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펄전은 내게 너무나 큰 축복이다. 나의 불길은 성경과 스펄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께 돌아서지 않는 사람이라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디엘 무디 / 19세기 대표 부흥 전도자)
"스펄전은 하나님께서 영국 교회에 주신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다. 자신이 괜찮은 설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스펄전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읽어 보라. 스펄전의 설교를 읽는 것이 나의 신학교였다."(마틴 로이드 존스 /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
"역사상 위대한 설교자들 중 찰스 스펄전보다 더 탁월한 설교자는 없다.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완전한 설교자의 모형이다."(에드윈 다간 / 세계적 설교 사학자)
"찰스 스펄전은 모든 설교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그분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다."(팀 켈러 / 21세기 대표 부흥 목회자)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스펄전의 설교집을 사라."(헬무트 틸리케 / 스펄전 이후 가장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1892)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는 조부와 친부 모두 목회자였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고통해 했습니다.
청교도 서적들을 통해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던 스펄전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그의 나이 만 15세이던 1850년 1월 6일, 눈보라를 헤치며 교회를 가던 스펄전은 눈에 띄는 작은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폭설 때문에 오지 못한 설교자 대신 한 성도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_개역한글
)는 말씀으로 설교를 했는데, 시무룩히 앉아 있던 스펄전을 보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젊은이여! 예수님을 바라보시오!"
그때 스펄전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앙망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스펄전은 당시의 순간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꽉 차 있던 구름은 걷히고, 내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취었다. 아! 나는 진실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하고도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고 왔던 죄의 무거운 짐이 바로 나의 어깨 위에서 영원히 굴러떨어져 버렸을 때, 나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순례자와 같은 환희에 도취되었다. 번연이 자신의 거듭남에 관하여, 넓은 대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고 외쳤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스펄전은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드렸습니다.
스펄전의 설교는 철저하게 개혁주의 및 청교도 신앙에 뿌리를 두었고, 전통적인 교리를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와 실제적 표현으로 쉽고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탁월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스펄전의 설교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뜨거운 감동과 마음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스펄전은 1850년 1월 6일 거듭남을 체험한 후 1851년 5월 3일 침례교파에 입문하여 침례를 받고 1852년 18세의 어린 나이에 워터비치의 한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 초빙 받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워터비치에 부흥을 일으키며 '소년 설교자'로 런던에까지 명성이 전해졌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불과 20세 밖에 되지 않은 1854년부터 영국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인 뉴파크스트리트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었습니다.
그 후 형식적인 신앙으로 인해 침체되어 가던 교회를 개혁주의 및 청교도 신앙의 진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을 맞춘 설교를 통해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당시 만연된 도덕적이고 형식적인 설교와 달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생명력 있는 그의 설교에 매료된 수많은 런던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배당이 아닌 인근의 음악당으로 예배 장소를 옮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20대 초반에 영국 최고의 설교자가 된 스펄전은 1857년에는 육성으로 하는 실내 집회 사상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된 수정궁의 23,654명의 청중 앞에서 대표 설교를 했습니다.
1861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의 예배당인 6천 좌석을 갖춘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예배당을 건축한 후 매주마다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목회자가 된 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여년 동안 전해졌던 그의 설교는, 직접 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인쇄된 그의 설교를 읽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디엘 무디, 데이빗 리빙스턴, 찰스 스터드, 허드슨 테일러, 마틴 로이드 존스, 팀 켈러 등 수많은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과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제임스 가필드를 비롯한 세계적 명사들도 스펄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1856년 목회자 대학을 설립하여 참된 목회자 양성에 앞장 섰던 스펄전은 고아 구제 및 노예제 폐지 등 사회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수천명이나 되는 성도들을 양 한 마리도 외면하지 않는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과 이웃들을 돌보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런던의 수만 명이나 되는 장례행렬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런 스펄전을 설교학자 블랙우드는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라고 평했고, 교회사 학자 비들러는
'위대한 설교자들 중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평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유명 설교잡지 프리칭이 2000년 1월에
'지난 1천년 간의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스펄전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스펄전은 가장 많은 기독교 서적을 출판한 저자로서 그가 저술한 책자들을 합하면 무려 150권 이상이나 됩니다.
총 3,563편이나 되는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그의 설교는 현재까지 수억 부 이상 인쇄되어 전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스펄전은 정확하고 바른 신앙 정립을 위해 성경 묵상과 아울러 약 12,000권의 개혁주의 및 청교도 서적을 보유하고 꾸준히 탐독하여 최후의 청교도로 불리웁니다.
그의 설교의 특징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자신은 철저히 부인했습니다.
한번은 미국 목회자들이 영국 교회를 탐방하면서 주일 오전에 런던의 한 유명 목회자의 설교를 들은 후 '정말 뛰어난 설교자'라고 평했는데, 저녁에 스펄전의 설교를 들은 후에는 '스펄전을 허락하신 주님이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본 연구소는 방대한 스펄전의 설교들을 핵심적으로 요약 정리하여 소개함으로 많은 이들에게 쉽고 명확하게 스펄전이 가졌던 믿음의 진수를 전달하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한 행복한 신앙'으로 인도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유일한 목적은 당신의 행복이다."(찰스 스펄전, 생명의 말씀사 출간 구원의 은혜 서문)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들이 스펄전이 평생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