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 - 꿈과 해석>
-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 그리고 영원한 나라의 도래가 등장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 그리고 이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세상의 제국들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며,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로만 미래의 비밀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 바벨론 제국을 다스리던 느부갓네살 왕은 어느 날 밤 꿈을 꾸고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바벨론의 박사들, 점쟁이들, 술사들, 갈대아 지혜자들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을 말하고 해석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꿈의 내용을 밝히지 않고, 그들이 꿈 자체와 해석을 동시에 말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이 진실된 자임을 증명하는 길이라 말한다. 지혜자들은 이를 불가능한 일이라며 거부하고, 왕은 분노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이 사건은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계시에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며,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신비를 밝히지 못하며, 계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왕의 명령에 따라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다니엘은 지혜롭게 아리옥(왕의 시위대장)에게 상황을 묻고, 왕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다.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가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과 그 해석을 환상 중에 계시하신다. 다니엘은 즉시 하나님을 찬송하며,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만이 때와 시기를 바꾸시며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며, 지혜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는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그 계시는 자기 자랑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을 높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 왕은 거대한 신상을 보았는데, 그 머리는 순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철, 그리고 발은 철과 진흙이 섞인 형태였다. 그 때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이 날아와 신상의 발을 쳐서 산산조각 내고, 그 신상 전체가 사라지며, 돌은 커져 온 세계를 가득 채운다. 여기서 머리의 금은 바벨론 제국으로 현재의 왕 느부갓네살을, 가슴과 팔의 은은 바벨론 이후의 제국인 메데-바사 연합왕국을, 배와 넓적다리의 놋은 헬라 제국을, 종아리와 철은 강력하나 분열된 로마 제국을, 발의 철과 진흙은 로마 이후의 분열된 나라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 곧 메시아의 나라로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왕국을 의미한다. 이 해석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세상의 제국들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지나가는 존재임을 밝히는 계시적 예언이다. 이 부분에서 다니엘서 전체의 중심 주제가 드러나며, “인간의 왕국은 무너지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진리가 이 장면에서 확증된다. 마침내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신들의 신이시며, 왕들의 주재시며,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분”이라 고백하며, 다니엘을 바벨론 전 지역의 총리로 삼고, 그의 친구 세 사람도 각 지방의 고관으로 세운다.
<단 3 - 절대 신앙>
- 느부갓네살 왕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신상(높이 약 27m, 너비 약 2.7m)을 바벨론 평지에 세우고, 전국 각지의 고관들을 모아 놓은 후 나팔과 악기 소리가 날 때 모두 그 신상 앞에 엎드려 경배하라고 명령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는 형벌이 뒤따른다. 이는 왕의 절대 권력을 강화하고, 신상 숭배를 통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이처럼 세상 권력이 종종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지만, 참된 신자는 이러한 압박 속에서 분별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바벨론 고관들 중 일부는 유다 출신 고관들, 즉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신상에 절하지 않았음을 왕에게 고발한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분노하여 세 사람을 불러 최후의 기회를 준다. “너희가 절하지 않으면 즉시 풀무불 속에 던져질 것이며, 어떤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고 왕은 도전적으로 묻는다. 이에 대해 세 사람은 담대하게 응답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은 우리를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과 동시에 “설령 구원하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는 절하지 않겠다는 절대적 신앙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믿음은 결과가 아닌 대상에 근거한다. 즉, 이 세 사람의 믿음은 인간적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나온 고백인 것이다.
- 왕은 분노가 극에 달해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풀무불을 달구고, 용사들에게 세 사람을 결박하여 던지게 한다. 불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을 던지던 자들이 죽을 정도였다. 그런데 왕은 풀무불 속을 보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세 사람이 결박되지 않은 채 거닐고 있으며, 넷째 인물이 “신들의 아들과 같았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 또는 구약에서 종종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는 신적 존재(곧 메시아의 예표)로 이해된다. 세 사람은 불에 타지 않았고,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으며, 옷에 불탄 냄새조차 없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지 불 속에서 그들을 지키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함께 계셨다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 임재로 함께하심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면서 가장 극한의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는 온전한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능력에 압도되어, 세 사람을 다시 불러내고 그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누구든지 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선언한다. 그는 “이처럼 자기 하나님을 신뢰하고 왕의 명령을 거슬러 자신들의 몸을 바친 자들”이라며 그들을 칭송하고, 바벨론 지방에서 그들을 더욱 높은 자리에 임명한다. 그러므로 이 장은 신앙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충성한 자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세속 권세 앞에서 믿음과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신앙의 모범이 된다.
<단 4 - 경고이자 선언>
- 여기에는 느부갓네살 개인의 간증이자,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이 얼마나 크고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서사가 나타난다. 즉, “인간 교만의 꺾임과 하나님의 통치 인정”이라는 핵심 주제로 해석하며, 이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신학적 경고이자 은혜의 선언이라 말한다. 느부갓네살은 이방 민족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하며, 자신이 체험한 일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그는 편안하고 번영하던 중 꿈을 꾸게 되며, 그 꿈은 자신에게 큰 두려움을 주었다. 이에 그는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불러 해석하게 했으나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고, 마침내 다니엘이 불려오게 된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까지 닿은 큰 나무가 모든 생명에게 먹이와 그늘을 주고 있었는데, 하늘의 파수꾼이 내려와 나무를 베고 그루터기만 남기라고 명령한다. 그 나무는 일곱 때 동안 사람의 마음을 잃고 짐승처럼 살게 된다. 이 꿈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결정되며, 그 목적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 꿈은 하나님의 계시적 경고로, 인간의 권세가 자기 것으로 착각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꺾으심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드러내신다.
- 다니엘은 그 큰 나무가 느부갓네살 자신이며, 그의 권세와 영향력이 모든 나라에 미치고 있음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왕은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일곱 때 동안 정신을 잃고 짐승처럼 들짐승과 함께 살며 풀을 먹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꿈에 그루터기가 남겨진 것은 회복의 가능성을 뜻하며, 다니엘은 왕에게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며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하나님 앞에서 길을 돌이킬 것을 권면한다. 이는 회개를 통해 심판이 유보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이 장면은 “하나님은 심판보다 긍휼을 먼저 원하시는 분”이신 것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경고는 언제나 돌이킴의 기회로 주어진다고 설명한다. 12달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궁을 거닐며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내 권세와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냐”라고 자랑한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와, 그의 나라가 그에게서 떠나며, 사람들 가운데서 쫓겨나 짐승처럼 들에서 살게 되며, 일곱 때가 지나야 하나님의 주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이루어진다. 말씀이 곧바로 성취되어, 그는 사람의 이성을 잃고 들짐승처럼 풀을 먹고, 몸에 이슬을 맞으며 머리털과 손톱이 자랄 정도로 인간적인 외모를 잃는다. 이 장면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는 순간,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정한 기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정신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원하신 통치, 그의 뜻을 막을 자가 없음을 고백한다. 왕권과 영광도 다시 회복되었으며, 그는 더욱 강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하늘의 왕을 찬송하며 경배하는 것이 옳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고 인정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낮추심과 회복을 동시에 포함하는 것이며,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에서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