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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복신앙연구소</title>
		<link>http://www.bog.or.kr</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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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18. 십자가의 피난처와 어린양의 영원한 승리 (사 32~34)]]></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70]]></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세상은 낙원을 이뤄줄 영웅을 찾아 방황합니다. 그러나 죄인이 통치하는 이 땅 위에 어찌 거룩한 평화가 싹틀 수 있겠습니까? 무너진 인류의 역사는 목마르게 외칩니다. 인간의 왕관은 영광이 아니요, 오직 더 깊은 죄악의 멍에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눈을 들어 저 이사야의 예언을 바라보십시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오, 이 왕은 흙으로 돌아갈 다윗도 아니요, 연약한 히스기야도 아닙니다. 이분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백성의 피를 요구하지만, 우리의 왕께서는 백성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피를 쏟으셨습니다. 세속의 권력은 타인을 희생시키지만, 하늘의 왕은 친히 제단 위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그 성스러운 그늘을 바라보십시오. 이사야는 가슴 뛰는 어조로 선포합니다.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며 폭우를 가리는 곳이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복음의 음성입니까! 

죄책감이 거친 폭풍처럼 밀려올 때, 죽음의 그늘이 짙은 광풍으로 불어올 때, 사탄의 사악한 시기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영혼을 가르는 태풍으로 들이닥칠 때, 우리가 달아나 숨을 영원한 바위 바위 구멍은 어디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찢겨진 곁창풍뿐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방주 밖에는 오직 절망의 심판뿐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밖에는 맹렬히 타오르는 영원한 판결뿐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방주 안에는 신성한 안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피난처, 즉 재물과 건강과 명예라는 모래성은 죽음의 찬 바람 한 줄기에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 묻은 손은 저 요단강 건너편까지 당신의 영혼을 받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단비가 내립니다.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교회는 사람의 정교한 프로그램이나 헛된 기술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거룩한 호흡이 불어와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황량한 광야가 풍성한 과수원이 되고, 바짝 마른 영혼의 골짜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며, 메말랐던 죄인의 눈에 통회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것은 새로운 기법이 아닌 오직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강력한 불길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결실을 맺으십니다. “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평화는 가짜요, 죄의 청산이 없는 화평은 악마의 속임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만족시키셨기에, 비로소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의가 먼저요, 그다음이 평화입니다! 십자가 없는 평화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허무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왕께 기꺼이 복종하십시오. 그분의 다스림 아래 거하십시오.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폭풍우 속의 완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제 선지자의 시선은 의의 왕에서 거룩하고 두려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강포한 앗수르를 향해 번개처럼 외칩니다.

“약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할 줄 알고 오만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가 정한 시간에 다다르자, 그 강대한 제국은 밤사이의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칼을 쥔 자가 승리한다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최종 승리자라고 선언합니다!

때로는 악인의 형통함이 우리 눈을 가릴 때가 있습니다. 거짓이 승전가를 부르고, 정직한 성도가 눈물짓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한 시계는 단 1초도 오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급함으로 무너지지 않고, 조용히 여호와를 기다립니다. 

선지자의 이 간절한 부르짖음이 우리의 호흡이 되기를 원합니다.“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참된 믿음은 자신의 의로움을 의지하지 않고 매일 아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호흡하는 것도 은혜요,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것도 은혜요, 주를 믿는 그 소망도 오직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은혜의 선물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맹렬한 불꽃처럼 피어오릅니다!

“우리 중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살 수 있겠느냐?” 오, 타오르는 불길 같으신 하나님 앞에 감히 어느 죄인이 스스로 설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푼돈 같은 선행으로, 껍데기뿐인 종교 형식으로, 혹은 목메인 눈물 따위로 어떻게 하늘의 공의를 만족시키겠습니까? 

헛되고 헛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義), 그분의 보혈의 옷을 입은 자만이 저 거룩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상함 없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성도들에게 묵시록과 같은 약속이 펼쳐집니다.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서 볼 것이다.”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은 황금 길이나 정금 면류관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왕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아득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그날에는 베일을 벗고 그분의 얼굴을 친히 맞대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나팔 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선명한 심판의 경고로 이어집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은 노래하면서도, 그분의 엄위하신 진노는 거부하려 합니다. 그러나 죄를 향해 분노하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닌 기만에 불과합니다. 

거룩한 사랑이 있기에 거룩한 진노가 존재합니다. 이사야 34장은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묵시적인 칼날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고 교만했던 에돔에게 심판의 칼이 떨어졌습니다. 이 에돔의 멸망은 한 민족의 역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죄인들이 맞이할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의 전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습니다. 노아의 날에도 그러했고, 홍해가 갈라지기 직전에도 그러했으며,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도 세상은 쾌락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번도 허공으로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믿음은 스쳐 지나는 감정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위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이 덧없는 세상의 뉴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여호와의 책을 펼쳐 드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심판의 먹구름 뒤편에서 복음의 태양이 얼마나 찬란하게 솟아오르는지! 이사야 34장의 준엄한 진노는 곧이어 35장의 영광스러운 환상으로 이어집니다. 

거친 광야가 장미꽃처럼 피어나고, 구속받은 백성이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반전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칼날이 우리를 향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어린양을 향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분이 율법의 저주를 홀로 담당하셨기에 우리가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모두 마셨기에, 우리가 비로소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 거하는 성도는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재판장이 이미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리스도라는 안전한 방주 밖에 머물러 있는 영혼이 있습니까? 망설이지 말고 오늘 피하십시오! 

노아 방주의 문이 닫혔던 것처럼, 은혜의 문도 영원히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십자가 밑으로 달려오십시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무서운 진노가 따스한 사랑으로 바뀌고, 절망의 죄인이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은혜를 붙드십시오. 세상을 두렵게 할 마지막 심판의 날이 반드시 다가오지만, 십자가의 피 아래 숨은 자에게 그날은 정죄의 날이 아니라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 주시는 영원한 피난처이십니다. 그분의 찢기신 몸이 우리의 성벽이 되었고, 그분의 보혈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이 되었으며,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폭풍이 몰아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무너져도 놀라지 마십시오. 어린양께서 승리하셨고, 그분 안에 있는 자들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믿음은 눈으로 바뀌고, 소망은 완전한 성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는 순례자가 아니라, 보좌 가운데 서신 어린양을 얼굴과 얼굴로 뵙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눈물이 영원히 씻겨지고, 죄는 다시는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며, 사망은 영원히 삼켜질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hu, 06 Aug 2026 06:28: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7.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을 향해 돌리는 믿음의 눈 (사 29~31)]]></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9]]></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피조물의 허망한 깃발이 꺾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왕좌만이 태양처럼 찬란히 솟아오르는 신성한 광경을 목도하고자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나팔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 소리는 예루살렘의 거짓된 평안을 가르는 벼락이요, 불신앙의 밤을 찌르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심판의 짙은 먹구름 너머에는 언제나 붉게 타오르는 회복과 은혜의 찬란한 새벽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파멸의 잿더미에 던져 넣기 위해 치시는 분이 아니요, 오직 영원한 반석 위에 다시 세우시기 위해 썩어질 거푸집을 허무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하나님의 제단의 번제물에서는 구름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절기의 노랫소리는 성전 뜰에 시내처럼 흘렀건만, 하늘의 주님께서는 왜 그 도성을 향해 슬피 탄식하십니까? 그들의 입술은 비단처럼 고운 말로 하나님을 찬미했으나, 그들의 마음은 겨울철 얼어붙은 강물처럼 차갑고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술은 성전의 문턱을 넘었으나 삶은 저자거리의 우상을 품었고, 무릎은 여호와 앞에 꿇었으나 영혼은 이미 세상을 향해 절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가 뿜어내는 목소리의 크기를 측정하지 않으시고, 그 깊은 속에서 울려 나오는 심령의 진실을 달아보십니다. 

겉치레의 화려한 가면은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불꽃 같은 눈동자를 가지신 전능자의 시선 앞에서는 찰나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예배당의 의자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품에 안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에 적셔져 그분의 거룩한 생명에 붙어 있는 영혼만이 참으로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종교적 의식은 정교한 태엽 인형처럼 경건한 습관을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단 한 점의 생명도 창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려진 불꽃일 뿐 영혼의 추위를 녹이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거룩한 불길만이 우리 가슴 속 돌덩이 같은 마음을 깨뜨리고 살처럼 부드러운 영혼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그러므로 형식이라는 화려한 누더기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갈 유일한 제물은 깨어지고 애통하는 심령뿐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오, 이 얼마나 거룩한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게 만드는 말씀입니까! 회당의 맨 앞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기도가, 하늘의 하나님께는 가장 가증한 악취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을 연기하는 세속의 배우가 되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쌓아 올린 지혜의 바벨탑도 단 한 번의 숨결로 뒤엎으십니다. 예루살렘의 정치인들은 숲속의 여우처럼 음흉한 묘책을 꾸미고, 동맹의 그물을 치며 자신들의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지혜자의 지혜를 멸하리라!” 인간의 가장 뛰어난 지혜도, 하나님의 미련함보다 더 보잘것없습니다. 사람은 겨우 미래의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지만, 하나님은 미래 자체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말씀보다 자신의 얕은 판단을 앞세우는 순간, 은혜의 시각으로 볼 때 가장 가련한 바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은혜의 바다는 언제나 심판의 잔보다 깊고 넓습니다. 선지자의 눈은 메마르고 가파른 레바논의 거친 들판이 향기로운 장미 동산으로 변하는 기적의 날을 바라봅니다. 닫혀 있던 영혼의 귀가 열려 하늘의 멜로디를 듣고, 진흙으로 가려졌던 소경의 눈이 밝아져 왕의 영광을 보게 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의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대 땅의 영토적 회복을 말함이 아닙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적 소경의 눈을 밝히시고 죽었던 우리 영혼에 영원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실 복음의 새 아침을 향한 위대한 예언입니다! 복음은 눈먼 자에게 안경을 얹어주는 미봉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덤 속에 누워 부패해 가던 시신에게 전능자의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살려내는 거룩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제 30장의 성전으로 들어서면, 하나님의 안타까운 호통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울립니다. “패역한 자식들아!” 아시리아의 사자 소리에 놀란 유다는 하늘의 왕께 무릎을 꿇는 대신, 이집트의 그늘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빠른 말과 강한 병거를 의지하며, 만군의 주님께는 한 마디 기도의 향조차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련한 초상입니까. 시련의 풍랑이 밀려올 때, 우리는 먼저 사람의 손을 잡으려 애쓰고, 주머니 속 돈의 액수를 계산하며, 세상의 비열한 꾀를 궁리합니다. 

기도는 언제나 맨 마지막 수단으로 밀려나고, 하나님은 모든 방법이 실패한 뒤에야 찾아가는 비상구 정도로 취급받으십니다. 그러나 하늘의 선언을 들으십시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 세속의 권력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있으나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한 포기 잡초처럼 타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피난처는 애굽의 그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손을 펼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은혜의 오아시스를 가리키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세상은 거친 파도처럼 끊임없이 당신을 내몰며 “더 빨리 달려라, 더 높이 치솟으라, 네 힘으로 쟁취하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거룩한 정적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가만히 머물러라.” 믿음은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조급함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은혜의 바위 위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거룩한 인내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 고요함 속에서 기다렸고, 옥에 갇힌 요셉도, 동굴 속의 다윗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약속은 시계바늘보다 느리게 도착하거나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기다리시는 이유는 심판의 매를 아껴 두었다가 들이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의 상한 심령 위에 은혜의 기름을 가득 부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저린 사랑입니까! 우리는 작은 서운함에도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지만, 우리 하나님은 태산 같은 죄악 앞에서도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피로 맺은 언약을 영원히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집 나간 탕자를 향해 밤새 문을 열어두신 아버지이십니다

31장에 이르러 선지자는 다시 한번 불타는 권고를 던집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늠름한 말들의 근육과 화려한 병거의 숫자를 보며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말은 육체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우주를 관통하는 명쾌한 진리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움켜쥐려고 피눈물 흘리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한 자루의 흙으로 돌아갈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영이십니다! 인간의 힘이란 불어오는 바람 앞에 사시나무처럼 떨다 꺼져버릴 촛불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온 우주를 밝히고도 남음이 있는 불타는 태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둥지 위를 나풀거리며 날개로 새끼를 덮는 어미 새처럼, 예루살렘을 당신의 그늘 아래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훗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아버지의 가슴입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보다 언제나 먼저 있었던 것은 비할 데 없는 사랑이었고, 징계의 채찍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가슴 찢어지는 긍휼이었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와 한없는 사랑이 거룩하게 입 맞춘 장소입니다. 

죄는 반드시 불로써 심판받아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진노의 잔을 당신의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에 부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잔을 비우셨기에, 이제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정죄함의 그늘이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성전이시며, 풍랑 속의 유일한 피난처이시요, 우리 영혼의 참되신 목자이자, 세세토록 다스리실 영원한 왕이십니다. 겉치레만 무성한 헛된 껍데기 신앙을 오늘 이 자리에서 내버리고, 당신의 깨어진 마음 전체를 그분께 바치십시오. 인간의 가련한 지혜를 내려놓고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꼭 붙드십시오. 

시온의 언덕 위에서 당신을 위해 보혈을 흘리신 왕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이 주는 허망한 도움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나,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푸를 것입니다. 그분의 피 묻은 날개 아래 거하는 영혼은 세상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바다에 빠지는 폭풍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마지막 날,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멈추지 않을 은혜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Wed, 05 Aug 2026 06:52: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6. 반석 위에 선 흔들리지 않는 성도 (사 26~2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8]]></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가 흉흉하게 울부짓을 때에도 결코 요동하지 않는 하나님의 평안, 곧 영원의 해안에 부딪히는 하늘의 거룩한 고요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환난의 검은 구름과 심판의 벼락이 지나간 자리 위에, 마침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성읍을 노래합니다. 

보십시오! 이 성은 인간의 썩어질 손이 흙과 돌로 쌓아 올린 저 오만한 바벨론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당신의 피 얹힌 구원으로 성벽을 둘러치신 영원한 시온입니다. 선지자는 기쁨에 겨워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세상은 찰나에 불과한 성을 쌓지만, 하나님께서는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성을 세우십니다! 

사람의 성벽은 고작 적군의 칼날을 막을 뿐이나,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죄와 사망, 그리고 우리 영혼을 향해 내리쳐질 여호와의 맹렬한 진노까지도 완벽하게 막아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가장 안전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높이 솟은 피난처에 사는 자가 아니라, 은혜의 그늘 아래, 곧 그리스도의 찢겨진 곁창에 가장 깊이 숨어드는 자입니다.

하늘의 보좌에서 들려오는 저 달콤한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영광스러운 약속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평안이란 그저 폭풍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잔인한 침묵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 주시는 평안은 영혼을 하늘의 고요함으로 감싸 안는 신비로운 평강입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는 까닭은 바다가 잔잔해서가 아닙니다. 그 거대한 닻이 바다 깊은 곳, 흔들리지 않는 바위에 굳건히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는 까닭 역시 내 삶의 환경이 평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멍 난 손이 우리를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비천한 눈이 세상을 향할 때마다 영혼은 두려움의 물결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보혈 흘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순간, 거친 바람은 그치고 하늘의 평화가 눈물 젖은 눈동자에 깃듭니다. 믿음은 폭풍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리라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은, 거센 파도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신 주님의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게 할 뿐입니다!

이사야는 또다시 영혼의 나팔을 불어 외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왜입니까? 주 여호와는 시들지 않는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반석은 세월의 맷돌 아래 부서져 가루가 됩니다. 청춘의 화려함도 스러지고, 강건하던 육체도 무너지며, 손에 쥐었던 금모래 같은 재산도 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주를 붙드는 우리의 손은 아이의 손처럼 약하고 떨릴지라도, 우리를 움켜쥐신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결코 풀리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별들 위에 새기고자 탑을 쌓아 올리지만, 하나님께서 그 코끝의 숨을 걷어가시면 그것은 한 줄기 먼지로 낮아집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영혼은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나라의 거룩한 역설입니다. 낮아지는 자가 보좌에 앉고, 자신을 비우는 자가 하늘의 풍성함으로 채워집니다. 의인의 길은 곧고 평탄합니다. 그것은 거친 가시밭길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굽은 길을 지나 마침내 영광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발바닥에 피가 고이고 가시가 찌를지라도, 그 길의 끝에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집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칠흑 같은 고난 속에서도 소망의 깃발을 내리지 않습니다. “주의 심판이 세상에 임할 때에, 세상의 거민이 의를 배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햇살이 쏟아지는 형통의 날보다, 캄캄한 밤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배웁니다. 

따스한 햇살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나, 사나운 폭풍은 나무의 뿌리를 땅속 깊은 반석에 박히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를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다 가도록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존재로 단련하시는 거룩한 토기장이이십니다. 이어 선지자는 죽음을 뚫고 나오는 놀라운 부활의 찬가를 터뜨립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복음의 환호입니까! 이사야는 이미 구속의 십자가 너머, 동틈에 솟아오르는 부활의 새벽빛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덤은 성도의 영원한 주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어두운 무덤의 문을 산산조각 내셨기에, 성도에게 죽음이란 그저 잠시 취하는 달콤한 수면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무덤을 개뜨리고 일어나신 그 찬란한 아침, 죽음은 그 오만한 왕관을 빼앗겼습니다. 사망이 여전히 차가운 입김으로 우리를 찾아오지만, 더 이상 우리 영혼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장례식은 절망의 암울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향해 날개치며 올라가는 승리의 시작입니다!

27장에 이르러, 여호와께서는 바다의 거대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십니다. 세상 전체를 삼킬 듯 포효하는 악의 세력도, 여호와의 날카롭고 크고 강한 칼날 앞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짚단에 불과합니다! 사탄이 사자처럼 부르짖으며 찾아올지라도, 우리 주님의 허락 없이는 성도의 머리털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포도원을 향해 사랑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따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말씀이 주는 천상의 위로를 맛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아슬아슬한 악력보다, 우리를 안고 계신 주님의 강한 팔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합니다. 

육신의 어머니는 제 품의 아이를 잊을지언정,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당신의 피로 사신 양 떼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그 포도원에 은혜의 단비를 내리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거룩한 비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숨 쉬는 존재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성령의 이슬을 마시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은혜의 샘물이 끊어지는 순간 영혼은 순식간에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맙니다. 농부가 가지를 치는 까닭은 나무를 해치려 함이 아니요, 더 달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입니다. 성도에게 찾아오는 징계는 버림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분이 나를 참 자녀로 사랑하신다는 가장 명백한 인장(印章)입니다. 

날카로운 전지 가위의 서슬에 나무가 신음할지라도, 농부의 심장은 오직 풍성한 결실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흩어진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씩 모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입니다! 목자는 제 양을 그저 숫자로 세지 않고,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부르며 찾아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가시밭길을 헤매던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영광의 울타리 안으로 품어 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28장에 들어서며, 우리는 에브라임의 비참한 교만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술에 취한 자의 화려한 면류관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풍요를 사랑했고, 거룩한 순결보다 찰나의 쾌락에 영혼을 팔아넘겼습니다. 술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만들지만, 죄는 영혼의 눈을 영원한 소경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기쁨은 잠시 영혼을 마비시킬 뿐, 술이 깨고 나면 더 깊고 끔찍한 공허만을 남길 뿐입니다.

심지어 거룩한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독주에 취해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강단에 선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백성들은 멸망의 길로 내달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교회는, 아무리 웅장한 석조 건물이 남아 있을지라도 생명이 숨 쉬지 않는 거대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통탄할 흑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거룩한 소망의 새벽별을 쏘아 올리십니다.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이 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 건축자들은 쓸모없다며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구원의 집을 떠받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오늘도 모래 위에 자신의 인생이라는 성을 쌓습니다. 성공이라는 모래, 건강이라는 모래, 사람들의 찬사라는 덧없는 모래 위에 집을 지어 올립니다. 그러나 심판의 폭우가 쏟아지고 거친 창수가 밀려들 때, 그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오직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인생만이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친히 광야의 모든 시험을 견뎌내신 돌이십니다! 사탄의 간교한 유혹도, 십자가의 참혹한 수치와 고통도, 그리고 우리 죄를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까지도 그분은 온몸으로 견뎌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받아 검증된 반석 위에 영혼의 발을 내딛는 자는, 마지막 날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사야는 이 위대한 설교의 마무리를 농부의 지혜로운 비유로 맺습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모든 곡식을 똑같은 몽둥이로 내리치지 않습니다. 소회향은 소회향대로, 아몬드는 아몬드대로 부드럽게 털어내고 알곡에 따라 타작의 방식을 달리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때로 우리는 왜 내 삶에 이런 아픈 시련이 찾아오는지 다 이해할 수 없어 눈물 흘립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농부가 무자비하게 도리깨질을 하는 것은 곡식을 망가뜨리려 함이 아니라, 껍데기를 벗겨내고 순전한 알곡만을 얻으려 함입니다. 이처럼 모든 시련과 고난 뒤에는 우리를 영광스러운 알곡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은 지금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나라들이 흔들리고, 경제가 요동치며, 우리의 건강과 가정마저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흔들리는 세상의 먼지 구름 한가운데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유산인 당신의 삶을 덧없는 모래 위에 세우지 마십시오. 오직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온 영혼으로 서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견고한 성이시요, 폭풍 속의 평강이시며, 포도원을 밤낮으로 지키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시온의 모퉁이에 놓인 영원한 기초 돌이십니다!

이 영원한 반석 위에 서 있는 성도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04 Aug 2026 06:26: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5. 무너지는 세상과 영원한 왕국 (사 23~25)]]></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7]]></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땅의 화려한 면류관이 어떻게 흙먼지 속으로 짓밟히는지, 그리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왕국만이 어떻게 영원한 정점에 솟아오르는지를 목도하고자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두로의 통곡으로 시작하여 온 천지를 뒤흔드시는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의 나팔을 불고, 마침내 은혜의 시온산 위에서 펼쳐질 영광스러운 구원의 연회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것은 한낱 비탄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너지는 세상의 잿더미를 넘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팡파르입니다! 바라보십시오, 두로는 진정 ‘바다의 여왕’이었습니다! 수천 척의 돛배가 그 항구로 떼지어 들어왔고, 온 세상의 온갖 금은보화가 그 거리에 융단처럼 깔렸습니다. 

그곳의 상인들은 왕들처럼 대접받았고, 붉은 비단과 칠공예품이 끝없이 흘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멸망의 날을 잊은 채 오만하게 외쳤습니다. “이 방벽은 영원하리라! 우리의 영광은 결코 시들지 않으리라!”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손을 바다 위에 편 순간, 그 단단하던 방파제는 밀가루처럼 부스러졌습니다! 

항구에는 거룩한 침묵이 덮였고, 돛대들은 바람을 잃고 꺾였으며, 상인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밤하늘을 찢는 비통한 통곡으로 변하였습니다. 인간이 가장 견고한 산성이라 믿었던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가락 끝 아래서 가장 무력한 거미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의 두로를 보십시오! 

이 세대는 세상에서의 번영과 성공이 자신들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며 오만하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번영이란 모래 위에 쌓아 올린 헛된 바벨탑일 뿐입니다. 사나운 파도가 밀려오면 그 화려한 궁전도 흔적 없이 쓸려 나갈 것입니다. 돈은 훌륭한 하인이 될 수는 있으나, 결코 거룩한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고요하지만 엄위하게 경고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라.” 재물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왕좌를 찬탈할 때, 그것은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가장 무서운 우상이 됩니다. 두로의 죄는 무역을 한 것에 있지 않고, 부를 의지하여 하늘 높이 고개를 들었던 그 교만에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두로를 이토록 낮추셨습니까?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시나, 그 마음속에 둥지를 뜬 교만이라는 뱀은 멸하시려 합니다. 사람은 높아질수록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지독한 착각에 빠지지만, 주님은 그들을 엎드러뜨리심으로 비로소 먼지 속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놀랍고도 기이한 은혜로 두로의 이야기는 벼락 같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칠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 뒤, 주님은 은혜로운 눈길로 다시 두로를 돌아보십니다. 더욱 가슴 떨리는 약속은, 한때 온갖 욕망과 탐욕으로 얼룩졌던 두로의 재물이 마침내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되어 바쳐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우상과 교만을 위해 탕진되던 것이 이제는 왕중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전능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하게 변조(變條)하십니다. 핍박자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바꾸시고, 저주의 노랫소리를 거룩한 찬송으로 바꾸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24장에 이르면 이사야의 시야는 좁은 도시를 넘어 온 우주로 넓어집니다.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인간이 자랑하던 허영의 문명 전체가 지진을 맞은 듯 비틀거립니다. 죄는 결코 개인의 담장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죄는 가정을 부패시키고, 사회의 뼈대를 갉아먹으며, 끝내 온 세상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듭니다. 

인간은 과학의 발전을 자랑하지만 영혼의 치명적인 죄는 단 한 푼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더 높은 건물을 올렸으나 그 지하에는 더 깊은 절망이 웅크리고 있고, 더 빠른 수단을 개발했으나 마음은 갈수록 텅 빈 공허에 시달립니다. 선지자는 부르짖습니다. “땅이 술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며 흔들리는도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실감 나는 형상입니까! 죄의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해 온 피조물이 신음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코 스스로를 지탱할 기둥이 없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자유라는 달콤한 잔으로 찾아오지만, 마침내 영혼을 옭아맵니다. 그러나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은 심판의 극심한 용광로 속에서도 반드시 ‘남은 자’를 그늘 아래 두십니다. 

온 세상이 절망으로 침묵할 때, 구속받은 무리는 손뼉 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교회는 볕 좋은 날에만 가락을 맞추는 나약한 합창단이 아닙니다. 세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산이 바다 한가운데 빠질지라도, 더욱 거세게 찬양의 깃발을 흩날리는 무적의 군대입니다. 우리의 노랫소리는 가변적인 환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찬송은 오직 갈보리 십자가의 붉은 샘물에서 샘솟습니다. 형통할 때 노래하는 것은 이방인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껍데기를 빼앗기고 착고에 차인 채 밤중에도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이기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제 25장에 이르러 거룩한 찬가가 웅장하게 터져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오, 이것이 믿음의 정점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아는 영혼은 환난의 거센 파도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바라봅니다. 축복의 선물보다 축복을 주시는 손길을 사랑하고, 환경의 형통함보다 주님의 존재 자체를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의 견고한 성을 파쇄하시고, 비천하고 가난한 자의 철옹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폭풍우 속의 든든한 그늘이 되시고, 메마른 광야의 시원한 생수가 되시며,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를 온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잔칫상으로 이끕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시온산 위에서 온 민족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했던 맑은 포도주로 영광스러운 연회를 베푸십니다. 이 잔치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훗날 하늘문이 열리고 펼쳐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영광스러운 예표입니다! 세상의 잔치는 가진 자들이 모이지만 천국 잔치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들이 오직 은혜에 빚진 자로 들어가는 연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 초청장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붉게 인쳐진 것입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거룩한 선언을 들어보십시오. “주께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어둠의 베일을 벗기시며, 사망을 영원히 삼키실 것이라!” 보십시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의 독침을 부러뜨리시고 죽음 자체를 당신의 완전한 승리 속으로 삼켜 버리셨습니다. 그분이 사망의 열쇠를 빼앗아 그 허리를 꺾으셨으므로, 이제 성도의 무덤은 절망의 낭떠러지가 아니라 부활의 아침으로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둥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슬픔의 눈물을 친히 닦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학자들은 눈물의 의미를 분석하려 들지만, 은혜의 하나님은 다정한 손길로 그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우리가 지나온 광야의 가시밭길에서 흘린 모든 비통함이, 아버지의 따스한 품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환희로 바뀔 것입니다. 그날에 구속받은 모든 백성이 동방의 햇살처럼 목청을 높여 외칠 것입니다.

“보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03 Aug 2026 05:26: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4. 심판의 불길을 넘은 은혜의 제단 (사 19~2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6]]></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심판이라는 칠흑 같은 먹구름 뒤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바라보려 합니다. 세상의 정치가들은 역사를 인간의 손으로 주무른다고 오만하게 자부하지만,사실은 온 우주와 열방의 흥망성쇠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손가락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빠르고 번개 같은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십니다! 그 거룩한 발걸음 소리 하나에 애굽의 우상들이 벌벌 떨며, 거만하던 인생들의 마음은 촛농처럼 녹아내립니다. 여러분이 평생을 바쳐 섬기던 우상이 고작 하나님의 발걸음 소리 하나도 견디지 못하는 허깨비라는 사실을 모르셨습니까? 

사람이 만든 신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당신이 조각한 그 우상이 당신의 목을 죄어 멸망으로 끌고 갈 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나무나 돌 앞에 절하지 않을지 몰라요. 그러나 그들은 ‘돈’이라는 우상, ‘권력’이라는 우상, ‘학문’과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 앞에 매일 절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군의 주께서 이 땅을 한 번 흔드시는 날, 여러분이 의지하던 그 모든 것은 거친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시자 애굽은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치고, 이웃이 이웃을 상대로 칼을 듭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도 갈라놓는 지옥의 독소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는 사회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회는 이미 그 속에서 지옥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법입니다. 나일강이 바짝 마르고, 기름진 들판이 황무지가 되며, 장사꾼들은 통곡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일강의 수위를 조절하시는 분이 정치가나 상인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풍년과 흉년, 번영과 가난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재물을 의지하지 마시고, 그 재물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나 아,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반전입니까. 심판의 피비린내로 시작한 애굽의 이야기가 놀랍게도 구원의 찬송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시지만, 이내 그 손으로 다시 싸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칼을 빼시는 것은 여러분을 도살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의 종기를 도려내어 살리려 하심입니다. 의사의 메스는 몸을 찢지만 생명을 살립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진노의 끝이 아니라, 위대한 은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보십시오! 우상의 소굴이던 애굽 한복판에 여호와를 향한 거룩한 제단이 세워집니다. 일찍이 귀신의 처소였던 곳이 은혜의 찬송 소리로 진동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폭발적인 능력입니다! 복음은 겨우 몇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온 민족과 역사의 줄기를 통째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어서 하늘의 법정에서 놀라운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애굽은 내 백성이요, 앗수르는 내 손으로 지은 것이요, 이스라엘은 나의 기업이라!”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은혜입니까! 철천지원수들이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포옹합니다. 십자가는 원수 된 자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하늘의 영원한 다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던 그 굳건한 죄의 담을 당신의 피로 허물어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통이나 가문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를 믿는 오직 그 믿음 하나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20장에서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옷을 벗고 맨발로 다니라 명령하십니다. 

선지자 자체가 움직이는 설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입술보다, 거룩하게 고난받는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발하십니다. 애굽과 구스의 힘을 믿고 우쭐대던 자들을 보십시오. 결국 그들은 사슬에 매여 맨발로 끌려가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의지하는 자의 마지막은 그 인간과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외칩니다. “큰 나라를 붙들어라! 돈을 더 쌓아라! 강한 자의 줄을 잡아라!” 그러나 하늘의 왕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인생을 의지하는 자여!” 여러분, 세상의 높다란 성벽은 여러분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찢겨진 품뿐입니다!

21장에서는 바벨론의 몰락이 선포됩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파수꾼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무너졌다! 무너졌다! 바벨론이여!” 요한계시록에서도 동일하게 울려 퍼질 이 외침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교만과 탐욕으로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 세상의 영광은 반드시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성, 저 영원한 시온성만이 흔들리지 않고 홀로 서 있을 것입니다. 22장의 예루살렘을 보십시오. 적들이 성문 앞까지 밀어닥쳤는데,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회개하기는커녕, 성벽을 더 높이고 무기를 점검하며 저수지를 파느라 분주합니다. 유의하십시오! 준비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준비는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운들, 그 계획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들은 땀 흘려 일했지만 하나님 없이 일했고, 내일을 준비했지만 하나님을 배제한 채 준비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자녀를 여러분의 힘으로만 키우려 하십니까? 주님의 영광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위해 교회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루살렘의 그 미련한 백성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해 화려한 무덤을 파던 셉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먼 타국으로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를 섬기던 엘리아김에게는 ‘다윗 집의 열쇠’가 맡겨집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엘리아김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손에 쥐시고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구원의 문을 여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은혜의 보물창고를 여시는 분도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의 가련한 공로나 도덕적 행위로는 천국의 문고리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 그 신성한 열쇠만이 닫힌 하늘 문을 활짝 열 수 있습니다!

애굽의 우상도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의 무시무시한 영화도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벽도, 셉나의 권세도 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합니다. 세상은 지금도 요란하게 허물어지고 있지만, 우리 주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언젠가 무너질 바벨론에 미련을 두지 마시고, 영원한 하늘의 시온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을 높이려던 헛된 야망을 십자가 밑에 묻어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이름만을 높이십시오. 그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위대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통회하는 죄인에게 천국 문을 활짝 열어주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결코 닫히지 않는 영원한 안식의 도성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왕의 손에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내어맡기십시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더라도, 주님께서 열어놓으신 은혜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02 Aug 2026 06:21: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1 그리스도의 율법]]></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5]]></link>
			<description><![CDATA[본 연구소 고문이시자 예수제자선교회 회장이신 장영출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율법"이라는 주제의 강연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01 Aug 2026 16:16: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24"><![CDATA[생명의 성령의 법]]></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3. 눈물 너머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 (사 15~1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4]]></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눈물과 그 심판을 뛰어넘는 은혜의 소망을 함께 바라보려 합니다. 이사야는 모압과 구스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차가운 저주의 외침만이 아니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죄를 미워하면서도 죄인을 향해서는 눈물을 흘립니다.

모압의 성읍들이 밤사이에 무너지고, 화려하던 궁전에는 통곡이 메아리칩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밀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거리마다 절망의 울음소리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심판의 불꽃 뒤에는 언제나 거룩한 사랑의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한 포도주처럼 입술을 적시지만, 마지막에는 독사의 이빨처럼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세상이 자랑하던 풍요와 쾌락은 한순간에 메마른 들판처럼 변하고, 인간이 의지하던 모든 영광은 새벽안개처럼 사라집니다. 하나님 없이 누리는 번영은 모래 위에 세운 궁전과 같아서, 심판의 비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피난처를 예비하십니다. 이사야는 모압에게 어린양을 시온으로 보내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조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어린양의 길입니다. 훗날 세례 요한이 외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바로 이 모든 예언의 완성이십니다.

십자가의 어린양을 거절하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양의 피 아래 숨는 자는 심판의 폭풍 한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립니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 속에서 안전했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도 영원히 안전합니다.

모압이 멸망한 이유는 단지 우상을 섬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의 교만을 반복하여 말합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왕관이며, 사탄이 처음 쓰고 인간에게 물려준 저주의 면류관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맞서게 되고, 하나님과 맞서는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은 자신감과 교만을 혼동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신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별이 새벽이 오면 스스로 빛을 잃듯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인간의 자랑이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17장에서 에브라임과 다메섹도 심판을 받습니다. 강대했던 나라들은 추수꾼이 이삭을 거두듯 깎여 나가고, 올리브나무 끝에 몇 개의 열매만 남듯 남은 자만 보존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남은 자를 보존하십니다. 은혜는 언제나 심판보다 먼저 시작되었고, 심판 속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성도는 자신의 강함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남겨진 사람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충성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끝까지 붙드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만든 제단을 찾습니다.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붙잡고, 지식을 숭배하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제단을 다시는 바라보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심판은 우상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망치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작은 우상들이 숨어 있습니다. 성공이 하나님보다 소중해질 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때, 심지어 신앙의 열심마저 하나님보다 앞설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우상을 깨뜨리심으로 우리 자신을 잃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 생명이신 하나님을 얻게 하십니다.

18장에서는 먼 구스의 나라가 등장합니다. 강하고 빠른 백성이 사신을 보내지만, 하나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조급하게 움직이지만 하나님은 조용히 하늘 보좌에서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인간은 분주히 뛰어다니지만,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농부가 추수를 기다리듯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때를 기다리십니다. 아직 열매가 익지 않았는데 거두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순간도 늦지 않으시며, 단 한순간도 빠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가장 완전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왜 하나님은 침묵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입니다. 겨울 땅속에서 씨앗이 자라듯,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다듬고 계십니다.

마침내 열방은 시온으로 예물을 가지고 올라올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을 모르던 민족들이 이제는 그분의 이름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구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 어린양을 찬양하게 될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의 제국은 흥하고 쇠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영광은 계절의 꽃처럼 시들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입니다. 교만한 모압도, 강한 다메섹도, 먼 구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인생 또한 그 전능하신 손 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높아진 탑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사람의 손으로 쌓은 성벽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십시오. 그분은 심판 가운데 피난처가 되시고, 눈물 가운데 위로가 되시며, 무너지는 세상 가운데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시온의 왕이십니다.

그 어린양의 품 안에서 눈물을 찬송으로 바꾸십시오. 심판보다 크신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장차 모든 민족이 함께 부를 하늘의 새 노래를 소망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01 Aug 2026 16:10: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2. 구원의 샘터에서 부르는 찬가 (사 12~14)]]></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3]]></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영광스런 구원에 대해서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감격의 노래를 부고자 합니다. 우리는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길 같은 진노 아래 떨던 절망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무서운 진노의 잔이 어디로 흘러갔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죄를 눈감아주지 않으셨습니다. 공의의 검은 골고다 언덕, 그 언덕 위에 높이 들린 독생자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엄위한 공의와 한없는 사랑이 눈물로 입 맞춘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형벌을 다 받으셨기에, 아버지의 눈길은 이제 진노가 아닌 아늑한 위로로 우리를 감싸안으십니다. 

그렇기에 그대의 입술에서 원망의 탄식을 거두고, 영원한 감사의 찬송을 터뜨리십시오. 성도의 구원은 짝퉁 교리의 사슬이나 변덕스러운 감정의 바다 위에 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 자체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라” 고백하는 자는 자기 의라는 더러운 누더기를 던져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을 붙듭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에 폭풍이 없다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폭풍보다 비할 바 없이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노래가 되실 때, 두려움이라는 침입자는 감히 우리 영혼의 왕좌에 앉지 못하고 한순간에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구원은 바짝 마른 죄악의 광야 한복판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우물입니다. 

이 구원의 우물에는 한두 사람의 목을 축일 물이 아니라, 세상 모든 갈급한 죄인을 족히 영생으로 채우고도 남을 십자가의 보혈이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물가에 그저 우뚝 서 있는 것만으로는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믿음의 두레박을 들고 기쁨으로 깊이 길어 마시십시오. 주님께서는 지금도 부르십니다. “목마른 자들아, 다 이 생수의 샘으로 오라!” 구원의 단비로 목을 축인 영혼은 은혜의 보화를 홀로 골방에 숨겨둘 수 없습니다. 

나를 살린 십자가를 온 세상 만민을 향해 목놓아 외치는 것, 그것이 구속받은 교회의 거룩한 특권이자 열정입니다. 복음은 골방의 비밀 문서가 아니라, 온 우주를 향해 나팔 소리로 울려 퍼져야 할 하늘의 대승리 선언입니다. 

시온이 오늘 목청껏 노래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바로 우리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13장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거룩한 산 위에 기치를 올리시면, 열방의 대군이 그분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듭니다. 

바벨론은 스스로 보좌에 앉아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한다 착각했으나, 실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든 작은 몽둥이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제국들이 자신들의 헛된 야망을 좇아 준동하는 것 같아도, 그 모든 역사 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하는 손길이 우뚝 서 계십니다. 

인간의 왕국은 스스로 우뚝 선 듯 자랑하지만, 주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먼지에 불과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며 웃어넘기던 자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그 밤에 도둑처럼, 갑작스러운 통곡으로 임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용사들의 손 마디가 풀리고, 용맹하던 마음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며, 낯빛은 사나운 불꽃처럼 하얗게 질릴 것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죄인이 의지하던 이 땅의 모든 거짓 빛과 유흥이 모조리 꺼져버린다는 엄중한 벼락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아래 피하지 않은 자에게, 그 심판의 날은 피할 길 없는 영원한 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과 악인의 오만한 머리를 반드시 부러뜨리십니다. 사람들은 번쩍이는 금은보화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장담하지만, 여호와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날 때 그 어떠한 것도 영혼을 구원해 내지 못합니다. 

죄는 인간을 하늘 높이 끌어올려 줄 것처럼 간사하게 유혹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지옥의 깊은 수렁으로 던져버립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탑을 쌓아 올릴 때,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은 한순간에 그 기초를 흔들어 사막의 먼지로 만들어버리십니다.

한때 온 열국의 영광이자 자랑이었던 바벨론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들짐승의 거처로 낙인찍힙니다. 영원할 것 같던 황금 도시는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던 궁전에는 오직 사나운 들개와 부엉이의 으스스한 울음소리만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을 쫓아낸 번영은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이미 그 속에 썩어 문드러질 멸망의 씨앗을 품고 있는 법입니다. 영원히 사멸하지 않는 성읍은 인간이 쌓아 올린 바벨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새 예루살렘뿐입니다!

14장을 보십시오. 아무리 가혹한 심판의 폭풍이 온 세상을 쓸어버릴지라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야곱을 다시 불쌍히 여기시고, 흩어져 울던 자들을 그들의 거룩한 본향 땅에 깊이 심으실 것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매질은 언약을 파기하겠다는 분노가 아니라, 방황하는 자녀를 품으로 돌이키시는 아버지의 아픈 눈물입니다. 성도가 때로 비틀거리고 넘어질 수는 있으나, 창세전에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의 줄에서는 결코 끊어질 수 없습니다.

마침내 주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날, 압제자의 사나운 몽둥이와 통치자의 오만은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악인의 권세가 영원한 불멸처럼 보여도, 전능자께서 그 종말의 날을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폭군의 몰락 앞에 이 땅과 레바논의 백향목까지 손뼉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은 가련한 백성들이 흘린 눈물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압제의 무거운 사슬을 친히 끊어내어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이 땅에서 왕관을 쓰고 사람들의 경배를 받던 자도, 죽음의 붉은 문 앞에서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바벨론 왕이 음부의 깊은 수렁으로 떨어질 때, 먼저 죽었던 옛 왕들이 일어나 그를 향해 차가운 실소를 내뱉습니다. 

“너마저 우리처럼 무력해졌느냐? 너 역시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었느냐!” 인간의 헛된 영광은 무덤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며, 웅장했던 악기 소리와 화려한 비단옷도 썩어가는 구더기와 벌레의 밥이 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예비하지 않은 영광은 잠시 깜빡이다 영원한 어둠 속으로 꺼져버리는 장례식의 횃불에 불과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별들 위에 내 보좌를 높이리라!”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의 자리를 탐하는 죄악의 본질이자 교만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려 했던 오만한 자는, 하늘 끝이 아니라 가장 깊은 음부의 구덩이 바닥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가장 비참하게 낮아질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자만이 주 안에서 영원한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때 눈짓 하나로 온 세상을 떨게 만들던 폭군을 향해, 사람들은 눈을 비비며 묻습니다. “이 자가 정녕 세상을 흔들고 제국들을 무너뜨리던 그 자인가?” 

심판의 맑은 햇빛 아래 서자, 무시무시했던 거인은 짓밟힌 한 낱 시체요, 보잘것없는 먼지 부스러기에 불과함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이름과 그 남은 자손의 흔적까지 거룩한 비로 쓸어버리듯 깨끗이 지워버리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앗수르가 아무리 사자처럼 울부짖을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서 부서질 것이며, 그 멍에는 주님의 백성의 어깨에서 흔적도 없이 벗겨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온 세계를 향해 펴졌는데, 감히 어떤 인간의 손이 그 손을 거두어낼 수 있겠습니까? 성도의 진정한 위로는 원수의 약함에 있지 않고, 우리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에 있습니다!

블레셋은 자신들을 치던 몽둥이가 부러졌다고 기뻐 뛰놀았으나, 더 가혹한 독사의 후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안도감이나 세상의 임시방편은 거센 풍랑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로 사서 세우신 시온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바위입니다.

세상 보기에 가난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성도가 피할 곳은 세상의 견고한 성벽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피난처로 삼아주신 거룩한 시온,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입니다. 그 품에서 솟구치는 은혜의 샘터에서 감사의 찬가를 부르십시오!

그 찬가가 당신의 마음에 영원한 행복의 종소리를 울릴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Fri, 31 Jul 2026 06:05:5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1. 어둠을 찢는 은혜의 신비 (사 9~11)]]></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2]]></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간곡한 호소에 귀기울여봅니다. 명심하십시오. 칠흑 같은 어둠도 결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지막 선언이 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 밑에 짓눌려 신음하던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을 품은 거대한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그 빛은 인간이 피워낸 초라한 촛불이 아니요, 세상의 허무한 문명이 만들어낸 희미한 등불도 아닙니다. 영원한 아침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죄인이 그분의 은혜로운 얼굴을 바라볼 때, 절망의 긴 밤은 쫓겨나고 영원한 은혜의 새벽이 솟아오릅니다!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구원의 팔을 걷어붙이실 때, 밭에서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환호와 전리품을 나누는 군사들의 즐거움이 우리 영혼 속에 터져 나옵니다. 죄는 사탄처럼 찾아와 우리의 기쁨을 훔쳐 가지만,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에게 참된 찬송을 되찾아 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억누르던 무거운 멍에를 산산이 조각내고, 결박된 영혼에게 자유를 선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참된 기쁨은 여러분의 가변적인 환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변함없는 구원의 샘터에서 샘솟는 것입니다!

오, 이 거룩한 신비를 보십시오. 하늘이 우리에게 한 아기를 주셨으나, 그 요람에 누우신 분은 만유를 지으신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제국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을 바위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거친 세상의 안전함에 있지 않고,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가슴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채찍질하셨으나,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쉽게 더 완악하고 교만해지는지요. 회개함이 없는 징계는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지 못하고, 오직 강팍한 진흙처럼 더욱 굳어지게 만듭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직도 펴져 있다"는 말씀은 심판의 무서운 벼락이 여전히 멈추지 않았음을 경고하는 나팔 소리입니다. 오늘 쏟아지는 은혜의 거친 손길을 거절한다면, 당신이 맞이할 것은 더욱 가까워진 공의의 심판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위정자들에게 권력의 칼을 맡기신 것은 약하고 가련한 자들을 감싸 안으라는 거룩한 소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썩어질 인생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가난한 자의 재산을 탐하고 백성을 압제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땅의 재판관들 위에 영원한 하늘의 최후 재판장이 서 계십니다. 

인간의 판결은 뇌물과 불의로 굽어질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단 한 번도 비틀어진 적이 없습니다. 교만한 앗수르는 자신의 칼과 기마대가 강하여 승리한 줄로 착각하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아, 그는 섭리의 하나님 손에 들려 잠시 쓰임 받은 초라한 몽둥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열방의 거친 군대마저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어찌 도구가 자신을 쥐고 계신 도목수에게 자랑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라 할지라도 바람에 날리는 한 줌의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불타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를 반드시 보존하십니다. 들판의 집들이 허물어져도 그분의 영원한 언약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거룩한 남은 자들은 더 이상 헛된 사람의 팔이나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여호와만을 단단히 붙듭니다.

영적 부흥의 거룩한 불길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무릎 꿇고 돌아오는 작은 무리의 영혼에서 시작됩니다. 원수의 군대가 시온의 턱밑까지 밀어닥쳐 성문 앞을 위협할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인간의 계산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설적인 역사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교만의 머리를 하늘 높이 쳐들었던 웅장한 나무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도끼날 앞에 무참히 잘려 나갈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분의 손으로 심으신 싹만이 영원히 푸르게 서게 될 것입니다! 

11장에서 다윗의 집안은 도끼에 찍혀 베어진 볼품없는 그루터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가 죽었다고 말하는 바로 그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푸르른 생명의 새 싹을 틔워 내셨습니다. 세상이 "끝났다"고 절망할 때, 은혜의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 영광스러운 싹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하신 그분만이 완전한 공의의 띠를 띠고 온 세상을 의로 다스리실 유일한 왕이십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한 울타리에서 놀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는 비전을 보십시오! 

이것은 죄로 인하여 엉겅퀴와 가시밭이 되었던 피조 세계가 십자가의 은혜로 완전히 회복될 영광스러운 아침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단순히 거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참된 평화는 정치가들의 외교나 군대의 총칼로 오지 않으며, 오직 의로우신 평강의 왕을 통해 쏟아져 내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새의 뿌리로 오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작은 울타리를 넘어 온 우주와 모든 민족의 유일한 기치요 소망이 되십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는 단 하나의 민족만을 위한 나무가 아니요, 세상 끝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향해 뻗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초청장입니다. 

어떠한 무거운 죄인이라도 그리스도께 달려와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는 결코 내어쫓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방으로 흩어진 당신의 양 떼를 찾아 나서시는 신실하신 목자이십니다. 죄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과 갈라놓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지만,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를 다시 그분의 품으로 모아들이십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은혜의 팔이 미치지 못할 만큼 멀리 방황하는 성도는 세상에 없습니다. 구원의 대역사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끝까지 쫓아가시는 피 묻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향한 주권적 섭리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hu, 30 Jul 2026 07:17: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10. 자신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새 삶 (사 6~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1]]></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땅의 왕 웃시야가 죽어 유다의 영광이 한순간에 꺾였을 때에도, 하늘의 왕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보좌 위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왕좌가 비어 쓸쓸해질지라도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히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땅의 불안을 보기 전에 하늘의 보좌를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 올려다볼수록 세상이 주는 두려움은 한낱 먼지처럼 작아집니다. 이사야가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순간, 그는 타인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즉시 자기 자신의 죄악을 보았습니다. 

극진한 거룩함 앞에서는 이 땅에서 가장 경건하다 칭송받는 자라 할지라도 입술의 부정한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결코 자신을 변명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찬란한 빛 앞에서 오직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때 천사가 제단에서 가져온 뜨거운 숯불로 선지자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죄를 사하고 온전케 하는 능력은 인간의 보잘것없는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제단에서 흘러나옵니다. 

그 제단은 후일에 세워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붉은 피로 용서받은 자만이 담대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사자가 됩니다. 은혜를 경험한 영혼은 결코 주님과의 봉사를 두고 계산하거나 거래하지 않습니다. 

속죄의 은총을 입은 뒤에야 비로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기쁘게 응답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가 필요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헌신은 억지로 지는 멍에가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맺히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지만, 어떤 이는 마음이 도리어 돌처럼 완악해집니다. 그럼에도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씨, 즉 남은 자를 반드시 지켜두십니다. 

은혜의 위대한 역사는 시대가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그 남은 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하스 왕을 보십시오. 그는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보다 당장의 적군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이 꺾인 눈에는 아주 작은 문제조차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서서 나를 믿으라”고 촉구하시지만, 불신에 사로잡힌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적인 셈법에만 매달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과 땅의 징조를 구하라 명하셨음에도 아하스는 거룩한 척을 하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참으로 경악할 일입니다. 

불순종은 때로 이처럼 가증스러운 겸손의 가면을 씁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겸손이란 겉포장된 불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증한 불신앙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준비하셨습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실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약속을 선포하셨습니다. 인간의 온갖 실패와 범죄도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성도의 소망은 우리 자신의 흔들리는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임마누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주께서 한 번 부르시면 열방은 벌 떼처럼 몰려와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힘을 의지했던 인간은 바로 그 세상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누리는 화려한 번영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뿐이며, 불순종의 끝에는 오직 황폐한 들판만이 남을 따름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 ‘마헬살랄하스바스’ 자체가 장차 임할 급격한 심판의 엄중한 예언이었습니다. 인간은 한 치 앞의 미래도 알지 못해 방황하지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역사의 시작부터 그 끝을 선언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다 백성은 시온 산 밑을 조용히 흐르는 실로아의 은혜로운 물길을 업신여기고, 세상의 거대하고 거친 강물인 앗수르의 힘을 탐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유브라데의 범람하는 큰 강물이 그들의 턱 밑까지 차올라 온 땅을 삼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작고 겸손한 은혜를 멸시하는 자는 결국 세상이라는 거대한 재앙에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모의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할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성도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는 안전한 성소가 되어주시지만, 거부하고 배척하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십니다. 이 엄숙한 말씀은 온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진리란 시대의 유행이나 사람들의 찬반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과 증거의 말씀에 비추어 맞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화려한 사상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빛이 전혀 없는 어둠일 뿐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센 소리가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인생의 마지막은 짙은 어둠 속을 헤매는 방황뿐입니다. 아무리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뿜어내도 그 흑암 속에서는 스스로 빛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죄의 끝은 완전한 절망이지만,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그 암흑의 밤 끝자락에서 이미 찬란한 메시아의 새벽빛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죄와 당신의 끝에서 새벽빛 되신 이와 항상 새삶을 시작하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Wed, 29 Jul 2026 07:23: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9. 포도원의 주인이 찾으시는 열매 (사 3~5)]]></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60]]></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무한히 참으시는 분이시나, 결코 죄와 타협하여 눈감아 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분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으나, 그분의 거룩함은 불길처럼 엄위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영감 어린 호소에 귀 기울이십시오. 

3장에서 엄중한 심판의 나팔을 불던 선지자는 4장에서 영광스러운 회복의 붉은 시온의 아침 햇살을 그려내고, 5장에 이르러서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로 시작하여 마침내 영혼을 뒤흔드는 경악할 심판의 선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러나 이 천둥소리 같은 말씀들은 결코 여러분을 절망의 늪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거친 바람은 방황하는 죄인의 발걸음을 십자가 아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결실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헛된 영화를 어떻게 거두어 가시는지. 용사의 칼과 재판관의 지혜, 선지자의 예언과 장로의 위엄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도성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고, 질서는 무너지며, 백성들은 서로의 가슴에 칼을 겨누듯 억압합니다.

어찌하여 이 찬란했던 도성이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졌습니까? 칼이 무뎌서입니까? 금고의 보화가 부족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그들이 하늘의 주인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은혜의 손을 거두실 때, 인간이 자랑하던 제국의 지혜와 바벨탑 같은 권세는 아침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역사의 고문서들은 웅변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들을 무너뜨린 것은 적군의 창검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간 교만의 부패였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를 보십시오. 이 나라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한 궁전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 들보와 기둥은 벌레 먹어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선지자는 시온의 딸들이 자랑하던 교만을 찢어발깁니다. 그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차고 목을 빼어 걸었으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영혼의 빈곤함과 수치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인간은 썩어질 겉모습을 단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통곡하는 영혼의 속살을 살피십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며, 그분의 마지막 단어도 아닙니다. 이사야 4장에 들어서면 밤하늘을 찢고 동이 터 오듯 거룩한 빛이 비추어 듭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이 싹은 한낱 스쳐 지나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선지자의 안목은 시대를 넘어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말라비틀어진 뿌리에서 움트는 한 줄기 생명, 죄로 인하여 사막처럼 황폐해진 이 세상에 영원한 생수를 공급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은 첫 아담부터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들으십시오! 하늘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 아들을 보내사 타락하지 않는 새로운 신부, 거룩한 백성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과 심판의 영으로 시온의 더러움을 씻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불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불은 숲을 태워 없애는 불이 아니라, 용광로 속의 금을 정결하게련하는 거룩한 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게 하심은 여러분을 정금보다 더 순결한 거룩함으로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을 덮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그분의 보혈로 산 백성들을 영원히 덮으실 것입니다. 

세상은 썩어질 금전에서 안전을 구하지만, 참된 성도는 오직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이제 선지자는 우리를 슬픔이 어린 한 포도원으로 데려갑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리라.”

이 노래는 감미로운 사랑의 소리로 시작하나, 결국 거룩한 분의 애통하는 눈물로 끝이 납니다. 포도원 주인을 보십시오. 그는 가장 기름진 산비탈을 구했습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돌을 하나하나 주워냈습니다. 

가장 귀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파수꾼의 망대를 세우며, 풍성한 즙을 짜낼 포도즙 틀까지 준비했습니다. 주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아,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주인이 기대했던 것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포도였으나, 그 나무가 맺은 것은 오직 입안을 쓴맛으로 채우는 비틀어진 ‘들포도’뿐이었습니다! 하늘의 탄식이 온 우주에 울려 퍼집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겠느냐!”

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어떤 혀로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은혜의 소나기를 맞았습니다. 율법의 영광을 얻었고, 성전의 불빛을 보았으며, 선지자들의 눈물 어린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지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포도원의 비가는 2,700년 전의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은혜의 단비를 흠뻑 맞은 우리 영혼을 향한 엄중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도의 향연을 올렸으며, 얼마나 많은 찬송을 불렀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가지를 흔드실 때, 어떤 열매가 떨어집니까? 우리 주님은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무성한 종교의 잎사귀로 몸을 가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소망의 항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역시 들포도만을 맺어 마땅히 도끼 찍힘을 받아 불에 던져져야 할 가지가 아닙니까? 이때 하늘에서 은혜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이사야의 포도원은 실패했으나, 십자가 위에서 구주 예수께서 외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인간은 실패했고, 이스라엘도 쓰러졌으나, 오직 진정한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거룩한 순종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붙어있을 때, 그분의 보혈의 진액이 우리 타락한 가지로 흘러 들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들포도의 악취를 벗어던지고 천국의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는 우리의 혈통이나 율법적 행위의 열심으로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가지가 나무에 찰싹 붙어 있듯,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령의 거룩함과 사랑과 순종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이 열매들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참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맺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그리스도께로 달려가십시오! 그분의 흘리신 보혈의 십자가를 굳게 붙드십시오! 성령의 바람을 따라 걸어가십시오! 그리하면 비틀어진 들포도 같던 우리의 삶이 변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천국의 극상품 열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28 Jul 2026 06:18:5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8. 오직 여호와만 높임을 받으시리라 (아 8~사 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9]]></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의 장미원이라 불리는 아가서의 거룩한 그늘 아래서 영혼을 울리는 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거친 홍수라도 이 불길을 삼키지 못하나니!” 오, 이 얼마나 거룩하고 거친 불꽃입니까! 

이 사랑은 땅에서 피어난 덧없는 안개가 아니요, 하늘의 언약이라는 불멸의 바위 위에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심장입니다. 성경의 빛을 타고 이 그늘을 거닐 때, 우리의 눈은 마침내 피 묻은 십자가와 차가운 무덤을 짓밟고 일어서신 영원한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어떤 지옥의 검은 바다도, 우리의 비참한 연약함도 그분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은혜의 태양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신부 된 교회는 영혼의 깊은 숨을 내쉬며 절규하듯 노래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여, 노루와 같고 어린 사슴과 같아서, 속히 향기로운 산으로 오소서!”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찬란한 신랑을 기다리는 교회의 옷자락은 과연 어떠해야 합니까? 어두운 세상의 밤을 지새우는 등불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합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나팔 소리를 통해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며 대답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가슴 아픈 탄식을 들려줍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 백성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아, 죄란 얼마나 참담한 비극입니까! 

죄는 그저 율법의 문자를 몇 개 깨뜨린 가벼운 허물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피조물이 자신에게 호흡을 불어넣어 주신 창조주를 잊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호흡하면서도, 그분의 햇살을 받으면서도, 정작 그분 없이 살아가려는 오만한 독립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의 제단 위에는 수천 마리의 양과 소가 피를 흘렸고, 성전 뜰은 발자국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분노로 외치셨습니다. “너희의 가증한 절기와 수많은 제물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들의 손에는 불의와 탐욕의 핏자국이 번져 있었고, 그들의 입술은 기도로 번지르르했으나 그들은 가난한 자의 탄식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주일에 성가대의 찬양에 맞추어 노래하지만, 문을 나서자마자 세상의 탐욕을 베개 삼아 눕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주여, 주여” 부르짖으면서, 정작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는 오만과 미움의 칼을 휘두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모습만 화려한 종교라는 가죽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번개와 벼락이 떨어져야 할 그 자리에, 비할 데 없는 은혜의 초청장이 펄럭입니다. 하늘의 재판장께서 피고인인 우리를 향해 무릎을 굴리듯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 얼마나 웅장한 복음의 음성입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눈물로 죄의 오점을 씻을 수 없습니다. 도덕의 비누나 행위의 잿물로도 내면의 검은 때를 지울 수 없습니다. 오직 갈보리 언덕에서 흘러내린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만이, 바다보다 깊고 밤보다 어두운 우리의 죄악을 단번에 눈보다 더 희게 흰 눈송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영혼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도망치듯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아래로 달려오는 자마다 거룩한 샘물에 씻겨 정결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시작일 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은혜 입은 자들이 바라보아야 할 영광스러운 산꼭대기를 보여줍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세상에는 고개 든 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권력의 산, 재물의 산, 오만한 지식의 산, 인간의 기술과 학문이 쌓아 올린 바벨탑의 산들이 구름을 뚫을 듯 치솟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높이에 매료되어 조금이라도 더 높은 봉우리를 밟으려고 서로를 짓밟으며 평생을 다툼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산은 결국 무너져 평지가 될 것이요, 마지막 날에는 오직 ‘여호와의 산’만 높이 솟아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이것은 비웃음과 멸시를 받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만왕의 왕 되신 그분의 영광이 온 우주 위에 웅장하게 우뚝 서게 될 것이라는 거룩한 승전가입니다!

제국들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고, 시대를 호령하던 왕들은 한 뼘 흙으로 돌아갔으나, 구주의 복음은 여전히 비바람을 뚫고 온 세계의 영혼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눈은 더 먼 곳을 향합니다. 놀랍게도, 만국의 백성들이 그 거룩한 산을 향해 물결처럼 밀려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복음의 제방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오순절의 성령의 바람을 타고 복음이 온 열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깨뜨리고, 피부색과 국경을 넘어 수많은 영혼이 구주의 발치로 기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 자체가 이 찬란한 예언의 결실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사야 2장의 가장 엄위하고 단단한 바위와 같은 메시지 앞에 도달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오, 이 말씀은 썩어질 인간의 모든 자만을 분쇄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망치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높이기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조금의 재물로 높아지려 하고, 찰나의 권력과 한 줄의 지식으로 신처럼 행세하려 합니다. 심지어 거룩한 신앙생활마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계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엄이 드러나는 그 날이 오면, 인간의 모든 교만과 자만은 먼지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들판의 높은 백향목도, 하늘을 찌를 듯한 산들도, 견고한 망대도, 사람이 금과 은으로 빚어 만든 온갖 탐욕의 우상들도 그분의 영광의 빛 앞에서 모조리 깨어져 낮아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이,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인간의 자존심을 도륙하는 사형틀입니다. 우리의 도덕적 의는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며,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문도, 학벌도, 열심도 구원의 털끝만큼도 보태지 못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나를 위해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바위 같은 공로뿐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마침내 우리를 향해 부르짖습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죄가 전혀 없는 완벽한 존재라고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어둠과 추함을 감추지 않고 밝은 빛 앞으로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날마다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 자복하고, 그분의 말씀이라는 등불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실 영광의 신랑을 사모하며 밤을 지새우는 파수꾼이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아무도 깰 수 없는 “불길 같은 주님의 사랑”으로 시작하여, 이사야서의 “오직 여호와만 높임을 받으시리라”는 찬란한 도달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죄의 늪 속에 그대로 방치하는 나약한 동정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정결하게 씻어내고, 교만의 무더기를 부수며, 마침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고야 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고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단 하나의 고백으로 살아갑시다.

“오직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27 Jul 2026 06:49: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7. 그리스도와 교회의 찬란한 사랑의 동산 (아 4~7)]]></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8]]></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거룩한 성경의 가장 깊은 성소, 곧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 된 교회가 나누는 찬란한 사랑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가서의 동산으로 들어갑니다. 십자가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 아래에서 이 사랑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구속의 신비를 목도하게 됩니다.

아가서 4장에 이르자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를 바라보며 감격에 차 선포합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세상은 언제나 외모와 능력, 성취라는 가혹한 잣대로 사람의 가치를 계량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자기 백성을 세상의 가치로 비교하거나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답다!” 이 복된 음성을 십자가 아래에서 들으십시오! 우리가 본래 죄가 없거나 스스로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주홍 같은 죄를 눈과 같이 씻어 내시고, 완전한 의의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허물과 연약함뿐이지만, 주님은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성도여, 여러분의 아름다움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영광스러운 사실에서 나옵니다. 신랑은 신부를 향해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 부르십니다. 

잠긴 동산은 잡상인이 제멋대로 짓밟는 황무지가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이를 위해 구별된 거룩한 정원입니다. 봉한 샘은 세속의 먼지로 더럽혀지지 않고 한 사람만을 위해 보존된 깨끗한 생명수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동산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자기 마음의 주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세상의 탐욕과 음란, 교만에게 무방비로 열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문에 거룩한 파수꾼을 두어 지키십시오! 작은 타협이 반복되면 봉한 샘에 흙탕물이 스며듭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회개하고 십자가 앞으로 돌아올 때, 주님께서는 황폐해진 동산에 다시 은혜의 단비를 내리시고 생명의 꽃을 피워 내실 것입니다.

신부는 성령의 바람을 향해 기도합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북풍은 차갑고 매서운 시련의 바람이요, 남풍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신부는 온화한 남풍만을 구하지 않고, 두 바람 모두 동산에 불어와 감추어진 향기를 퍼뜨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삶에도 위로의 남풍과 시련의 북풍이 교대로 찾아옵니다. 우리는 형통함만을 은혜라 부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차가운 시련의 북풍을 통해 우리 안에 감추어진 믿음과 인내의 향기를 밖으로 뿜어져 나오게 하십니다. 포도는 짓눌릴 때 포도주를 내뿜고, 향료는 잘게 부서질 때 진한 향기를 퍼뜨립니다. 

어떤 시련의 바람이 불어오든 내 삶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고결한 향기만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십시오. 아가서 5장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신랑이 문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애타게 요청하지만, 신부는 안락함에 젖어 머뭇거립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마음은 깨어 있다고 위안을 삼았으나, 몸은 편안한 침상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영적 나태입니다. 순종을 뒤로 미루는 바로 그 지연이 주님과의 달콤한 교제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마침내 신부가 일어났을 때 사랑하는 이는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구원의 언약은 결코 끊어지지 않지만, 불순종은 주님의 임재가 주는 즐거움을 앗아갑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신부는 침륜에 빠지는 대신, 신랑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다시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영적 침체를 이기는 길은 내 냉랭함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신부는 마침내 사랑하는 이가 자기 동산 가운데 계심을 깨닫고 깊은 고백을 드립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아가서 2장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했으나, 이제는 순서가 바뀌어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고 선언합니다.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는가”보다 “나는 주님의 소유다”라는 헌신의 고백이 깊어집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신부를 향해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당당하다고 부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넘어진 성도를 깨뜨린 채 버리지 않으시며, 십자가의 피로 다시 일으켜 영적 전쟁터로 담대히 보내십니다. 마침내 신부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신랑의 사랑 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립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성도의 가장 깊은 평안은 내 사랑의 뜨거움을 측정하는 데 있지 않고,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신실한가를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결심은 조석으로 변하지만, 십자가에서 확증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반석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을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 위에 세우지 말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위에 세우십시오. 참된 사랑은 골방의 침상에만 머물지 않고 들판으로 나아갑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그리스도를 진정 사랑하는 성도는 주님과 손잡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상처 입은 이웃을 돌보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소식을 전합니다.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값이 아니라, 이미 한없는 사랑을 받은 자가 드리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우리를 들판으로 보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선제적인 사랑이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정결하게 하며,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마음의 동산을 거룩하게 지키고, 시련의 북풍과 위로의 남풍 속에서도 오직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십시오. 당신을 진정으로 사모하시는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이 당신을 통해 그 복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26 Jul 2026 07:01: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6. 창조주를 기억하고 십자가의 신랑을 열망하라 (전 12~아 3)]]></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7]]></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방금 전도서라는 진리의 골짜기를 지나왔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이라는 먼지 가득한 무대 위에서 인간이 좇는 모든 환상을 흩어버린 후, 마침내 타오르는 횃불 같은 거룩한 명령 하나를 우리 영혼의 양심에 찌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보십시오, 세상의 화려한 재물은 손에 쥐는 순간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육신의 쾌락은 불꽃이 지나간 뒤의 잿더미처럼 씁쓸할 뿐입니다. 젊음의 찬란한 아침 햇살도 머지않아 서산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며, 청동 같던 힘도 시간의 톱니바퀴 아래 무너집니다. 

그러나 오, 우리의 영혼을 지으신 만유의 주님은 영원히 변함없는 바위이십니다! 전도자가 통곡하듯 “헛되고 헛되다”를 외친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무의미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의 모든 몸부림이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는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지식일 뿐이며, 하나님 없는 성공은 화려하게 장식된 무덤에 불과합니다. 오, 성도 여러분! 백발이 성성해지고 눈이 어두워진 뒤에야 비로소 남은 삶의 찌꺼기를 하나님께 던져드리려 하지 마십시오! 

찬란하게 타오르는 아침의 불꽃을 세상의 우상에게 바치고, 재만 남은 어둑한 저녁의 조각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피가 뜨겁게 뛰고, 발걸음이 힘차며, 주를 위해 피 흘려 봉사할 수 있는 그 골든 타임에 여러분의 창조주를 찬양하십시오!

솔로몬은 인간의 노년을 쓰러져가는 낡은 궁전에 비유합니다. 집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떨고, 힘 있는 기둥들은 구부러지며, 창문 너머를 내다보던 여인들의 눈은 어두워집니다. 맷돌 소리는 희미해지고, 음악을 노래하던 모든 딸들의 소리는 침묵 속으로 잠깁니다.

떨리는 손과 굽은 허리, 흐려진 시력과 들리지 않는 귀는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문지방을 넘어섰다는 엄숙한 경고입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가꾸고 자랑하던 육체는 영원한 대궐이 아니라, 바람 한 번에 날아갈 짧은 장막에 불과합니다!

마침내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집니다. 샘 곁에서 항아리가 산산조각 나고, 우물 위에서 바퀴가 부서집니다. 흙은 본래 왔던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 영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죽음은 영혼의 소멸이 아니라 가면의 벗겨짐입니다. 

왕의 비단 옷도, 학자의 박사 모자도, 부자의 거대한 금고도 그 차가운 무덤 너머까지 당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 엄숙한 순간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짠 순결한 의의 옷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길로부터 당신을 완벽하게 가려줄 것입니다.

전도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한 후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의 찬란한 거룩함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삶의 왕좌를 그분께 내어드리는 거룩한 복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그분의 법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명령을 알면서도 번번이 넘어지며, 창조주보다 진흙으로 만든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가련한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웅변이나 더 도덕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심장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가득한 돌처럼 단단한 마음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을 향해 뜨겁게 피 흘리는 살 같은 마음을 이식해 주실 하늘의 의사, 우리의 구주가 필요합니다!

보십시오! 전도서의 메마른 탄식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아가서의 황홀한 사랑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전도서가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율법의 나팔을 불었다면, 아가서는 “너의 구주를 사랑하라”는 복음의 거문고를 연주합니다. 

전도서가 하나님 없는 세상을 환멸의 잿더미로 보여준다면, 아가서는 그 신랑을 만난 영혼이 누리는 천국의 잔치를 보여줍니다! 아가서의 신부는 영혼의 깊은 샘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로 외칩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이것은 땅의 연인들이 나누는 속삭임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속받은 교회가 영혼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부르는 뜨거운 갈망의 노래입니다! 세상이 주는 포도주는 잠시 입술을 즐겁게 할 뿐 결국 더 큰 갈증과 숙취만을 남깁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서 흘려보내신 그리스도의 은혜의 포도주는 메말라 죽어가던 영혼을 영원히 살려냅니다. 그분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 원수요 죄인이었을 때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와 생명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은 말로만 때우는 가벼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등가죽이 찢기며, 두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면서까지 당신의 영혼을 품으신 피 묻은 언약의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친구들은 당신을 떠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다윗의 열쇠로 새겨진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단 1인치도 변하지 않습니다! 

신부는 왕의 손에 끌려가며 고백합니다.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구원은 영혼이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걸어간 작품이 아닙니다. 은혜의 왕께서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던 우리를 강권적인 사랑으로 끌어내신 거룩한 납치입니다!

이어지는 신부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오, 이 얼마나 경이롭고 복된 복음의 역설입니까! 우리는 본래 죄의 그을음으로 검디검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조명 아래 서면 우리의 가장 뛰어난 의조차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천사들보다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는 구주의 피로 씻겨졌고, 그분의 완전한 의의 비단옷이 당신의 어깨 위에 걸쳐졌기 때문입니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탄식과 부끄러움뿐이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마귀와 온 세상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나는 죄로 말미암아 검으나, 내 신랑의 의로 인해 백설보다 아름답다! 나는 비록 상처투성이지만, 그분이 맞으신 채찍으로 완전함을 입었다!” 주님은 아름다운 자를 찾아와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할 가치 없는 찌꺼기 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피로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신부는 숲속을 거닐다 탄성을 지릅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세상의 나무들은 무성한 잎사귀로 그늘을 약속하지만, 정작 율법의 타오르는 태양과 심판의 폭풍이 밀려올 때 우리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명예의 그늘도, 재물의 그늘도 영혼의 열기를 식혀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라는 거룩한 사과나무를 보십시오! 지친 죄인이 십자가 그늘 아래 엎드릴 때, 영원한 진노의 태양은 더 이상 그 영혼을 태우지 못합니다.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안식을 얻고,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죄 용서의 열매, 칭의의 열매,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맛봅니다. 이 얼마나 달콤한 하늘의 만찬입니까! 그분이 우리 위에 세우신 깃발은 오직 하나, ‘사랑’(Love)이라는 깃발입니다. 

사탄이 당신의 과거를 들추어내며 고발할 때, 당신의 머리 위에 펄럭이는 십자가의 깃발을 가리키십시오. 거기에는 구주의 피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노라!”

그러나 성도여, 기억하십시오. 사랑에는 정결함이 요구됩니다. 거룩한 신랑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큰 죄와 명백한 범죄만을 경계하지 마십시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파괴하는 것은 종종 거대해 보이는 공룡이 아니라 ‘은밀하게 숨어든 작은 여우’입니다. 사소하게 여긴 불평 한마디, 은밀히 품은 교만, 남을 향한 가시돋친 마음, 회개를 미루는 태도 등 이 작은 여우들이 영혼의 포도원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갉아먹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방해한다면 세상에 ‘작은 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로 영혼의 밤이 찾아옵니다. 아가서 3장에서 신부는 침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으나 얻지 못해 통곡합니다. 기도해도 하늘이 놋쇠처럼 닫힌 것 같고, 설교를 들어도 마음이 냉랭하며, 주님의 임재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것 같은 영적 침체의 밤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부는 차가운 침상에 누워 넋을 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밤중에 일어나 성안의 거리와 큰길로 뛰어나갑니다.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으리라” 그렇게 은혜를 갈망하며 거리를 헤매던 신부는 마침내 신랑을 만납니다.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노라!” 오, 얼마나 영광스러운 재회입니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신부가 신랑을 찾기 전에, 신랑이 먼저 신부를 찾고 계셨습니다. 양이 목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찾아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전도서는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이 한낱 헛된 먼지에 불과함을 선언하며 우리를 창조주께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아가서는 그 창조주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셔서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거룩한 신방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의 청춘은 시들고, 육체의 장막은 언젠가 무너질 것입니다. 은줄은 풀리고 항아리는 부서질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묶인 이 사랑의 언약은 무덤의 차가운 흙 속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장차 우리 신랑 되신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그날, 밤은 영원히 물러가고 눈물과 이별은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완벽한 혼인 잔치에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 보며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음의 때에 당신의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노년의 그늘 속에서도 당신을 붙드시는 신랑의 신실함을 의지하십시오. 영혼의 밤이 찾아올지라도 절망하여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당신의 구주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이 거룩한 확신을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 깃발처럼 꽂으십시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25 Jul 2026 05:52: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5. 전능자의 손 안에 있는 모든 것 (전 9~11)]]></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6]]></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전도서라는 숲길을 걷다가, 어두운 세상을 찢고 내리쬐는 장엄한 찬란함 앞에 멈춰 섰습니다. 솔로몬은 거룩한 붓을 들어 우리의 가슴 판에 단 하나의 위대한 진리를 새겨 넣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전 9:1)

오, 이 얼마나 거룩하고도 달콤한 안식처입니까! 우리의 짧은 생애도, 짙은 죽음의 그림자도, 오늘 우리 입술에 머무는 웃음도, 내일이라는 안개 속에 감춰진 불안도 모두 그분의 전능하신 손바닥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방울 하나도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밤이 깊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바친 이름 없는 수고조차 하늘의 기록 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성도의 평안은 내 삶의 키(Rudder)를 거친 풍랑 속에서 직접 잡으려 애쓰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폭풍을 명령하시고 바다를 거니시는 만군의 여호와께 온 영혼을 내던지는 거룩한 내맡김, 바로 거기서 참된 평안이 싹트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망이라는 거대한 사자가 의인의 문전이나 악인의 대문이나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고 탄식합니다. 

죽음은 부자의 황금 투구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으며, 왕의 시퍼런 권세나 지혜자의 높은 명성 앞에서도 결코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겉보기엔 같은 잔을 마시는 것 같으나, 의인과 악인의 마지막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자에게 죽음은 영원한 형벌과 심판으로 들어가는 끔찍한 감옥 문이지만, 십자가의 피로 씻음 받은 성도에게 죽음은 그리운 아버지의 품,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단빛 내리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덤 앞에서도 결코 비가(悲歌)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숨소리조차 부활하신 구주의 손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길은 어두울지라도,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신 하나님의 손은 태양보다 견고하며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죽음의 엄숙함을 선포한 지혜자는 곧이어 우리를 기쁨의 잔치로 초청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늘 아버지가 오늘이라는 그릇에 담아주신 은혜의 떡을 감사함으로 떼어 나누라는 거룩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종종 손에 잡히지 않는 내일의 무지개를 좇느라, 오늘 우리 발치에 떨어진 하늘의 만나를 짓밟곤 합니다. 그러나 식탁 위의 소박한 떡 한 조각, 식구들의 정겨운 웃음소리,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숨결과 밤의 평안한 안식은 결코 작은 은혜가 아닙니다.

악인은 선물에 매여 선물을 주신 창조주를 잊어버리지만, 성도는 보잘것없는 선물 속에서도 아버지가 보내신 지극한 사랑의 친필 편지를 읽어냅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을 향해 사랑의 향기를 피우십시오. 

마음을 다해 밭을 갈되, 열매라는 우상을 가슴에 품지 마십시오. 때로 수고가 헛되어 보이고 실패의 재만 남은 것 같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흘린 순종의 눈물샘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보지 못하는 은밀한 땅속 깊은 곳에 은혜의 뿌리를 내리게 하십니다.

솔로몬은 작고 가난한 성을 자신의 지혜로 구원했으나, 위기가 지나자마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힌 한 가난한 지혜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상은 얼마나 간사합니까! 필요할 때는 지혜를 구하며 엎드리다가도, 고난의 구름이 걷히면 그 은혜를 단숨에 잊어버립니다. 

전도서 10장은 가슴 서늘한 경고를 던집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기로운 기름을 썩게 하여 악취가 나게 하듯, 작고 어리석은 죄 한 조각이 일평생 쌓아 올린 거룩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립니다.

은밀한 탐욕, 사소한 거짓말, 입술의 가벼운 타협을 “이쯤이야” 하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불씨 하나가 거대한 울창한 숲을 잿더미로 만들고, 작은 균열 하나가 거대한 항해선을 바닷속으로 침몰시킵니다. 

특히 혀를 경계하십시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입술을 떠난 말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어떤 말은 피투성이가 된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수와 같으나, 어떤 말은 비수처럼 찌르는 비난이 되어 오랫동안 맺어진 사랑의 줄을 끊어버립니다.

주 예수님의 입술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의 입에서는 은혜와 진리가 샘물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셨던 그분의 거룩한 입술을 닮아갑시다. 우리의 온 마음과 입술을 성령의 제단 숯불로 태워 달라고 기도합시다.

전도서 11장은 우리에게 거룩한 모험을 명령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거세게 흐르는 물 위에 빵을 던지는 것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랑과 섬김은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흘린 한 방울의 눈물 기도는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라는 가장 안전한 창고에 저장되는 영원한 씨앗입니다.

주님께서도 아무 자격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나뿐인 생명을 십자가라는 거친 물 위에 던지셨습니다. 그 거룩한 낭비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저와 여러분이라는 수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솔로몬은 탄식하듯 조언합니다.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는 자는 결코 씨를 뿌리지 못하고, 구름이 걷히기만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낫을 들지 못합니다. 모든 환경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평생 단 하나의 순종의 씨앗도 심지 못할 것입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기도하리라, 여유가 생기면 베풀리라, 모든 준비가 끝나면 주를 위해 살리라” 말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당신에게 평생 그런 완벽한 내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불확실성이 모두 사라진 훤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밧줄처럼 쥐고 담대히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다 헤아릴 수는 없을지라도, 그분의 선하신 마음까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에게 골고다 십자가는 완벽한 비극이요 절망의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깊은 무덤의 어둠 속에서 인류 구원이라는 가장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슬픈 장(Chapter)이 펼쳐졌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아직 당신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은 쓰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소설에서 단 한 문장만을 읽고서 결말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비극을 부활의 승리로 뒤집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날을 그분의 완벽한 선함 속으로 끌어안고 계십니다.

이제 지혜자는 거룩한 결론으로 우리를 촉구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혹 둘이 다 잘 될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침에 심은 기도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지, 저녁에 전한 복음의 씨앗이 결실을 볼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단 한 번의 거절이나 한 번의 실패 때문에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응답이 더디다고 무릎을 꿇은 다리를 펴지 마십시오.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 이름 없는 성도들의 충성, 영혼들을 품고 부른 탄식의 노래는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것이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안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과를 내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말며, 알아주지 않는 세상의 차가운 눈길 때문에 사명의 도구를 내려놓지 마십시오.

당신의 영혼을 감싸 쥐고 계신 그 손을 바라보십시오. 그 손은 온 우주와 은하수를 창조하신 전능자의 손이며, 동시에 십자가에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 붉은 피를 흘리시며 붉게 못 박히셨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입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차가운 죽음의 땅에 묻히셨으나, 사망을 깨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소망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바로 그 거룩한 손이 오늘 당신의 삶과 가정, 당신의 눈물과 미래를 굳게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만날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백하십시오!

“나의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나니!”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Fri, 24 Jul 2026 06:10: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4. 헛된 욕망의 정체와 영원한 섭리의 닻 (전 6~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5]]></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전도서 6장에서 8장까지 등장하는 세상의 헛된 욕망의 정체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은 금빛으로 단장한 잔칫집의 문을 열어젖히고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 화려한 식탁에 앉은 부자의 영혼은 정작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을지라도,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열쇠를 함께 주시지 않는다면 그 모든 보화는 영혼을 짓눌러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 욕망의 금사슬에 불과합니다.

창고를 가득 채운 곡식도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으며, 솟구치는 탐욕의 갈증은 마실수록 죽음을 부르는 바닷물과 같습니다. 보십시오, 인간의 뒤틀린 식욕은 온 세상을 집어삼켜도 목말라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만이 이 사막에 메아리칩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손에 쥐지 못한 내일의 환상을 좇는 공상을 멈추고, 오늘 그분이 주신 일용할 떡을 들고 눈물 어린 감사를 올리십시오. 

그 감사의 한 조각이 왕의 화려한 잔치보다 훨씬 더 풍성한 천국의 맛입니다. 우리의 생애는 바람에 날리는 안개요, 햇살 아래 사라지는 그림자입니다. 헛된 인생이 스스로 내일을 계획하고 자랑함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연기를 손으로 움켜쥐려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거니는 내일의 길목은 안개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그 안개 속에서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신 분은 태양을 만드신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내일을 모르는 무지는 절망의 늪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옷자락만을 굳게 붙드는 거룩한 인도의 끈이 됩니다.

세상은 기쁨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잔칫집으로 달려가라 손짓하지만, 지혜자의 발걸음은 촛불이 꺼져가는 초상집의 문턱을 넘습니다. 잔칫집의 가벼운 웃음은 영혼을 마비시키는 마약과도 같지만, 초상집의 엄숙한 통곡은 썩어질 세상의 가면을 벗겨내는 은혜의 메스입니다.

죽음! 그것은 죄가 가져온 아침의 원수요, 음산한 사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엄숙한 원수의 목소리마저 사자처럼 호령하시어, 우리의 교만한 바벨탑을 무너뜨리시는 은혜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잠시 향기를 내다 사라질 보배로운 기름을 구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피로 씻겨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십시오. 출생의 날은 싸움터로 나아가는 무명 용사의 날이나, 경건한 성도의 죽음의 날은 승전가를 부르며 면류관을 받는 거룩한 면류관의 날입니다!

슬픔의 눈물은 세상의 먼지로 가려졌던 영혼의 창문을 씻어내는 거룩한 샘물입니다. 고난이라는 검은 비단 보자기 속에는 그리스도라는 가장 찬란한 보석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달콤한 아첨꾼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맡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영혼을 단잠에 빠뜨려 지옥으로 끌고 가는 부드러운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차라리 당신의 영혼을 찌르고 오려내는 지혜자의 책망을 겸손히 받으십시오. 그 가시 돋친 책망의 칼날은 영혼의 썩은 고름을 도려내어 생명으로 이끄는 거룩한 메스입니다.

경주의 영광은 출발선의 박수에 있지 않고, 피투성이가 된 발로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 면류관으로 빛납니다. 시작의 열정보다 끝까지 견디는 성도의 인내가 더욱 찬란합니다. 가슴속에 분노의 숯불을 품지 마십시오. 

그것은 타인을 태우기 전에 당신 자신의 영혼을 재더미로 만드는 지옥의 불씨입니다. 모욕을 당하셨으나 마주 모욕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비를 부르짖으신 어린 양의 인내를 바라보십시오.

또한, 과거의 은혜를 초청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어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바로 그 동일하신 은혜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바리새인의 옷을 입고 스승 노릇 하려는 자의 교만을 경계하십시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깊은 절벽과, 어차피 죄인이니 마음대로 살겠노라 울부짖는 방종의 절벽 사이에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좁은 오솔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조명등 아래 서면 우리의 가장 찬란한 의조차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할렐루야! 죄를 알지도 못하신 유일하신 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더러운 옷을 입으시고, 그분의 완벽하고 순결한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거룩한 광채로 물들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했을 때 그 얼굴에 빛이 났듯, 날마다 십자가 아래에서 구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에는 천국의 평안과 윤리가 향기처럼 흘러나옵니다.

세상의 권세가 거칠게 일렁이고, 악인의 심판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잠잠히 계시는 것은 죄를 잊으셨음이 아니요, 악인을 향한 진노의 잔을 참으시며 죄인이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거룩한 인내의 시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악인의 번성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영원한 바위 위에 굳건히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의 메시지는 세상의 모든 욕망의 헛된 깃발을 꺾어버리는 진리의 고백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아래로 무릎 꿇게 만듭니다. 만유의 주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고, 죽음의 어두운 무덤 속에 몸소 들어가사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지금 당신의 손을 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채워지지 않을 세월의 음식을 탐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으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고통의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섭리의 모든 문장을 다 읽으려 애쓰지 마십시오!

다만 그 거룩한 문장을 당신의 피로 써 내려가시는 주님의 못 자국 난 손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오늘 주신 한 조각의 떡에 감사하고, 당신에게 맡겨진 작은 직분에 충성하며, 머지않아 구름 타고 오실 만왕의 왕을 기다리십시오. 

해 아래의 모든 그림자가 물러가고, 부활의 영원한 아침 햇살이 당신을 감싸 안을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에 마음의 닻을 내리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hu, 23 Jul 2026 06:31: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3. 하나님의 때와 믿음의 발걸음 (전 3~5)]]></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4]]></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상의 안개는 걷히고 영원의 햇살이 우리 영혼의 창가를 두드립니다. 전도서의 첫 범람에서 솔로몬이 세상의 우물들이 모두 메말라 버린 웅덩이에 불과함을 탄식했다면, 이제 그는 우리의 눈을 지평선 너머, 하나님의 장엄한 보좌로 인도합니다.

인생이 가볍게 날리는 겨와 같이 헛된 까닭은 이 세상이 단지 악해서만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감히 조물주를 잊은 채, 그 무한하신 분의 광채를 등지고 홀로 그늘 속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손길이 우리의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그 순간, 잿빛이었던 인생의 사막은 거룩한 신비의 정원으로 변모합니다!

시간은 그분의 손끝에서 흐르고, 심판의 추는 그분의 공의 위에 달려 있으며, 우리가 드리는 숨결 하나까지도 주님의 성전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지요. 그러나 그 덧없음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풀잎 위의 이슬은 천국의 별빛을 담는 거울이 됩니다.

전도서 3장의 진리처럼,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정한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가들은 운명의 주사위를 말하고 불신자들은 우연의 바다에서 방황하지만, 구속받은 성도의 눈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봅니다.

우리의 눈에는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만군의 여호와의 손 위에서는 단 한 줄의 실씨도 헛되이 꼬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계는 단 한 번도 늦거나 빠른 적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그 거룩한 시계 바늘의 째깍거림을 조용히 기다리는 거룩한 인내이며, 조급함은 전능하신 분의 지혜를 불신하는 우리 영혼의 오만입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숨을 거둘 때가 있으며, 씨앗을 흙에 묻을 때가 있고 금빛 곡식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듯 우리의 눈물 젖은 밤을 보십시오. 우리는 늘 봄날의 꽃길만을 갈망하지만, 하늘의 신랑께서는 거친 겨울 바람과 가을의 서리조차 사용하여 우리의 영혼을 단련하십니다. 성도의 눈물 젖은 계절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 먼 훗날 영광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 심으시는 거룩한 눈물의 씨앗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십자가라는 가장 짙은 어둠의 밤을 통과하셨기에, 부활이라는 영원토록 지지 않는 찬란한 아침을 열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장엄한 융단의 뒷면에 엉켜 있는 실밥만 보이기에 우리가 탄식할지모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대가께서는 처음과 끝을 한눈에 바라보고 계십니다. 성도의 진정한 신앙은 모든 것을 내 이성으로 이해했기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께서 선하시기에, 그분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깜깜한 밤중에도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순종의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거룩한 불꽃을 심어 놓으셨다고 말입니다!

사람은 왜 지상의 모든 보화를 끌어모으고도 목말라합니까? 어찌하여 왕관을 쓰고도 영혼의 기근을 느낍니까? 영원을 향해 창조된 존재는 유한한 피조물로 결코 채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에게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은 텅 빈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성도가 느끼는 거룩한 갈망, 그 깊은 탄식은 결국 하늘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는 영혼의 고향가(故鄕歌)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그 처음과 끝을 감히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한 무지가 우리 오만한 이성의 무릎을 꺾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분석하고 논쟁할 교과서가 아니라, 언약의 피를 가지고 고개 숙여 경배해야 할 장엄한 대주재이십니다! 참된 신앙은 내 머릿속의 모든 의문이 풀렸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만유를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그분의 가슴에 폭 안길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재판관의 의자 밑에 악이 떵떵거리고, 정의가 흘러야 할 성문 앞에 죄악의 독버섯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성도여, 절망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천지의 주재께서 사자의 음성으로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리라”

땅의 법정은 뇌물에 굽어지고 인간의 판관은 착오를 범할지라도, 저 하늘의 하얀 보좌 앞에서는 단 하나의 죄도 숨겨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스스로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뽑는 자가 아니요, 하늘의 공의로운 평판을 조용히 기다리는 거룩한 파수꾼입니다.

보십시오, 스스로 제왕이라 칭하던 자들도 숨을 거두는 날에는 들판의 짐승과 다름없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코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 세상의 모든 화려한 왕관과 비단옷은 한 포기 썩은 풀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죽음은 성도를 절망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존재하는 악마가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허무함을 깨우치는, 세상에서 가장 엄숙하고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이제 전도서 4장의 광야로 나아가 봅시다. 사람들은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기 위해 피 흘리며 경쟁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와 탐욕의 톱니바퀴 속에서 쟁취한 성공이란 얼마나 허망한 환상입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린 성취는 산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가슴을 찢는 차가운 고독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지혜자는 외로운 방랑자를 바라보며 거룩한 노래를 부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이라” 아, 얼마나 따스한 은혜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외딴섬으로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성도의 교통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고단한 순례자들에게 내려주신 천국의 그늘막입니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이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추운 밤 서로를 품어 안으며 저 영원한 시온성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은혜의 동반자들입니다!

사람의 박수갈채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지만, 우리 주님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인정은 영원한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세속의 갈채를 구하지 말고, 오직 하늘 아버지의 미소를 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지혜자는 우리 손을 잡고 거룩한 성전 안으로 들어섭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성전 안에서 당신의 입술을 삼가고 말을 적게 하십시오! 기도는 거룩하신 분께 나의 사정을 길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온갖 형편을 통찰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나의 뜻을 꺾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온전히 나를 내어맡기는 거룩한 묵상의 시간입니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요란한 혀의 자랑보다, 떨리는 심령의 애통함과 경외함이 더 향기로운 향연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전도서 3장은 하나님의 시계를 신뢰하라 촉구합니다. 4장은 하나님 없는 야망의 헛됨을 찢어 발기며, 5장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거룩한 예배와 순결한 삶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지혜의 구절들은 결국 단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때가 차매 이 땅에 사람의 옷을 입고 오신 주님!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짊어지시고 십자가라는 엄숙한 심판의 대가 위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은 성전의 휘장을 찢으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참된 예배의 길을 여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결코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우리 영혼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함으로 하나님의 때보다 앞서 달려가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 순례자의 걸음을 한 발자국씩 걷다 보면 어느새 믿음의 경주가 끝나고 찬란한 영원 세계가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Wed, 22 Jul 2026 06:11: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 해 아래의 헛됨과 해 위의 영원한 만족 (잠 31~전 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3]]></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잠언이 하나님의 지혜를 온 삶으로 붙드는 빛나는 길을 가르쳤다면, 이제 전도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찬란한 지혜가 결국 어떤 어두운 파멸의 골짜기에 이르는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세상 그 어떤 왕보다 찬란한 금빛 부와 권세, 거대한 학문과 불타는 쾌락을 양손에 쥐었던 자입니다. 그는 인생이란 무대 위의 연극을 객석에서 구경한 평론가가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잔을 바닥까지 들이켜고, 쾌락의 가시 돋친 장미를 직접 꺾어 쥔 증인입니다.

그의 고백은 우리의 심장을 찌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는 절망의 무덤을 파기 위한 곡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움켜쥔 모래성 같은 만족을 무너뜨리심으로, 참 소망이신 그리스도께로 이끌어가시는 은혜의 채찍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수의(壽衣)에는 재물을 담을 주머니가 짜여 있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썩어질 육신을 위해 전 생애의 피와 땀을 바친다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성공한 자라 할지라도 무덤 문 앞에서는 가장 참혹하고 파산한 패배자로 서게 될 뿐입니다.

보십시오, 솔로몬은 지친 눈으로 자연의 수레바퀴를 바라봅니다. 해는 동편에서 붉게 타올랐다가 서편으로 차갑게 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 북으로 돌며 쉴 틈이 없으며, 수많은 강물이 거세게 흘러도 바다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 피조세계의 헐떡임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영혼은 끝없이 트랙을 돌지만 결코 도착 지점이 없는 저주받은 경주와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숨결로 지어졌기에, 유한한 온 우주를 다 집어삼켜도 결코 배부르지 않습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찬미를 부르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세상의 썩어질 물질로 채울 수 있는 작은 항아리가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으로만 채워질 수 있도록 설계된 ‘영원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탑인 학문과 지혜를 탑 쌓듯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꼭대기에서 그가 내뱉은 탄식은 이것입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하나님이 빠진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비참함과 인간의 한계를 더 선명하게 보게 하는 차가운 등불일 뿐입니다. 알면 알수록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과 세상의 부패한 심연을 더 깊이 보고 절망할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참된 지혜는 도서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릎 위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방향을 바꾸어 방탕과 쾌락의 늪으로 뛰어듭니다. 향기로운 포도주를 붓고, 궁녀들의 노랫소리에 취하며, 광란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새벽이 찾아왔을 때 그는 가슴을 치며 고백합니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죄의 즐거움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와 같습니다. 한순간 찬란하게 터지지만, 그 불꽃이 꺼지고 나면 찾아오는 어둠은 이전보다 백 배는 더 짙고 차갑습니다. 

소로몬은 또다시 거대한 성벽을 쌓고, 푸른 포도원을 가꾸며, 온갖 보화와 금은보화를 강물처럼 모았습니다. 왕궁은 화려한 보석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세상 모든 이들이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궁전의 침상에서 노왕(老王)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보라,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의 성공이란, 차갑게 굳어버린 시체 위에 입혀놓은 화려한 비단옷에 불과합니다! 솔로몬의 시선은 마침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종착역인 ‘무덤’에 닿습니다.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결국은 차가운 흙 한 줌으로 돌아갑니다. 죽음은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교만의 바벨탑을 단숨에 가루로 만드는 거대한 맷돌입니다. 빛나는 왕관도 녹슨 고철이 되고, 세상을 호령하던 명예도 세월의 거센 바람 속에 흔적 없이 지워집니다. 

그러므로 엄숙한 죽음과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지 않는 인생은, 비록 세상의 보좌에 앉아 있을지라도 영원이라는 저울 위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겨보다 가벼운 실패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소유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물건을 잠시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손아귀에 꽉 쥐고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은 결국 이 땅의 녹과 좀이 먹어 치울 것이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만은 영원한 하늘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전도서의 거대한 절망의 밤은 이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잿빛 탄식 사이로 눈부신 복음의 새벽빛이 번개처럼 솟구쳐 오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행복은 인간이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하늘 보좌에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황금 쟁반 위의 진수성찬 앞에서도 불평과 두려움의 독을 마시지만, 은혜를 입은 자는 거친 떡 한 조각과 맑은 물 한 모금 앞에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는 우리의 초라한 환경을 금빛으로 바꾸기 전에, 먼저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보혈로 씻어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룩한 희락을 위로부터 쏟아부어 주십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우리를 불신의 질주로 내몰지만, 우리 주님은 “먼저 나를 소유하라, 내가 너의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얻은 자만이, 이 땅에서 바르고 아름답게 누릴 수 있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전도서 1장은 세상의 온갖 길을 헤맨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서 내지르는 “헛되다!”라는 절규의 장입니다. 2장은 세상의 육욕과 성공을 왕관처럼 써 본 자가 “이것도 바람을 잡는 고통이다!”라고 피 묻은 가슴을 쥐어짜며 증언하는 장입니다.

성경이 이토록 인간의 갈증을 처절하게 폭로하는 이유는 우리를 절망에 던져넣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명처럼 붙들고 있는 썩어질 우상들을 십자가의 망치로 산산조각 내어, 오직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만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도망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자비로우신 구주께서는 해 위에서, 저 높은 영광의 보좌에서 피 묻은 손을 벌리고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의 거친 파도가 채우지 못한 영혼의 깊은 구멍을,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솟구치는 은혜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닫힐 이 땅의 장부(帳簿)를 쥐고 해 아래에서만 인생의 손익을 계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물로 삼으십시오. 그리하면 세상 모든 것이 먼지처럼 흩어질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당신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복음 안에서 모든 눈물과 수고는 영원 속에서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으로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21 Jul 2026 05:01: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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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1. 영원한 왕을 바라보는 참된 지혜 (잠 28~30)]]></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2]]></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28장과 29장, 그리고 30장은 마치 서로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삼중주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 깊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멜로디는 “자신에게서 눈을 떼서 오직 영원한 왕만을 바라보라”는 외침으로 통일됩니다. 

먼저 잠언 28장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심연을 단 한 줄의 날카로운 붓끝으로 그려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죄인은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의 가슴속에 둥지를 튼 불타는 양심이 밤낮으로 그를 추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저 붉은 새벽빛을 받으며 서 있는 의인의 당당한 풍채를! 그가 담대한 것은 자기 옷에 묻은 먼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의 누더기 같은 의(義) 때문이 아니라, 갈보리 언덕에서 쏟아진 보혈로 온 영혼이 씻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은총을 입은 영혼은 거친 폭풍우 속에서도 평안의 닻을 내립니다. 복음은 이토록 위대합니다. 두려움에 떨며 쥐새끼처럼 숨던 죄인을, 시대를 향해 포효하는 사자 같은 성도로 빚어내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잠언의 엄숙한 선언은 이어집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세상의 군왕들은 네 체면의 갑옷을 단단히 입으라 부추기지만, 하늘의 왕께서는 네 가슴을 찢고 상처를 드러내라 명하십니다. 

인간이 죄를 은폐하려 할 때 그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독종이 되지만, 그 부끄러운 환부를 주님의 빛 앞에 드러낼 때 십자가의 고혈은 치유의 향유가 되어 흐릅니다. 회개는 단순히 메마른 눈물 몇 방울을 흘리는 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나침반을 돌리는 전향(轉向)입니다. 죄의 어둠에서 등을 돌려 은혜의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드는 그 찰나, 긍휼의 강한 손길은 이미 그대의 덜덜 떠는 어깨를 감싸 안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시선을 지상의 금고에서 하늘의 보물창고로 돌리십니다. 

황금이 영혼을 지옥의 불길에서 건질 수 없으며, 가난이 그대를 천국 문 앞에서 쫓아내지도 못합니다. 문제는 지갑의 두께가 아니라 심령의 무게입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의 은빛 광채를 더 사랑하는 순간, 인간은 이미 탐욕이라는 차가운 우상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돈은 발을 씻겨주는 훌륭한 종이 될 수는 있지만, 당신의 목을 짓누르는 가장 잔인한 폭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황금이 당신의 왕관이 되는 순간, 당신의 영혼은 영원한 파멸의 쇠사슬에 묶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29장에 이르러 지혜의 횃불은 개인의 골방을 넘어 거대한 제국과 공동체의 광장을 비춥니다. “의인이 많으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한 지도자의 심장에 깃든 경건은 온 민족의 머리 위에 내리는 단비와 같습니다. 

죄는 결코 홀로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오만은 수천만 명의 눈물바다를 이루고, 한 사람의 깨어진 순종은 메마른 대지에 평화의 강을 엽니다. 하늘의 통치자는 왕관의 보석을 보지 않으시고 그 왕관 아래 떨고 있는 심령을 저울질하십니다. 

잠언은 인간의 영혼을 옭아매는 가장 치명적인 덫을 폭로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시선보다, 사라질 인간의 눈동자를 더 의식합니까? 

인간의 찬사라는 감미로운 바람에 춤을 추다가도, 그들의 비난이라는 서늘한 귓속말에 영혼이 난파당하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란 아침 안개와 같고 가을바람과 같아서, 오늘은 호산나를 외치다가도 내일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법입니다.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한 분만이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람의 평판이라는 모래 위에 세운 인생은 늘 불안의 파도에 씻겨 내려가지만, 주님의 눈동자만을 바라보는 삶은 거친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의 반석 위에 우뚝 설 것입니다.

지혜는 또한 가슴속에서 들끓는 분노의 화산을 경계하라고 외칩니다. 미련한 자는 성급한 불화살을 쏘아 대며 온 숲을 태우지만, 온유한 자는 그리스도의 눈물로 그 불길을 잡습니다. 분노는 종종 ‘정의’라는 거룩한 탈을 쓴 인간의 잔인한 교만일 뿐입니다. 

반면 온유는 무기력한 굴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완전히 위탁하는 가장 위대한 용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처럼 십자가 앞에서 침묵하셨던 것은, 그분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공의를 온전히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30장에 들어서면 우리는 아굴이라는 한 겸손한 나그네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그는 당대의 지혜자라 자처하는 자들의 오만한 대열에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하신 자 앞에서 자신은 짐승과 같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먼지에 불과하다고 고백합니다.

참된 지혜의 성소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이토록 낮습니다. 하늘 법정에서는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지성인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함이라는 파산 선고를 들고 눈물짓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로 일컬어집니다. 참된 믿음은 “오직 주님만이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할 뿐입니다.

보십시오, 겸손한 영혼이 토해내는 저 찬란한 기도를!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옵소서” 이 얼마나 정결하고 아름다운 기도의 향기입니까? 이는 욕망의 그을음을 모두 씻어낸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거룩한 간구입니다. 

그는 황금이 가득 차면 하늘의 시은좌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했고, 빵 주머니가 비어 버리면 창조주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할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떼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질까를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이 가져다주는 천국의 풍성함입니다. 그리하여 변치 않는 진리를 우리 손에 쥐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인간이 고안해 낸 철학과 사상은 계절을 따라 옷을 갈아입는 유행과 같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하늘 보좌처럼 견고합니다. 

시대의 사조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으나, 여호와의 약속은 세월의 도끼날에도 닳지 않는 정금입니다. 성도는 시대의 조류를 타며 흘러가는 부초가 아닙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말씀의 반석 위에 영혼의 집을 짓는 거룩한 건축자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힘이 없으나 여름날에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에게서 종말을 준비하는 경건한 부지런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한 동물이지만 험한 바위틈에 집을 짓는 바위너구리에게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신 그리스도의 바위 구멍을 발견합니다.

임금이 없으되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에게서 거룩한 교회의 연합을 보며, 사람의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왕궁에 거하는 도마뱀에게서 아무 공로 없는 자가 은혜로 천국 보좌에 들어가는 복음의 신비를 목격합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거대한 은하수뿐만 아니라, 발밑에 기어 다니는 작은 곤충의 날갯짓 속에도 신성한 지혜의 코드를 숨겨 두셨습니다. 오직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심령을 가진 자만이 그 미세한 하늘의 음성을 알아듣고 무릎을 꿇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이 지혜의 세 봉우리를 한눈에 굽어보십시오. 28장은 죄의 수의(壽衣)를 벗어 던지고 십자가로 달려오는 자에게 사자 같은 담대함이 기다리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29장은 인간 군왕들의 썩어질 권세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대망하는 믿음의 삶이 참된 복임을 웅변합니다. 그리고 30장은 자기 지혜의 등불을 끄고 영원한 말씀의 빛 아래 엎드리는 자가 진정으로 가장 부요한 자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세 줄기의 우렁찬 음성은 결국 우리를 누구에게로 인도합니까? 보십시오, 저 갈보리 언덕 위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십자가를! 그곳에 우리 지혜의 실체이신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죄인인 우리에게 의로운 심장을 이식해 주시는 우리의 유일한 의(義)이십니다. 그리고 허무하고 어두운 유한의 세계에서 방황하며 죽어 가는 이들을 거룩한 영원의 세계로 이끌어주시는 유일한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거짓된 자신과 세상을 보는 데에서 눈을 떼어 영원 세계의 왕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지혜가 세상에서는 얻지 못하는 생명의 길과 진리를 얻게 해줍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20 Jul 2026 06:22: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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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200. 끝까지 열매 맺는 지혜로운 성도 (잠 24~27)]]></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51]]></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잠언의 거룩한 보고(寶庫) 속에서, 24장부터 27장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혜를 함께 우러러보고자 합니다. 이들은 은혜라는 한 줄기의 거룩한 강이 되어, 오직 하나의 진리, 즉 ‘그리스도’라는 대양을 향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거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세우시고, 차가운 입술에 성령의 불을 던지시며, 교만한 마음을 십자가 앞에 무릎 꿇려, 마침내 끝까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정결한 신부로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신기루 같은 성공을 자랑하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성품을 저울질하십니다. 가련한 인간은 오늘 손에 쥔 한 줌의 성취를 뽐내지만, 성경은 모진 폭풍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돛을 내리지 않는 삶을 찬양합니다. 

참된 지혜는 이 땅의 지식을 쌓는 바벨탑이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우리 주 예수를 닮아 가는 거룩한 성화입니다. 성령의 음성이 먼저 이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켜듯 선포하십니다. “지혜로 집이 세워지고 명철로 견고하게 되며”

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집은 한낱 썩어 없어질 벽돌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의 무게를 견뎌야 할 우리의 가정이며, 신앙의 제단이며, 우리 영혼의 전(殿)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위에 세워진 집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우리의 ‘만세 반석’이십니다. 인간의 철학과 지혜는 가을날의 낙엽처럼 시대의 바람에 뒹굴며 변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시온산과 같습니다.

보십시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사탄은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정죄를 퍼붓지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그분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는 그 믿음의 불꽃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낙심한 영혼이여, 십자가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십시오!

이어지는 잠언 25장은 우리 영혼의 거울인 입술을 향해 경종을 울립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사과니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천상의 묘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은혜 입은 성도의 혀가 이웃의 심장을 찌르는 잔인한 칼날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절망의 수렁에서 신음하는 영혼을 단숨에 살려내는 생명의 처방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진실하게 선포된 한마디의 위로는, 사탄의 사슬에 묶인 영혼을 해방하는 하늘의 종소리와 같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설교자의 유창한 웅변이나 사람의 화려한 말재주에는 아무런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그 입술에 숯불을 대시고 친히 운행하실 때에만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소금으로 맛을 내고 진리의 빛을 비출 때, 완악한 죄인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원수를 굶기지 말고 머리에 숯불을 쌓으라는 십자가의 정신, 그것이 바로 갈보리 언덕에서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승리의 비밀입니다.

이제 잠언 26장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미련함의 덫을 매섭게 경고합니다. 성경이 폭로하는 가장 비참한 미련함은 세상 학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은혜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오만방자함입니다! 

자기 눈에 흐르는 피고름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삼킬지라도 지옥의 문턱에서 헤맬 뿐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무지는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며, ‘내게 예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지옥의 군주가 입었던 파멸의 옷이지만, 겸손은 하늘 보좌의 문을 여는 은혜의 열쇠입니다. 성령은 또한 게으른 자의 핑계를 부숩니다. 게으름의 무서움은 단순히 이 땅의 가난이 아니라, 만왕의 왕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과 달란트를 녹슬게 버려두는 배임죄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언 27장은 우리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과 관계의 엄숙함을 일깨워 줍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인생들이여! 당신의 손에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 속에 감추어진 신비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은혜의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내일 회개하겠다”고 속삭이는 자는, 사실 “오늘 죄를 더 즐기겠다”고 선포하는 마귀의 자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또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는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교회라는 거룩한 믿음의 군대로 묶어 주셨습니다.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하는 지체의 책망이, 영혼을 멸망으로 이끄는 세상의 달콤한 아첨보다 백배나 귀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친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분은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친구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지금도 거룩한 사랑의 책망으로 우리의 죄를 찢으시며 은혜로 싸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웅장한 지혜의 파노라마를 보십시오! 잠언 24장은 우리에게 만세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지으라 명합니다. 잠언 25장은 은혜의 말로 영혼을 살려내라 촉구합니다. 잠언 26장은 지옥의 누더기 같은 교만과 게으름을 찢어버리라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잠언 27장은 내일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오늘 복음의 공동체 안에서 청지기처럼 충성하라고 외칩니다. 이 모든 외침이 가리키는 단 한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시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 그늘 아래 거할 때에만 우리의 삶은 견고해지고, 우리의 입술은 하늘의 향기를 풍기며, 우리의 성품은 겸손의 진주로 빛나고, 우리의 종말은 천국 곳간의 풍성한 열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성을 향해 걷는 순례자들이여! 오지 않은 내일을 자랑하며 오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썩어질 칭찬을 구걸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엄위하신 인정을 구하십시오.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보다 눈물 어린 사랑의 책망을 달게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이 거친 광야 길 끝나는 날, 요단강 너머 저 영광스러운 시온의 성문이 열릴 때, 우리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안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19 Jul 2026 05:55:4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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