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하나님의 의를 싫어했다. 나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죄인들을 벌주시는 분으로 배웠다. 내가 비록 신실한 수도사로서 살았지만, 언제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무거운 양심의 가책 속에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자비로움으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는 말씀을 밤낮으로 명상하면서 말씀과 하나가 되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복음을 믿음으로 부여받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새로 거듭나서 열린 문들을 통하여 낙원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의 의’는 낙원으로 인도하는 가장 달콤한 단어로 찬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서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마르틴 루터, 라틴어 저작 서문 중)
이 글은 루터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545년, 자신의 라틴어 저작 전집을 펴내며 여러 해 전에 겪은 깨달음을 돌아본 만년의 회고입니다. 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그가, 그 운동의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술회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뿌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의’에 대한 재발견이었습니다.
의(義)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의가 어디서 오는지를 두고 두 길이 갈립니다. 흥미롭게도, 이 한자의 짜임을 묵상의 실마리로 삼아 볼 수 있습니다. ‘義’는 羊(양)과 我(나)가 위아래로 놓인 모양입니다. 본래 어원이 기독교 진리를 담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모양에서 ‘나(我)’ 위에 ‘양(羊)’이 선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는 말씀처럼, 양은 죄 없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참된 의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악한 나 대신 내 위에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져 그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참 의인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나의 죄는 그리스도께 지워지고, 그리스도의 의는 나에게 입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죄인인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도 드러납니다. 나귀는 출애굽기 13장에서 정결하지 못한 짐승으로 여겼는데, 그런 나귀가 예수님을 등에 태우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환영했습니다(마 21:7~9). 만일 나귀가 홀로 들어갔다면 그 자신의 어떤 것으로도 그런 환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귀를 영광스럽게 한 것은 나귀 자신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중세 로마교회는 이 하나님의 의를 오해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자기 의, 곧 인간의 공로와 선행을 준비해 들고 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보다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했던 가인의 길과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도 다르지 않았기에,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를 이렇게 갈라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구원의 문제는 내가 얼마나 선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야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여기서 루터가 발견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불완전한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에게 값없이 주시는 완전한 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주시는 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멸하기 위한 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구원의 의입니다. 이것이 루터가 재발견하고 세상에 다시 선포한 진리로, 오늘날에도 교회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의 출발점은 인간의 의에서 하나님의 의로의 전환입니다. 오늘도 두 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의 의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의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혹은 아직 그 중간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