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읽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살아 있는 음성으로 말하게 하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천둥소리가 산을 뒤흔들고 번개가 밤하늘을 찢는 것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 깊이 새겨진 세 개의 비석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이 비석들은 차갑게 침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이 강단에서 그것들은 각각 ‘약속의 성취’, ‘대속의 신비’, 그리고 ‘영원한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복음의 정수를 외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하나님은 준비하셨으며,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외침입니다. 이 외침을 따라 보십시오! 백 세 된 아브라함과 태가 죽은 것 같은 사라의 품에 이삭이 안겨 있습니다.
불모의 사막에서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안개 속을 헤매는 나그네가 눈 앞에 펼쳐진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처럼, 죽은 나무에서 싹이 돋아 꽃이 피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능한 곳에서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복음은 결코 인간의 노력이나 육체의 힘으로 빚어낼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끝난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현미경으로 물방울 속에 숨겨진 우주를 발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적은 작은 것 속에 무한한 경이를 드러내십니다. 이삭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닙니다. 계획이 아닙니다. 노력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낳은 자녀요, 하늘의 웃음입니다. 은혜가 빚어낸 기쁨입니다! 피로 물든 샘이 죄인을 씻어 새롭게 하는 것처럼, 이삭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가져온 약속의 새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약속의 자녀 이삭이 자라나자,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그를 희롱하기 시작합니다. 아, 여러분! 이 광경이 얼마나 오늘 우리의 심령을 찌릅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이스마엘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집 안의 불청객처럼, 사이렌의 노래가 항해자를 유혹해 암초로 이끄는 것처럼, 독사가 은밀히 기어들어 독을 뿜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행하여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외치는 그 율법의 종을 내어쫓으십시오!
”내가 더 기도하면…”, “내가 더 헌신하면…”, “내가 더 잘하면…” 하는 그 육신의 목소리를 버리십시오! 하갈과 그 아들은 약속의 유업을 함께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율법과 섞일 수 없으며, 은혜는 인간의 공로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바다와 강물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이 둘은 영원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義) 위에 인간의 의를 단 한 방울도 더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드십시오.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약속의 이삭만을 품으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영혼에 하늘의 웃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웃음은 폭풍우 후의 무지개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가져다주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모세처럼, 그 기쁨은 죄의 사막을 영원한 낙원으로 바꿉니다!
이제 우리는 모리아 산의 엄숙한 정점으로 올라갑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손에 들린 칼을! 제단 위에 묶인 이삭을! 하늘과 땅이 숨을 멈춘 그 순간, 아브라함은 칼을 들어 올립니다. 이삭은 그의 유일한 별, 노년의 등불이었습니다.
만일 이삭이 죽는다면 아브라함의 빛은 꺼지고, 약속의 강물은 말라버릴 것입니다. 태양이 정오에 검게 되고 달이 어둠에 가려지는 것처럼, 지진이 땅을 갈라놓는 것처럼, 이 시련은 모든 기쁨을 삼켜버릴 듯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천둥 같은 음성이 하늘에서 터집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리고 눈을 들어 보십시오.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이 이미 거기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횃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빛을 발합니다.
오, 가련한 죄인들이여! 저 숫양이 누구인지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그는 예표입니다! 그는 그림자입니다! 그는 바로 당신과 나를 대신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삭은 죽어야 마땅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숫양이 대신 죽었기 때문입니다. 죄수의 목에 걸린 밧줄이 갑자기 끊어지는 것처럼 우리를 위한 대속이 십자가 위에서 한 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신비요, 복음의 심장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요구하셨으나, 그에게서 그 아들을 거두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에게서는 진노의 칼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피를 남김 없이 흘리심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순간 단단한 요새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리고 성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죄의 장벽도 무너졌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이 완벽한 제사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드릴 제물이 없습니다. 눈물도 아닙니다! 결단도 아닙니다! 서약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의 그분은 거센 파도가 바위를 만나 부서지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산산조각 내십니다. 콜럼버스의 배가 머나먼 신대륙으로 인도한 것처럼, 이 대속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막벨라 굴 앞에 서 있습니다. 사라는 떠났고, 아브라함은 슬픔 속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웁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그 굴을 사는 장면을 주목하십시오. 그는 왜 그토록 정당한 값을 치르고 매장지를 구했습니까?
그것은 이 땅이 장차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땅임을 믿었기 때문이며,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무덤을 샀지만, 실상은 부활을 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죽음은 절망의 무덤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겨울 눈 속에 숨겨진 봄의 싹처럼 죽음 속에 부활의 생명이 기다립니다.
아브라함이 값을 치르고 소유지를 확정했듯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혈로 우리라는 소유를 확정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종이 아닙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그 소망은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 속에서 영원히 빛납니다. 죽은 아들의 미래를 꿈에서 본 부모가 깨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의 슬픔도 영원한 빛 속에서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밀한 돌보심이 우리를 영원한 유업으로 인도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행위라는 이스마엘을 내어쫓고 은혜의 이삭을 품으십시오. 모리아 산에서 예비 된 숫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그리고 막벨라 굴의 소망처럼,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복음은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선언입니다.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완벽한 승리 안에서 당신의 영혼은 참된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이 복음이 여러분을 영원히 지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