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우리 마음의 본성을 헤아려 봅니다. 사람은 때로 진리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 서기보다, 달콤한 거짓의 품에 안기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거짓된 위로는 한 영혼도 살리지 못합니다. 달콤한 거짓말은 아침 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에스겔 시대의 유다 백성도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성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중얼거렸습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경고의 구름이 오래 머물러 비를 뿌리지 않자, 그들은 구름 자체를 환상이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종 에스겔에게 엄숙히 말씀하셨습니다.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결코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계가 더디게 가고 하나님의 시계가 달리 간다고 해서, 그분의 약속과 경고가 취소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시간의 모래시계를 들여다보며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자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12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기이한 행동을 명하십니다. 낮에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무거운 짐을 메고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저녁에는 벽을 뚫고, 그 어두운 구멍을 통해 짐을 끌고 나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설교요, 움직이는 예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의 성벽이 영원히 안전하리라 믿었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의 발걸음을 통해 그들에게 외치셨습니다. “너희가 의지하는 그 안전은 한낮의 안개처럼 사라지리라!” 예루살렘의 왕도 밤의 어둠을 틈타 도망하려 할 것이나, 결국 사슬에 묶여 끌려갈 것입니다.
성벽은 그를 지켜 주지 못하고, 왕관의 영광도 그를 구원하지 못하며, 인간의 지혜로운 계획도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피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영혼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위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코앞에 닥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그 무서운 무감각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죄 가운데 잠들어 있으면서 평안하다고 느끼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양심이 고요하다고 해서 죄가 사라진 것도 아니며, 심판이 즉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못 보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사이에 유행하던 그 속담을 책망하셨습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그분의 무능으로 해석했습니다. 심판이 지연되는 것을 심판이 없다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죄를 승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에게 돌이킬 시간을 주시는 그 무한한 자비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은 늘 이렇게 돌아갔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면 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인내를 멸시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합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죄인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아직 시간이 많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 내일도 반드시 돌이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회개를 미루는 사람은 죄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게 하루를 더 내어 주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13장에 들어가면 더욱 심각한 그림이 펼쳐집니다. 백성들이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그 순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달콤한 노래를 부릅니다. “평강이 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벽은 이미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회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초가 썩어 문드러졌는데, 표면을 하얗게 칠하여 멀쩡한 집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일은 무너진 벽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질 벽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제거하지 않고 죄책감만 제거하려 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평안하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복음은 죄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종교적 진통제가 아닙니다. 복음은 먼저 우리의 죄가 얼마나 깊고 치명적인지를 드러내고, 그 죄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는 그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상처가 깊어 뼈까지 드러났는데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치료가 아닙니다. 기만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는데 “당신은 괜찮습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독약입니다. 참된 평안은 죄를 덮어 감추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데서 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모든 설교자에게도 피 흘리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충실히 전하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의 귀를 간질이는 설교보다, 영혼을 살리는 진리가 천 배나 더 귀합니다. 14장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를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을 찾아와 하나님께 묻고자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경건한 발걸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보십시오! 우상은 성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 안의 나무 조각상만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입술로 질문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다른 신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라”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마음의 왕좌에서 우상을 끌어내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인간이 자기 힘으로 마음의 모든 우상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우상을 버리면 또 다른 우상이 그 자리에 올라오고, 돈을 내려놓으면 명예가 올라오며, 명예를 내려놓으면 자기 의가 왕좌에 앉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서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붙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행동 몇 가지보다 훨씬 깊고 뿌리 깊습니다. 우리는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에스겔서는 뒤에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주실 것입니다.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새 영을 우리 안에 두시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4장에서는 심판의 엄중함도 번개처럼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땅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의로 자기 자신만 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더 넓은 영적 원리도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의 경건이 나의 죄를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믿음 좋은 부모가 있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경건한 배우자가 있다고 그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지도 않으며, 훌륭한 교회에 다닌다고 교회의 신앙이 자동으로 나의 구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노아의 의를 빌릴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내 구원의 근거로 삼을 수도 없으며, 욥의 경건이 나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신약의 빛이 찬란하게 비칩니다.
노아도 우리 죄를 대신 질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도 우리의 정죄를 대신 받을 수 없었고, 욥도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이들과 전혀 다른 한 의인이 나타납니다.
자기 의로 자기만 건지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죄인에게 입혀 주시고 죄인의 심판을 대신 담당하시는 의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그분이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자기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셨으며, 우리가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평안은 거짓 선지자들이 말한 “괜찮다”는 달콤한 말에서 오지 않습니다. 참된 평안은 십자가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무시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형벌이 온전히 담당되었기 때문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에스겔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무너지는 벽에 회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너진 인생에 회칠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에스겔 12장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13장은 말합니다. 거짓 평안은 무너집니다. 14장은 말합니다.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신약의 복음은 우리에게 외칩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 그분 안에 심판을 피하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그분 안에 죄 사함이 있고 하나님과의 화평이 있으며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벽에 회칠하지 마십시오. 마음의 우상을 숨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경고를 먼 훗날의 이야기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십시오.
거짓 평안은 죄를 그대로 둔 채 양심만 잠재웁니다. 복음의 평안은 죄를 십자가로 가져가 하나님과 실제로 화목하게 합니다. 거짓 평안은 심판 앞에서 무너지지만, 십자가에서 이루신 화평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왕좌를 우상에게 내어 주지 마십시오. 왕좌에는 오직 한 분만 앉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왕,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왕으로 만들어 드려야 왕이 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미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상을 내려놓고 그 왕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