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구원의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옛날 페르시아 왕궁에서 일어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스더 속에서 우리는 궁극적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모르드개의 눈물은 죄 아래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만의 악함은 사탄의 모습을 드러내고, 왕 앞에 나아가는 에스더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서시는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에스더를 통하여 결국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에스더 4장을 보면 유대 민족 전체가 죽음의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만은 유대인을 모두 죽이라는 조서를 내렸고, 왕의 도장은 이미 찍혀졌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바꿀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것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과 같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도장은 이미 찍혀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웃고 즐기지만 영혼은 죽음의 판결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에스더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의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말을 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여러분, 하나님은 목적 없이 사람을 부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성도를 이 땅에 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눈물에도 목적이 있고, 여러분의 실패에도 뜻이 있으며, 여러분의 기다림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에스더는 처음에는 두려워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결국 자기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예수님의 순종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너무나 두려운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고통을 아셨고, 버림받음을 아셨고, 하나님의 진노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믿음의 순종입니다.
순종은 감정이 따라올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죽음이 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민족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았고,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에스더는 금식합니다. 이것은 자기 힘의 포기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능력을 잃는 이유는 세상의 방법을 너무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계산은 많아졌지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무릎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끊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산에서 밤새 기도하셨고, 십자가 앞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약한 자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믿는 자의 첫 번째 선택입니다. 에스더 5장에 들어가면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갑니다. 왕이 금홀을 내밀지 않으면 그녀는 죽습니다. 이 장면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왕의 금홀은 복음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의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입니다. 에스더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잔치를 준비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압니다.
우리는 빨리 응답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역사하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도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순종은 하나님의 타이밍까지 믿는 것입니다. 하만은 잔치에 초대받고 교만해집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높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높아짐은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죄인은 높아질수록 더 망가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교만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바벨탑도 교만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하만도 교만 때문에 멸망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만은 자기를 높이다 망했고,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심으로 온 인류를 살리셨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장대를 세웁니다. 그런데 그 장대가 결국 자기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파괴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십자가에서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골로새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정사와 권세를 무장 해제시키셨다고 말합니다. 사탄이 승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이 나오고, 실패에서 승리가 나오며, 눈물에서 영광이 나옵니다. 에스더 6장에 보면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주 짧게 기록하지만 사실 이 한밤의 불면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별만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잠까지도 다스리십니다. 왕은 궁중일기를 읽게 되고 모르드개의 공로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 하만이 나타납니다. 세상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믿음은 이것을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묻습니다. 하만은 자기 이야기인 줄 착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중심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 입으로 모르드개를 높이는 방법을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은 그대로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아지셨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낮아짐 없는 높아짐은 없습니다. 눈물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모르드개는 높임을 받은 후에도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영광을 자기 것으로 붙잡지 않습니다.
반면 하만은 수치를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의 영광은 잠시뿐입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에스더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갔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에스더는 한 민족을 구원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주님을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예수님은 믿음의 발걸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발걸음의 끝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습니다.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었고, 눈물 뒤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해되지 않는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왕의 잠을 깨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도 바꾸실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