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에스겔의 손이 우리를 잡고 이끄는 곳은 꽃 피고 새 우는 동산이 아닙니다. 해골이 널려 있는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햇볕에 바싹 말라 하얗게 빛나며 흩어진 뼈들, 살점은 이미 썩어 없어지고 힘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 처참한 광경 속을 선지자는 두루 거닐라 명하심을 받습니다.
그때 하늘의 음성이 울립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성의 소리는 너무나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살 수 없습니다. 조금 병든 것이 아니라 죽었습니다. 죽은 지 오래되어 살은 썩어 없어지고 뼈마저 말랐습니다.” 즉 그곳은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자리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이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봅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곳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단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닙니다. 교육도 아닙니다. 격려도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뼈에게 설교하라니 얼마나 어리석어 보입니까! 귀가 없는 뼈에게 말씀을 들으라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 설교입니다. 우리는 죽은 심령을 살릴 능력이 없습니다. 설교자의 웅변이 영혼을 살리지 못하며, 눈물과 열심도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불가능한 일이 시작됩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하자 갑자기 소리가 나고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뼈가 뼈에 들어맞고 힘줄이 생기며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조금 전까지 흩어져 있던 죽음의 잔해가 사람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말씀에는 죽음의 질서를 뒤집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지만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고 기록합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뼈도 있고 힘줄도 있고 살도 있고 피부도 있습니다. 외형은 완벽한데 생명이 없습니다. 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있고 예배가 있고 찬송이 있고 직분이 있는데 생명이 없을 수 있습니다. 입술은 기도하지만 심장은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영혼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형식은 생명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생명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 명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나 일어서는데, 성경은 그들을 “극히 큰 군대”라고 부릅니다. 조금 전까지 마른 뼈였던 자들이 이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여기 복음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죄의 무덤에서 사람을 끌어내어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우십니다. 이것이 중생이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37장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하나에는 유다를, 다른 하나에는 요셉 곧 에브라임을 기록하게 하시고, 두 막대기를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죄가 갈라놓았던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죄는 언제나 분열시킵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놓고,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으며, 심지어 인간 자신의 마음까지 찢어놓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하나로 만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를 화목하게 하고 서로 원수 되었던 자들을 한 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에스겔 시대의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다윗은 누구입니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참된 왕,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의 최종 목적은 단지 우리의 회복이 아닙니다. 살아난 백성이 왕을 섬기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왕을 주십니다. 이전에는 내가 내 삶의 왕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십니다.
그러나 38장에 들어가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곡과 마곡이 등장하고 거대한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쌉니다. 살아났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난 백성에게 전쟁이 시작됩니다. 성도 여러분, 거듭났다고 해서 사탄이 여러분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죽어 있을 때에는 공격할 필요조차 없었지만 살아난 자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었기 때문에 원수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전쟁의 마지막 장면은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곡은 자신이 계획하여 올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수많은 군대를 모으고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교만한 계획조차 하나님의 주권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내리라.” 사탄은 자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악은 결코 하나님의 경쟁자가 아닙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왕좌 맞은편에 앉아 대등하게 싸우는 또 하나의 신이 아닙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어나십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칼이 임하며 폭우와 우박과 불과 유황이 쏟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자 인간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거대한 군대는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는 이유는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영적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산처럼 커 보입니까? 세상의 권세가 두렵습니까? 사탄의 유혹이 여러분을 에워싸고 있습니까? 적의 숫자를 세지 말고 여러분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39장에 이르면 전쟁이 끝난 뒤의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이 버리고 간 무기를 모아 일곱 해 동안 불태웁니다.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무기가 오히려 그들의 연료가 됩니다. 원수가 파멸을 위해 가져온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백성을 위한 도구로 바뀝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섭리입니까!
사탄이 여러분을 무너뜨리기 위해 던진 것조차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숙하게 하는 연료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눈물이 기도가 되고, 실패가 겸손이 되며, 상처가 다른 사람을 품는 긍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면 원수의 무기조차 성도의 유익을 위한 장작이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39장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목적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하리라.” 에스겔 37–39장의 중심에는 결국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십니다. 왜 마른 뼈를 살리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왜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모으십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왜 곡을 무너뜨리십니까? 온 열방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면류관을 쓰게 되는 날에도 우리는 그 면류관을 자신의 머리에 자랑스럽게 붙들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보좌 앞에 던지며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오직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심령이 오늘 마른 뼈처럼 느껴집니까? 기도해도 아무 감동이 없고, 말씀을 읽어도 마음이 메마르며,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생명력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죽은 뼈 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을 구하십시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말씀과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가장 메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너무 오래 죽어 있어서 살리지 못할 영혼이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앞에 곡과 마곡 같은 문제가 서 있습니까?
여러분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이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38장의 마지막은 곡의 승리가 아니며, 39장의 마지막도 원수의 승리가 아닙니다. 마지막 말씀은 이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죽음의 골짜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성령의 부으심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도 성령이 생명을 주셨고 마지막에도 성령께서 백성 가운데 거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마른 뼈보다 강한 생명, 분열보다 강한 화목, 곡과 마곡보다 강한 왕, 죄와 사망보다 강한 구주가 우리에게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마른 뼈여, 말씀을 들으십시오! 죽은 심령이여, 성령의 바람을 구하십시오! 두려워하는 성도여, 왕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무덤이 아무리 깊어도 그리스도의 음성보다 깊지 않습니다. 원수가 아무리 강해도 만군의 여호와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절망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보다 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마른 뼈가 군대가 되고, 하나님께서 싸우시면 원수의 무기가 장작이 되며,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시면 죽음의 골짜기가 생명의 골짜기가 됩니다. 형편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성의 음성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생명의 말씀이 당신도 회복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