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욥기의 깊은 우물에서 진리의 생수를 함께 길어 올리며,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 그리고 고난의 밤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의 새싹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욥은 지금 지옥 같은 고난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재산은 바람처럼 날아갔고, 자녀들은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으며, 몸은 썩어가는 상처로 뒤덮였습니다. 친구들은 위로하러 왔다가 도리어 칼을 들고 그의 영혼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절망의 파도 속에서 입을 연 욥의 입술에 주목하십시오!
그의 고백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갈망과 영원한 생명의 희미한 빛이 끊임없이 새어 나옵니다. 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욥은 14장에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눈물로 그립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꽃처럼 나와서 시들고 그림자 같이 빨리 지나가나이다”
보십시오! 사람은 스스로를 강하다 여기지만, 실상은 한 줌의 흙, 한 순간의 안개에 불과합니다. 오늘은 왕처럼 군림하다가 내일은 병상에서 신음하는 존재. 오늘은 웃음으로 세상을 밝히다가 내일은 눈물로 땅을 적시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젊음을, 건강을, 돈을 의지하며 영원처럼 산다고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꽃은 새벽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저녁이면 바람에 스러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듯하나 결국 쇠하여지고, 강한 듯하나 결국 무너집니다.
그러나 오! 이 연약함을 아는 것이 결코 절망의 끝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을 붙드는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아는 자만이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연약함을 탄식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신앙의 표지입니다. 불신자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 없이 절망의 구덩이로 떨어지지만, 믿음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얼굴을 들고 질문합니다.
질문하는 신앙은 아직 죽지 않은 신앙입니다! 욥은 이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합니다. “그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수를 정하셨사오니 그의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러분, 들으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우연의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날 수, 우리의 호흡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내 계획대로 굴러간다고 자만하지만, 실상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걸음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누군가는 장수하고 누군가는 일찍 떠나며, 누군가는 풍요를 맛보고 누군가는 가난을 견디지만,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 군림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 뜻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주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은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풀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주님,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 병이 왔는지, 왜 이 가정이 무너졌는지, 왜 이 실패가 내게 닥쳤는지, 우리는 종종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설명을 요구하기보다 신뢰를 선택합니다.
욥은 이제 나무를 들어 놀라운 대비를 합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비유입니까! 나무는 베어져도 뿌리만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을 틔웁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소멸됩니다. “그 기운이 끊어진 즉 그가 어디 있느냐?” 성도 여러분, 죽음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무기력합니다. 왕도, 철학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기, 욥의 탄식 속에 이미 복음의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욥은 아직 부활의 온전한 계시를 보지 못했지만, 그는 희미하게나마 그 빛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세상은 죽음을 끝이라고 외치지만, 복음은 죽음을 문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여,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품으십시오.
육체는 쇠할지라도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질지라도 주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영원한 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욥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 숨기를 원합니다.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지나기까지 나를 숨기시고”
오, 놀라운 역설이여! 하나님께 상처받은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결국 하나님께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고난이 오면 하나님을 멀리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자녀는 고난 속에서 더욱 하나님께 달려갑니다.
욥은 하나님께 질문하면서도 결코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때로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밤을 만납니다. 눈물만 흐르는 밤, 마음이 찢어지는 밤. 그러나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한 방울도 헛되이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흘린 모든 눈물은 주님의 병에 담겨 있고, 우리의 모든 신음은 주님의 귀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15장으로 넘어가 보십시오. 엘리바스가 다시 칼을 빼듭니다.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허탄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그는 욥을 교만하다고 정죄합니다. 입술에는 신학이 가득하지만, 심장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뼈아픈 교훈을 배웁니다. 고난당하는 형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아픈 이를 보며 “믿음이 부족하다” 하고, 실패한 이를 보며 “죄의 결과다” 하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고난을 그렇게 쉽게 해석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는 자와 함께 우셨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셨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정죄의 법정이 아니라, 상한 심령이 안식을 얻는 병원이며, 회복의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의 결국을 길게 늘어놓습니다. 그의 말 중 일부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리를 사랑 없이, 욥에게 무자비하게 적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진리는 사랑 없이 사용되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눈물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살리기 위해서 말해야 합니다. 이제 16장입니다. 욥이 친구들을 향해 탄식합니다.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아,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외침입니까! 위로하러 온 자들이 도리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조심하십시오. “위로한다”는 이름으로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참된 위로는 정답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가서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위로자의 모습입니다!
욥은 계속해서 자신의 아픔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셨고”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느낌은 진실 전체가 아닙니다. 우리도 때로 그렇게 느낍니다.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는 듯하고, 하늘이 철판처럼 닫힌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셔도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로움과 고독을 철저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히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보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오해하고 정죄할지라도, 하늘에는 그를 아시는 증인이 계십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비난하고, 조롱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아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큰 위로입니다.
사람의 평가는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영원합니다. 욥이 갈망하던 그 중보자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보혈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욥이 간절히 원하던 그분이 이미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눈물은 마지막이 아닙니다.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고, 겨울 뒤에는 봄이 있으며, 가장 깊은 밤이 지나면 새벽이 가장 가까이 옵니다.
당신의 상한 심령 그대로 영혼의 참된 위로자이신 그분의 품에 더 깊이 파고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