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펼쳐든 에스겔 본문을 통해 길 잃은 양과 목자에 대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길을 잃은 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더 열심히 걸으라는 충고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양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를 찾아오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34장에는 목자는 많았지만 양을 찾는 목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먹였습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았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으며, 상한 자를 싸매지 않았고, 쫓기는 자와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양이 목자를 위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산과 골짜기로 흩어졌고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길을 잃은 양에 비유합니다.
문제는 단지 우리가 조금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잃었는데 돌아갈 길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오, 이 말씀을 보십시오! 양이 목자를 찾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이야기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발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내가 좋은 꼴로 먹이고”, “내가 잃어버린 자를 찾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고, 상한 자를 싸매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하십니까? “내가.” 에스겔 34장의 복음은 인간의 결심보다 먼저 하나님의 행동을 보여 줍니다.
양이 너무 멀리 갔다고 목자가 포기하지 않으며, 가시에 찔렸다고 버리지 않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쓸모없다 하지 않습니다. 좋은 목자는 가장 건강한 양만 사랑하는 목자가 아니라 상한 양을 찾아오는 목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더욱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런데 에스겔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다윗은 누구입니까? 이 말씀은 다윗의 집에서 오실 참된 왕,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목자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한 분이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단지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그분이 찾아오셨고,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양이 죽지 않도록 목자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고 우리가 얻을 수 없었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선한 목자의 사랑이며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34장이 누가 우리를 찾는가를 보여 준다면, 35장에서는 질문이 달라집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35장에는 세일 산, 곧 에돔이 등장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래된 적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무너졌을 때 그들은 기뻐했고 이스라엘의 땅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산에서 빠진 한 가지를 지적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에돔은 땅만 보았지만 그 땅의 주인이 누구신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약해졌다고 하나님까지 약해진 것은 아니었고, 예루살렘이 무너졌다고 하나님의 언약까지 무너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의 실패를 보고 “이제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35장의 심판 뒤에 36장의 회복이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황폐해진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하여 다시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으며 사람들이 돌아와 성읍을 세울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땅만 회복한다고 인간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세워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죄를 반복할 것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인간을 바꿀 수 없습니다. 집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나라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지고 가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문제도 함께 따라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만 새롭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더욱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돌 같은 마음을 향하여 “조금 더 부드러워져라”고 명령만 하지 않으십니다. 돌을 꺼내시고 새 마음을 주십니다. 여기에 은혜의 깊이가 있습니다. 죄인은 단지 교육이나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며, 조금 더 강한 의지만 필요한 사람도 아닙니다.
새 마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돌 같은 마음은 설교를 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지 않으며, 죄를 지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자신의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돌을 꺼내시고 살아 있는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 마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순서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면 새 마음을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새 마음을 주시고 순종하게 하십니다. 먼저 은혜가 오고 그다음 순종이 따라옵니다. 구원받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음은 인간에게 단지 새로운 규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줍니다.
그런데 36장에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가장 깊은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이 우리의 공로에 달려 있다면 우리의 구원은 매일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구원의 가장 깊은 기초는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34장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고, 35장에서는 원수들이 우리를 삼키려 했으며, 36장에서는 우리의 마음마저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 대답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목자를 찾아갈 수 없었기에 목자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었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바꿀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거룩하게 살 수 없었기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새로운 길을 걷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길 잃은 양에게 지도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직접 찾아오는 것입니다. 복음은 돌에게 부드러워지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아 있는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길 잃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길 잃은 인간을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고백은 “내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찾으셨습니다”입니다.
“내가 나를 바꾸었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바꾸셨습니다”입니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겠습니다”라는 결심보다 더 깊은 곳에는 “선한 목자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라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혹시 자신이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자에게 너무 먼 양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너무 굳었다고 느끼십니까? 하나님께서 바꾸지 못하실 만큼 단단한 마음도 없습니다.
양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양이 길을 잘 찾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고, 씻겨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며, 거룩한 영을 우리 안에 두시는 선한 목자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양의 목자이시면서 한 양의 목자이십니다. 모든 양을 위해 죽으신 분이시고 당신을 위해 죽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인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