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의 가장 거룩하고 웅장한 봉우리 위에 서 있습니다. 51장에서 하나님은 낙심한 시온을 향해 고개를 들라 명하시고, 52장에서는 포로의 사슬을 풀어 구원의 나팔을 불게 하시며, 53장에서는 그 모든 구원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 샘은 어디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구원을 이루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죄악 때문에 찔리시고 상하신 여호와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1장의 첫 음성은 이것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을 쳐다보라.” 성도 여러분, 현재의 초라함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셔서 큰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숫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큰 것을 보아야 믿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큰 것을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당신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에게 당신의 빈손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시온은 황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를 에덴 같게 하며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리니.”
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죄는 에덴을 광야로 만들었지만 은혜는 광야를 다시 에덴으로 만듭니다. 죄가 영혼의 꽃을 시들게 하고 기쁨의 강을 말려버렸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메마른 심령에서 다시 찬송이 솟아납니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의 메마름을 보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광야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죄보다 강한 보혈이 있고,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 있으며, 절망보다 깊은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질지라도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으리라.”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하늘과 땅조차 낡은 옷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제국도 사라지고, 재물도 사라지고, 젊음도 사라지며, 우리의 몸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늙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천 년이 지나도 능력을 잃지 않았으며, 마지막 죄인이 그 피 아래 피할 때까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은 두려워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압제자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성도 여러분, 어찌하여 풀을 두려워하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잊습니까? 사람의 입김은 잠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위협해도 성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크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51장 후반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도시로 나타납니다.
죄에는 반드시 잔이 있습니다. 죄인은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복음의 신비를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마셔야 했던 그 잔을 훗날 겟세마네에서 한 분이 손에 드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노의 잔을 입술에 대셨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께서 다 마신 잔에 당신이 마실 진노가 남아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52장에 이르자 음성이 바뀝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시온이여!” 먼지를 털고 일어나십시오. 목의 사슬을 풀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 위에서 한 사람이 달려옵니다.
그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십시오! 그가 외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종교는 죄인에게 사다리를 가져와 하늘까지 올라가라고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죄인에게 내려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새로운 구원의 방법을 발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알리는 왕의 전령입니다.
그런데 52장 마지막에서 갑자기 한 종이 등장합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우리는 영광스러운 왕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왕이 오셨는데 상처투성이입니다. 정복자가 오셨는데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면류관을 쓰셨는데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입니다. 보좌에 앉으셔야 할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53장의 거룩한 문이 열립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그리스도께서는 화려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는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세상의 아름다움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멸시했고 배척했으며 침을 뱉었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생명의 주께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가장 깊은 비밀은 사람들이 그분을 죽였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왜 그분이 죽으셨는가에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의 질고이며 우리의 슬픔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더욱 분명하게 외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기에 복음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찔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손을 못 박은 것은 로마의 못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죄였습니다. 그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것은 군병의 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교만이었습니다. 그분의 등을 찢은 것은 채찍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불의였습니다.
그분의 심장을 짓누른 것은 십자가의 무게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의인이 받으셨습니다. 죄인이 마셔야 할 잔을 하나님의 아들이 마셨습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버림을 사랑받는 아들이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보십시오! 그에게 형벌이 내려갔기에 우리에게 평화가 왔습니다. 그에게 상처가 났기에 우리에게 치료가 왔습니다. 그가 버림받았기에 우리가 받아들여졌고, 그가 죽으셨기에 우리가 삽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가볍게 여기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 주는 가장 두려운 장소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습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공의를 알고 싶습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죄의 무서움을 알고 싶습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알고 싶습니까? 다시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리고 이사야는 우리 모두의 영적 전기를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죄란 무엇입니까? 단지 술 취하고 도둑질하고 살인하는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각기 제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신데 내가 왕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정하셨는데 내가 내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점잖은 사람의 마음속에도 반역의 왕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 죄인들이여! 여기에서 당신의 죄를 바라보십시오.
죄는 어디로 갔습니까? 믿는 자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옮겨졌습니다. 한 사람이 빚을 졌는데 다른 사람이 그 빚을 완전히 갚았다면 채권자가 다시 첫 사람에게 그 빚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완전히 치르셨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 값을 두 번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확신입니다. 내 감정이 구원의 기초가 아니며, 내 선행도 아니고, 내 눈물도 아니며, 내 결심도 아닙니다.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반석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억지로 끌려가신 희생제물이 아니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 왜 잠잠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능력이 없어서 남아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남아 계셨습니다. 못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붙든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분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53장은 무덤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죽으신 종이 다시 살아납니다!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 뒤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어린양은 죽임을 당하셨지만 이제 보좌 가운데 서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구원하려 하셨던 백성을 실제로 구원하십니다. 그분의 피 한 방울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동서남북에서 죄인들이 돌아오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는 무리가 어린양의 보좌 앞에 설 것입니다. 그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영혼의 수고를 보시며 만족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5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으리라.” 52장에서는 외쳤습니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리고 53장에서 마침내 그 영원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상처 입은 어린양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측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붙들고 있는 구주가 얼마나 완전하신지를 바라보십시오. 죄가 크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는 그 죄보다 큽니다.
상처가 깊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죽음이 두렵다고 떨지 마십시오. 죽임당하신 어린양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닙니다. 완전한 구주입니다.
그 구주께서 이미 오셨습니다. 그분은 찔리셨고, 상하셨으며, 피 흘리셨습니다.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죄인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로 나오십시오! 거기에 죄인을 위한 용서가 있고, 죽어가는 자를 위한 영생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하늘과 땅이 낡은 옷처럼 사라질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구속받은 모든 성도가 어린양 앞에 서서 한 목소리로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 행하였으나 그가 담당하셨고, 우리가 죽어야 했으나 그가 죽으셨으며, 우리가 버림받아야 했으나 그가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품에 안겼도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마십시오. 그분이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십시오. 그 찔리신 어린양이 당신의 의이시며, 당신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