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이 '신앙생활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는 큰 오해로, 신앙은 쉽고 평안해야 정상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위의 말씀처럼 당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평안히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당신의 멍에는 쉽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평범한 사람은 감각에 지배를 받는다. 시력, 후각, 청력, 촉각 및 미각을 통해 받는 자극에 반응한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 간다. 관찰할 수 있는 증거에 기초할 때 확실하다고 믿는다. '보는 것은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삶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신뢰하고, 감각적으로 만지고 볼 수 없는 것에 의지하고 믿어야 할 때가 많다."
최근 영국의 유명 기독교 잡지인 크리스천 투데이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밝혔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따라 믿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믿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감각으로 형성된 우리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기에 오히려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듭니다.
1997년 겨울, 필자는 잘 아는 목사님의 미국 순회 집회에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기에 참 설레었는데, 이상하게도 목사님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안대를 하고 바로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를 많이 타보셔서 저러시나?’ 하고 생각한 필자는, 초보(?)답게 연신 창밖 하늘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마침내 LA 공항에 도착했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12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침이었습니다. 그때 한국과 미국 간의 시차(時差)가 주었던 어려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집회 장소에서 저는 연신 목사님 앞에서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목사님 얼굴 뵙기가 너무 미안했고, 그제서야 비행기를 타자마자 안대를 끼고 주무셨던 목사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 발을 내디딘 후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과 다른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운전석과 차선이 정반대인 운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졌지만 영어 설교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순과 시제 등 한국어와 다른 영어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입니다. 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내가 복을 줄테니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던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과 달리 그 땅에 기근이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인도를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다가 떠나는 것을 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 역시 자기 생각과 다른 말씀 앞에서
“이 말씀은 어렵도다.”(요 6:60)하면서 결국 예수님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의 기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사 55:7~8)
하나님은 그냥 돌아오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다른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하는 신앙생활은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진리로 믿고 따라가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쉽고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