, 땅은 흔들렸으며, 바위가 갈라졌습니다(마 27:45, 51). 골고다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지막 숨을 내쉬셨습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또 하나의 처형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여겼으며, 제자들은 모든 소망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한 사람의 죽음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언과도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이는 단지 생애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위한 제사가 완성되었다는 선언이었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다는 선언이었으며, 죄인에게 이르는 구원의 길이 영원히 열렸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히브리서는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한마디를 들려줍니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이것이 복음의 생명입니다. ‘영원한 속죄’. 역사에서는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한 번이 영원합니다. 어떻게 그날 흘리신 보혈이 아브라함의 죄를 덮고, 다윗의 눈물을 씻으며, 베드로의 실패를 용서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의롭다 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까지 동일한 능력을 베풀 수 있을까요? 그 답은 하나님의 영원성에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어제는 붙잡으려 하면 이미 지나가 버리고, 내일은 기다려도 아직 오지 않았으며, 오늘조차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흘러갑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강을 따라 흘러가시는 분이 아니라, 그 강 자체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세상은 시간 안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시간도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6세기 그리스도인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위안』 제5권에서 “영원이란 끝없는 생명 전체를 동시에 그리고 완전하게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과거와 미래가 사라지고 현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이 그분 앞에 동시에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벧전 1:20)라고 했고,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라고 했습니다. 즉 십자가는 죄가 세상에 들어온 뒤 급히 마련된 대책이 아니었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거장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 세계의 구조에 속한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상대성이론이 히브리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마저 세계의 일부라면, 그것은 성경이 오래전부터 고백해 온 대로 시간 역시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때때로 과학은 성경이 먼저 말씀해 온 진리를 뒤늦게 따라오곤 합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가 왜 ‘영원한 속죄’라고 말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제사를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히 9:14) 이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히 13:20)입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드려졌고, 영원한 언약에 근거한 피이기에, 그 효력 역시 영원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늘 서 있었습니다. 오늘의 제사가 내일의 죄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고, 해마다 속죄일이 돌아왔습니다. 반복은 불완전함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달랐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앉으셨습니다. 이 한 단어가 구원의 열쇠입니다. 더 흘릴 피가 없습니다. 더 드릴 제사가 없습니다. 더 보탤 공로도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한 번. 그리고 영원히. 복음은 이 두 단어 위에 서 있습니다.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은 자신의 설교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는 결코 일시적인 것이 없으며, 그분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영원을 마주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드린 영원한 속죄 제사는 반복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도 영원한 속죄를 단순히 신학 체계의 한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심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충분하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믿음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속죄주가 완전하시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자신을 바라봅니다. 범죄한 자신을 바라보고, 넘어진 자신을 바라보고, 실패한 자신을 바라보고, 연약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강하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똑똑히 보라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의 시선은 늘 변하는 우리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께 머뭅니다. 유월절 밤 하나님께서는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시선과 같은 방향에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감정이나 행위 위에 서 있지 않고 영원한 속죄 위에 서 있습니다. 세월은 우리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의 보혈을 오래된 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실 뿐 아니라 모든 시간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역사에서는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 안에서는 언제나 살아 있는 구원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믿음의 크기를 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죄를 남김없이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그 속죄는 창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단번에 이루어졌고, 오늘도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적용하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단 한 번 드려진 제사, 그러나 영원히 효력을 잃지 않는 구원. 이것이 히브리서가 선포하는 영원한 속죄의 복음입니다. 단 한 번 드려졌으나,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제임스강 목사 특집 칼럼 (2026.5.9)
[제임스강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특집 칼럼 바로 가기]
2026 새해 특집 칼럼 (2025.12.30)
[제임스강 목사 새해 칼럼 페이지 바로 가기]
2026 영국 부흥지 순례 인터뷰 (2025.12.20)
[제임스강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 기사 링크]
영국 부흥지 순례 첫 인터뷰 (2025.06.26)
[제임스강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 기사 링크]
제임스강 목사 첫 인터뷰 (2023.02.21)
[크리스천투데이 제임스강 목사 인터뷰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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