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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복신앙연구소</title>
		<link>http://www.bog.or.kr</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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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67. 홍해에서 승리의 행진까지 (시 66~6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7]]></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묵상할 세 편의 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통치와 승리를 웅장하게 노래하는 거룩한 삼중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홍해 같은 위기에서 건지시고, 불과 물의 연단을 통해 정결케 하시며, 마침내 승리하시는 왕으로서 열방 가운데 영광을 드러내시는 장엄한 드라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먼저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라는 이 외침으로 시작되는 시편 66편은 모든 피조물이 마땅히 드려야 할 찬양을 촉구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역사의 주관자시며, 두려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지만,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것도, 인생이 오르내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숨 쉬고 예배하는 것조차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출애굽의 기적을 생생하게 회상합니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아,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앞에는 끝없는 바다, 뒤에는 애굽의 철병거 군대! 인간적으로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손을 펴시자 바다가 갈라지고, 불가능이 가능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도 그런 홍해가 있지 않습니까? 막다른 골목,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은 순간.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길을 만드십니다. 홍해보다 크신 하나님, 광야보다 크신 하나님,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이 찬양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연단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나이다” 은을 정련할 때 불 속에 넣습니다. 불은 고통스럽지만, 불순물을 태워 순결한 은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불과 물로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도 같습니다. 시련은 우리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결케 하고 성숙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을 지나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광야를 지나 왕이 되었으며, 베드로는 실패를 통해 강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는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불 속에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시고, 물 속에 가라앉게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건져내시고, 풍부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옵니다. 눈물이 아무리 많아도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위기 때 드린 기도를 형통할 때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히 간증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내가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들으셨도다” 단,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기도의 능력은 말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회개하는 깨끗한 마음에 있습니다. 

죄를 붙들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진실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축복의 시편 67편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가장 큰 복은 무엇입니까? 물질이 아닙니다. 건강이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선물보다 주시는 분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만 잘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도를 땅 위에 알게 하시고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축복은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심이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우리가 은혜를 받는 이유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이 반복되는 기도는 선교의 심장입니다. 복음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장차 하늘에서는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이 어린양을 찬양할 것입니다. 교회는 그 영광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통치는 불완전하고, 왕은 바뀌며, 정권은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이 흔들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늘 보좌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절정입니다. 시편 68편의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행진곡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원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밀랍처럼 녹아내립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탄의 세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이시며, 외로운 자를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십니다. 오늘도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고, 버림받은 자를 품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백성 앞에 행진하셨던 하나님! 시내산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렸던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단비를 내리시고, 메마른 영혼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예언이 나옵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서 사탄과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승리자이십니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으나, 실은 최종적인 승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패배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신 왕의 백성으로서 승리 안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 염려를 맡아 주시며, 우리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시편 66편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67편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68편은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홍해에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 그의 얼굴빛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하나님, 원수를 흩으시고 우리 짐을 지시는 왕이신 하나님. 

그분은 어제도 하나님이셨고, 오늘도 하나님이시며, 영원토록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광야에 있든, 어떤 불과 물을 통과하든, 어떤 짐을 지고 있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찬송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영혼을 살려 두시고 당신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이십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16 Jun 2026 06:36:0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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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66. 광야와 성소를 거친 거룩한 여정 (시 63~65)]]></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6]]></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에서, 다윗의 영혼이 부르짖는 시편 세 편을 함께 펼쳐들고자 합니다. 이 세 편의 시는 하나의 거룩한 여정입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시작하여 성소의 영광을 바라보고, 마침내 온 땅에 넘치는 하나님의 추수와 기쁨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영혼의 극렬한 갈망이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로, 눈물이 감사로, 고난이 승리로 바뀌는 믿음의 대서사시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하나님만을 사모하게 하시고, 마침내 그분의 풍성한 은혜로 우리를 채우시는 생명의 강물입니다.

다윗은 유다 광야에 있었습니다. 왕관은 머리에 없고, 보좌는 멀리 있었으며, 물 한 방울조차 귀한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아, 이 얼마나 강렬한 고백입니까! 다윗의 영혼은 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복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을 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참된 신앙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을 탐하지만, 하나님의 얼굴 자체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은혜의 선물을 사랑할 뿐, 은혜의 주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은혜를 아는 영혼은 눈에 보이는 천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참 신자는 축복을 손에 쥐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마음에 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을 돌아보십시오. 건강을 구하고, 평안을 구하고, 물질의 형통을 구하지만, 정작 “주여, 주님 자신을 주소서!”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지 않습니까? 하루가 시작될 때 주님을 찾으십시오. 낮에도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밤에 잠자리를 들면서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를 찾는 자는 주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성소에 있었습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몸은 메마른 땅에 있었으나,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결정짓지 않습니다. 믿음이 환경을 이깁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찬송을 불렀고, 섬에 유배된 요한이 계시록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장소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가장 아름다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사람들은 생명을 가장 귀히 여기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보다 더 귀하다고 외칩니다. 생명은 끝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건강은 쇠하고, 재물은 사라지며, 명예는 퇴색하지만, 그분의 인자하심은 별처럼 영원히 빛납니다.

이 사랑을 아는 자는 모든 것을 잃어도 가장 귀한 것을 잃지 않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환경 때문에 감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감사하십시오. 그는 밤마다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습니다. 밤은 두려움의 시간이었으나,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거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생각이 삶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주의 날개 그늘에서 내가 즐겁게 부르리이다” 독수리가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 하나님은 우리를 그늘 아래 숨기십니다. 세상이 요동쳐도, 질병이 덮쳐도, 가난이 몰려와도, 배신이 찾아와도 그분의 날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그늘 아래서 노래하십시오!

이제 다윗은 더 깊은 고난으로 들어갑니다. 칼보다 무서운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의 혀입니다. “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아, 사람의 말은 얼마나 날카로운 칼이요, 얼마나 독한 화살입니까! 거짓말이 영혼을 찌르고, 비방이 공동체를 파괴하며, 중상이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말, 교회 안의 말, 세상의 조롱…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의 말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원수들은 몰래 계획하고 숨어서 공격했으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셨습니다. 숨은 죄도, 숨은 눈물도, 숨은 기도도, 숨은 충성도 하나님은 다 보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사람의 화살은 느리지만 하나님의 화살은 신속합니다. 사람의 계획은 약하나 하나님의 섭리는 전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수하려 하지 마십시오.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상처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억울함을 그분의 보좌 앞에 쏟아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갚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합니다. 세상의 기쁨은 환경에 달려 있지만, 성도의 기쁨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환경은 변하나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 기쁨은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광야를 지나 성소로, 성소를 지나 추수의 들판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참된 찬송은 억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영혼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감사의 샘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 어린 기도, 말 못 하는 탄식, 깊은 한숨을 그분은 다 들으십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죄 사함의 은혜를 높이 찬양합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여기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살아가고, 은혜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은혜 없는 기독교는 죽은 종교일 뿐입니다.

그는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산을 세우시고 바다를 다스리시며 별들을 운행하시는 분! 온 우주를 붙들고 계신 그 손이 바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위로입니까! 마침내 시편은 풍성한 추수의 장면으로 끝납니다.

“주께서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농부는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심지만, 부흥과 회심과 성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는 곳마다 축복이 떨어집니다. 

광야가 꽃밭이 되고, 메마른 영혼이 살아나며, 절망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이것은 단순한 농촌의 풍경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시편 63편의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으십시오. 64편의 억울함과 상처로 괴로워하십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65편의 풍성한 추수를 기다리십니까?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광야의 하나님은 성소의 하나님이시며, 성소의 하나님은 추수의 하나님이십니다. 목마른 영혼을 채우시는 하나님, 억울한 성도를 변호하시는 하나님,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 그분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실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15 Jun 2026 06:35: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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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65. 고난의 밤을 지나는 순례자의 노래 (시 59~6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5]]></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영혼이 통과했던 깊은 골짜기,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네 개의 봉우리를 함께 오르려고 합니다. 이 거룩한 말씀들은 결코 상아탑에 앉아 태평하게 써 내려간 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원수의 칼날 앞에서, 국가의 무너진 잔해 위에서, 그리고 찢겨진 심령의 통곡 속에서 피어난 ‘고난의 밤을 지나는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네 편의 시편 속에 우리 신앙의 위대한 영적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두셨습니다. 

59편은 사방이 적으로 포위당해 ‘위협을 만난 믿음’이요, 60편은 쓰라린 패배 속에서 ‘징계를 경험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61편은 광야 끝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며, 62편은 마침내 모든 폭풍을 뚫고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안식에 도달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어느 지점을 지나고 계십니까? 어떤 처지에 있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붙드는 견고한 닻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다윗의 집 밖을 보십시오. 

사울이 보낸 자객들이 칼을 갈며 밤새도록 집을 에워싸고 죽이려 합니다. 본문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원수에게서 건지시고 일어나 나를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창문 너머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사방이 적이라 탈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보호는 안개와 같아서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보호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서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다윗의 집을 둘러쌌을지 모르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사울의 군대와 다윗의 집 전체를 당신의 불말과 불병거로 감싸 안고 계셨습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환경을 에워싸고 있습니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품고 계십니다.

이 다급한 위기 속에서 성경은 놀라운 장면을 계시합니다. 8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옥의 동맹군이 주님의 자녀를 삼키려고 으르렁거릴 때, 하늘의 왕좌에 앉으신 분은 두려워 떨기는커녕 그들의 가소로운 음모를 비웃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미 승리의 결말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다윗은 새벽이 오기 전, 여전히 원수들이 밖에서 도사리고 있을 때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라고 노래했습니다. 상황이 다 끝난 뒤에 부르는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흑암의 한복판에서 아침의 태양을 미리 보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백성도 실패와 패배를 경험합니다. 시편 60편 1절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라는 비통한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여 도망치고, 땅이 갈라지듯 온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군대가 패배합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당신의 자녀 안에 있는 교만과 자만을 제거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사탄의 도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썩은 부위를 도려내시는 하늘 의사의 거룩한 수술 메스입니다. 수술대는 눈물겹도록 아프지만, 그 칼끝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진흙탕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4절에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군대가 패배하여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 대장 되신 여호와께서 친히 새로운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무너졌습니까? 사역의 현장에 눈물뿐입니까? 혹은 신앙의 깊은 침체 속에 허덕이고 계십니까? 낙심하여 주저앉지 마십시오. 승리는 우리의 지혜나 군대의 숫자에 있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12절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영웅이었지만,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위대한 성도도 때로는 지치고 낙심하며, 왕의 왕관을 썼을지라도 영혼은 가련하게 떨 수 있습니다. 신앙이 좋다고 해서 눈물과 감정의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차이는 '약해졌을 때 어디로 달려가느냐'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들은 모두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발은 흔들리고 나의 힘은 바닥났으나, 나보다 훨씬 높고 견고하여 거센 파도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영원한 반석이 계십니다.

그 반석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비를 피하다 떠나는 허름한 여관방이 아니라, 우리가 영원토록 거할 대궐 같은 집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날개 밑에 피하여 어미 닭의 품에 안긴 병아리처럼 완전한 안전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영적 여정의 정점인 시편 62편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이 시편을 세상의 그 어떤 노래보다 사랑하는데, 이것은 폭풍우가 다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평온한 믿음의 대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단어는 바로 “오직(Only)”입니다.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선포합니다. 

그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도 의지하고 세상도 함께 바라보는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의지처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그의 영혼의 닻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왜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왜 조그만 소문과 환경에도 이리저리 흔들립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썩은 동아줄을 함께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바로 그 순간, 영혼은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세상의 재물이 늘어나고 계십니까? 10절의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을 귀담아들으십시오. 돈은 발밑에 두면 좋은 종이 되지만, 머리 위에 모시는 순간 가장 잔인한 폭군이자 우상이 됩니다. 

우리가 온전히 의지할 분은 오직 한 분, 능력과 인자가 충만하신 하나님뿐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힘은 있으나 사랑이 없어 우리를 짓밟고, 세상의 친구들은 사랑은 있으나 힘이 없어 우리를 돕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우주를 움직이는 ‘능력’과,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인자하심’을 동시에 가지신 분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신데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평안을 소유한 자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뒤흔들려 하거나 사탄이 여러분의 영혼을 낙심시키려 합니까? 그 모든 풍파를 향해 “잠잠하라!” 선포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원수가 둘러싸도, 실패가 찾아와도, 마음이 찢어져도 당신과 나, 그리고 성도 모두의 고백은 영원히 하나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십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14 Jun 2026 05:04: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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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64. 성도가 경험하는 세 가지 현실 (시 56~58)]]></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4]]></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세 편의 정금 같이 기록된 거룩한 말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세 가지 현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억울함과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세 편의 시편은 모두 다윗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 기록한 시입니다. 다윗은 왕궁의 편안한 침상에서 이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적들에게 쫓기고, 배신당하고, 죽음의 위협 속에 있을 때 이 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다윗의 시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결국은 찬양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고난을 통하여 성도의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시편 56편의 배경은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에서 붙잡혔을 때입니다.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은 적국 블레셋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완전히 막다른 골목입니다.

앞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있고 뒤에는 사울의 군대가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두려워합니다. 아브라함도 두려워했고, 모세도 두려워했고, 엘리야도 두려워했고, 사도 바울도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도 심한 고민과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문제는 두려움 자체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어디로 가져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갔습니다.

믿음이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건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상황보다 크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셨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사람들은 우리의 눈물을 잊어버립니다.

세상은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 한 방울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눈물을 병에 담아두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완벽하게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성도는 밤마다 홀로 울고 있습니다. 가족도 모르는 눈물이 있습니다. 배우자도 모르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울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시편 56편 마지막에서 다윗은 승리를 선언합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아직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울도 살아 있습니다. 원수도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미 승리를 노래합니다. 왜입니까? 믿음은 결과보다 하나님을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현실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굴 속에 숨어 있을 때 기록한 시입니다. 굴은 어둡습니다. 굴은 답답합니다. 굴은 고립된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굴을 경험합니다. 질병의 굴이 있습니다. 실패의 굴이 있습니다. 배신의 굴이 있습니다. 상실의 굴이 있습니다.

다윗도 지금 굴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첫 마디는 놀랍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은 사람을 찾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고난은 사람의 진짜 믿음을 드러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굴 속에서는 진짜 믿음이 드러납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리이다"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개를 펼치듯 하나님은 성도를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안전한 이유는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전체가 흔들려도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는 자는 안전합니다. 57편의 중심은 7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다윗은 굴 속에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께 고정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환경보다 마음의 방향입니다. 사탄은 상황을 흔들어 우리의 마음을 흔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보통은 새벽이 우리를 깨웁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겠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환경이 좋아져서 찬양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어두워도 먼저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이 낫게 되면 찬양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반대입니다.

먼저 찬양하는 것입니다.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벽을 열어 주십니다. 시편 58편은 매우 강한 시편입니다. 다윗은 부패한 재판관들과 악인들을 향해 말합니다. "인생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당시 지도자들은 정의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을 행했습니다. 힘 있는 자를 편들고 약한 자를 억압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보고 분노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 일을 봅니다. 악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접 복수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58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기도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 복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가 만난 장소입니다. 죄를 그냥 넘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면서도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58편 마지막은 매우 중요한 결론으로 끝납니다.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역사는 우연히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판결하십니다. 악은 영원히 승리하지 못합니다. 거짓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합니다. 불의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시편 56편에서 다윗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57편에서 다윗은 굴 속에서도 찬양했습니다. 58편에서 다윗은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렸습니다. 이 세 편의 시편은 성도의 인생 여정을 보여줍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어두운 굴 속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억울한 일을 만날 때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십시오. 다윗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병에 담으시는 하나님, 굴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마침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13 Jun 2026 06:11: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63.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지 않는 전능자 (시 53~55)]]></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3]]></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피 묻은 다윗의 발자취를 따라 시편 세 편이 노래하는 거룩한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 죄악의 가장 깊은 심연을 목도하는 동시에, 고난의 폭풍 속에서도 빛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53편은 먼저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임을 밝힙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아, 기억하십시오! 무신론이라는 독초는 지성의 머리가 아니라, 죄를 사랑하는 부패한 마음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법입니다.

태양이 엄연히 존재하듯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눈을 감는다고 해서 우주의 창조주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은 과학을 자랑하고 문명을 뽐내며 하나님 없이도 행복의 바벨탑을 쌓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바벨탑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깊어지는 불안과 찢겨진 가정의 통곡 소리뿐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떠났으니, 그 영혼에 어찌 지옥의 황량함 외에 다른 것이 깃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보시며 의인을 찾으셨으나, 선을 행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의 도덕으로 스스로를 위로할지 모르나, 거룩하신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서는 모두가 파산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의 썩어질 철학이나 정치에서 나올 수 없으며, 오직 시온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솟아납니다! 시편 54편은 다윗이 가장 믿었던 동족, 십 사람들에게 칼날 같은 배신을 당했을 때 터져 나온 피의 절규입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이고 의지할 인간의 팔뚝이 모두 부러졌을 때, 다윗은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의 요새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군대의 숫자를 세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붙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의 폭풍이 거세질수록 우리는 문제의 파도를 보지 말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크게 보아야 합니다. 환경이 하나님보다 커 보이면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이 환경보다 커 보이면 믿음의 거인이 되는 법입니다.

친구는 변하고 세상은 우리를 쓰레기처럼 버릴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결코 자기 자녀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보좌에 앉아 우리의 고통을 구경만 하시는 값싼 동정자가 아니라, 대적의 손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시는 강한 조력자이십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여러분의 삶의 한복판에 개입하시고, 홍해를 가르시듯 친히 길을 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의 탄식을 멈추고 감사의 제사를 준비하십시오. 믿음의 끝은 언제나 승리의 예배로 마감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55편은 원수가 아닌, 한 상에서 떡을 먹던 가장 친밀한 동료의 배신으로 찢겨진 다윗의 심장을 보여줍니다. 배신의 칼날은 이방인의 창검보다 날카로워, 다윗으로 하여금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도망쳐 숨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잔인한 무기는 다름 아닌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영적 자살을 감행하지 마십시오.

교인들이나 목회자가 아픔을 주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는 것은, 비를 피하려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 보좌 앞으로 도망쳤으니, 고난은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묶어주는 붉은 끈입니다.

“<strong>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strong>

오, 이 말씀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고, 지친 영혼을 살리는 하늘의 영양제와 같은 위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무거운 생활의 짐, 질병의 아픔, 미래의 염려를 왜 아직도 가녀린 주먹에 꽉 쥐고 밤새 잠 못 들고 계십니까?

맡긴다는 것은 기도의 제단에 짐을 올려놓고는, 일어설 때 다시 그 짐을 가방에 넣어 짊어지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결과와 책임을 완전히 넘겨드리는 거룩한 영적 위임입니다.

하나님께 맡긴 염려를 다시 찾아와 걱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불신앙의 잔재이니, 주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세상의 저울은 잠시 불의한 자들의 금권과 거짓말 쪽으로 기울어져 악인이 영원히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결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마침내 악인의 도성을 무너뜨리시고 의인의 머리를 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순간에도 그분의 구원의 수레바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약속의 시온을 향해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시편 53편, 54편, 55편은 모두 같은 결론으로 향합니다. 악인은 결국 망합니다. 의인은 결국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악인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배신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구원도 반드시 옵니다. 다윗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신뢰했습니다. 사람이 떠날 때도 신뢰했습니다. 배신을 당할 때도 신뢰했습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높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배신과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붙드시며, 끝까지 인도하시며,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strong>“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strong>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Fri, 12 Jun 2026 05:25: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62. 하늘 법정의 선언과 상한 심령의 제사 (시 50~5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2]]></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세 편의 시들을 통해 우리의 영적 시선을 하늘의 엄숙한 법정으로 돌리기를 원합니다. 먼저 시편 50편은 인간의 침묵을 깨뜨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장엄한 강림으로 포문을 엽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에게 “하나님은 멀리 계신다, 그분은 보지 못하신다”라고 속삭이며 죄를 짓도록 부추기지만, 성경은 대낮의 태양처럼 명백하게 외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오늘날 귀가 가려운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그저 알랑거리는 죄까지 눈감아주시는 유약한 분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시온에서 빛나시는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죄를 향해 불타오르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엄위하신 재판장께서 누구를 먼저 피고석에 앉히십니까? 저 너머의 이방인들입니까? 아닙니다! “제사로 나와 언약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바로 교회 문턱을 드나드는 신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제단을 짐승의 피로 가득 채웠고, 성전 마당이 닳도록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피비린내 나는 형식주의를 향해 거룩한 분노를 쏟아내십니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라! 내가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푼돈이나 생색내기식 예배에 굶주린 분이십니까? 우주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종교적 행위로 배를 채우셔야 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외식하는 자들의 예배는 영혼이 빠져나간 송장과 같고, 썩어가는 시체에 분칠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갈망하시는 것은 가축의 기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과한 자들의 '감사의 제사'입니다. 

환난 날에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부르짖는 참된 영혼의 고백입니다. 입으로는 정통 교리를 유창하게 읊조리면서, 삶 속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손잡고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는 위선자들이여!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당신의 죄를 승인하신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모든 죄악을 아주 미세한 가루로 철저히 갈아버리실 것입니다.

속히 감사의 제사로 돌이켜 하나님의 구원을 보십시오! 그렇다면 이 엄중한 공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의 고발 앞에서 위선의 가면이 찢겨 나간 영혼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시편 50편의 엄숙한 법정을 지나, 성경 전체에서 가장 처절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참회의 골짜기인 시편 51편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자신의 추악한 죄를 목격하고 왕관을 배설물처럼 버려둔 채 거적때기 위에 뒹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 면전 앞에 단독자로 서서 절규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참된 회개는 결코 인간의 가련한 선행이나 공로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해변에 자신을 던질 뿐입니다. 다윗의 양심은 밤낮으로 송곳처럼 그를 찔렀습니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아도 우리아의 핏빛 가득한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지옥의 공포보다 다윗을 더 괴롭혔던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모든 거짓말, 모든 탐욕, 모든 은밀한 음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반역 행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죄 덩어리로 태어난 소망 없는 본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재창조를 구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창세기 1장 속 혼돈과 공허의 심연 위에 빛을 창조하셨던 엄위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자신의 썩어 문드러진 심령 속에 거룩한 마음을 창조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보좌를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잃을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일한 공포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사울 왕이 성령이 떠난 후 악령에 시달리며 비참하게 파멸해 가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는 지옥에 가는 것보다, 주님의 임재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백만 배나 더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지옥의 문턱까지 떨어졌던 그가 어떻게 회복됩니까?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이 선언하셨던 그 진리가 여기서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회개는 단순히 감상적인 눈물 몇 방울이 아닙니다. 죄를 향해 뼈가 꺾이는 고통을 느끼며, 죄를 피 토하듯 미워하고, 십자가의 보혈 아래로 완전히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부서진 영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즐거움을 정금처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와, 끝까지 영적 교만과 위선 속에 머물며 세상 힘을 자랑하는 자의 결말은 어떻게 갈라지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시편 52편에서 그 극명한 대조를 목격하게 됩니다. 

여기 간악한 고발자요 사울의 사냥개였던 도엑이라는 자가 서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85명을 단칼에 도륙한 추악한 자였습니다. 그는 권력을 쥐었고, 재물을 쌓았으며, 자신의 악한 음모를 성공시켰다고 기고만장하여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다윗은, 그 서슬 퍼런 권력자를 향해 통렬한 사자후를 발합니다.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도엑의 혀는 날카로운 면도날 같아서 무죄한 자들을 난도질했습니다. 

오늘도 사탄의 하수인들은 독이 묻은 혀의 칼날을 휘두르며 형제들을 비방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시편 50편에서 경고했던 ‘입으로는 율례를 말하나 삶으로는 악을 행하는 위선자’의 전형이 바로 이 도엑입니다. 그러나 이 악인들의 번영을 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이미 그들의 뿌리에 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시며 너를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악인들이 이 땅에서 기고만장하게 번성하는 것을 보십니까?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마지막 날에 보기 좋게 살찌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비대해질수록, 그들이 떨어질 파멸의 깊이는 더 깊고 참혹할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쌓은 재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51편의 통회함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의인은 어떻게 됩니까? 도엑의 뿌리는 뽑히지만, 의인의 뿌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강가에 깊이 박힙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세상의 폭풍이 불어 닥쳐 도엑과 같은 악인들이 뿌리째 뽑혀 나갈 때에도, 여호와의 성전에 심긴 신자는 신선한 진액을 공급받으며 영원토록 푸르를 것입니다.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 푸른 감람나무처럼,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들은 영원히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재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인자하심에만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성령께서 시편 50편부터 52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거대한 말씀의 맥락을 보십시오. 식어버린 외식의 제단을 버리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회복하십시오. 위선의 가면을 찢어버리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상한 심령을 쏟아내는 참된 회개자로 서십시오. 

돈과 권력이라는 썩어질 동아줄을 놓아버리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을 붙드십시오. 세상의 헛된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저 마지막 대심판의 날, 주님의 무서운 진노의 불길 속에서도 눈동자처럼 보호받으며, 구원의 즐거운 노래를 영원토록 부르는 상한 심령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hu, 11 Jun 2026 07:19: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61. 성도가 가져야 할 분명한 결론 (시 47~49)]]></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1]]></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47편부터 49편까지를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심과 인간의 한계, 그리고 참된 구원의 소망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47편은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시편 기자는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의 신이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다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왕과 황제들이 등장했고, 자신들의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왕국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왕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2절은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임금이 되심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왕이 아니라 큰 왕이십니다. 세상의 권세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권세는 무한합니다. 사람은 자기 집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 인생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별들의 움직임을 통치하시고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왕이심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4절은 “우리에게 기업을 택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왜 이런 길을 허락하셨는지 묻습니다. 왜 질병입니까? 왜 실패입니까? 왜 눈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선택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언제나 더 옳습니다. 6절은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왜 이렇게 반복합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택 중 하나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찬양은 믿음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필요를 말하지만 찬양은 하나님 자신을 높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문제를 바라보느라 찬양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신앙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바울과 실라도 찬양했습니다. 사자굴 속의 다니엘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불 속의 세 친구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7절은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란스러워 보여도 결국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전쟁도 재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8절은 “하나님이 뭇 나라를 다스리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혼란한 상황들을 보며 낙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믿으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10절은 놀라운 결론을 보여 줍니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모든 권세는 결국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권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만 경외하면 됩니다.

이제 시편 48편으로 넘어갑니다. 48편은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세상은 교회를 약하게 봅니다. 때로는 교회가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교회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2절은 시온을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왜 교회가 아름답습니까? 

건물이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전은 껍데기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작은 모임은 천국의 전초기지입니다. 3절은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피난처가 있습니다. 돈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권력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맥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피난처는 하나님뿐입니다. 폭풍우가 올 때 새가 바위틈으로 들어가듯 성도는 하나님께로 피해야 합니다.

5절은 대적들이 시온을 보고 놀라 도망했다고 기록합니다. 교회의 힘은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건물도 없고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9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데서 자랍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창조하신 사랑.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사랑.

오늘도 붙드시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할수록 감사가 회복됩니다. 12절부터는 시온을 둘러보라고 합니다. “시온을 두루 다니고 그것을 둘러보며 그 망대들을 계수하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기억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어떻게 위기에서 건져내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14절은 위대한 결론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오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젊을 때만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목자가 양을 끝까지 돌보듯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이제 시편 49편으로 들어갑니다. 49편은 지혜시입니다.

시인은 모든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이 시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다룹니다. 부자가 정말 성공한 사람인가? 죽음 앞에서 돈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6절은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세상은 돈을 신처럼 섬깁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중요한 사실을 선포합니다. “아무도 자기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돈으로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돈으로 천국을 살 수 없습니다. 8절은 영혼의 속량 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값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죄 값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10절은 지혜자도 죽고 우둔한 자도 죽는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듭니다. 왕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습니다. 학자도 죽습니다. 관은 계급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무덤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13절은 재물을 의지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보여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재산을 얻으려고 평생을 달립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합니다. 17절은 말합니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우리는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었느냐입니다.

20절은 시편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어도 하나님 없이 살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돈에 있지 않습니다.

명예에 있지 않습니다.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시편 47편은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시편 48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을 선포합니다. 시편 49편은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왕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시온의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재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세상은 지나갑니다. 권세도 지나갑니다. 부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찬양하십시오. 어떤 어둠 속에서도 신뢰하십시오. 어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며, 피난처이시며, 구속자이시며,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Wed, 10 Jun 2026 06:48: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60. 탄식과 영광이 교차하는 말씀의 장 (시 44~46)]]></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10]]></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인간의 가장 깊은 탄식과 천상의 가장 찬란한 영광이 교차하는 거룩한 말씀의 숲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마주하는 시편 44편은 통곡으로 가득 찬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시인은 그 어두운 수렁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들어 올립니까? 

그것은 바로 ‘기억’이라는 등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신앙의 맥박은 기억과 함께 뜁니다. 만일 하나님의 신실하셨던 과거를 망각의 무덤에 묻어버리면 믿음도 함께 묻혀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린 것은 그들의 잘 제련된 칼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홍해를 가른 것은 그들의 강인한 팔뚝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오른손과 그의 거룩하신 팔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서 있는 것도, 우리가 이 자리에 호흡하며 앉아 있는 것도 우리의 잘난 지혜나 도덕적 결백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 덕분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거룩한 기억 뒤에 몰려오는 어둠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였고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으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아, 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신비입니까! 세상의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만 믿으면 고난의 길이 탄탄대로로 바뀐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진리가 아닙니다. 복음은 고난을 면제해 주는 황금 티켓이 아니라, 고난의 한복판을 통과하게 하는 하늘의 전신갑주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자들이 가장 깊은 슬픔의 잔을 마셨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다윗을 보십시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사도 바울,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태양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해서 태양이 소멸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심지어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라고 비명이 터져 나올 때일지라도, 참된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얼굴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궤도를 도는 행성이 태양 뒤편의 어둠을 지날 때도 여전히 중력에 매여 있듯, 참된 성도는 축복이라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 때문에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의 성품은 결코 변하지 않는 신실함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끝까지 위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삶을 돌이켜보고 회개해 보아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우리의 영혼은 찢어지는 듯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깊고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당신을 정금 같이 빚어가고 계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슬픔의 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편 44편의 눈물 고인 눈을 들어 45편을 바라보십시오. 여기, 피 묻은 전장을 지나 승리의 궁전으로 입성하시는 찬란한 왕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일개 지상의 군주를 찬양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대서사시입니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오, 이 땅의 언어 중 어떤 단어가 우리 주님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분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비단옷이나 썩어질 육체의 미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 험한 골짜기를 다니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이며, 세상에서 낙오된 깨어진 심령들을 보듬고 싸매어주시는 긍휼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분의 입술을 보십시오! 

거룩한 율법의 칼날로 단번에 베어버리실 수도 있었던 그 입술에서 무엇이 흘러나옵니까? 간음한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셨던 은혜가 흘러나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며 뚝뚝 떨어지던 용서의 보혈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동시에 허리에 칼을 찬 공의의 왕이십니다.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초림의 주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온유하셨으나, 다시 오실 주님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실 엄위하신 심판주이십니다. 

세상의 제국들은 바다의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로마 제국의 독수리 깃발도 꺾였고, 몽골 제국의 영광도 사라졌으며, 세상의 권력들은 흔적 없이 풍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왕권을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보좌는 영원무궁합니다!

그리고 여기, 그 왕의 곁에 선 눈부신 신부가 있습니다. 바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곧 여러분과 저입니다. 신부가 결혼 날에 옛 집과 과거의 연인들을 잊어버려야 하듯, 성도들이여, 세상의 정욕과 헛된 야망에 빼앗겼던 눈길을 거두십시오. 

우리의 시선을 오직 하늘의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만 고정하십시다! 그 영광스러운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얼마나 안전합니까? 시편 46편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부르는 위대한 승전가입니다. 

믿음의 거장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칼바람 속에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고 외치며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보십시오. 사방에서 산이 무너져 바다 한가운데 빠지고, 노한 파도가 삼킬 듯이 뛰어노는 46편의 대혼돈의 모습을!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초상 아닙니까? 건강이 흔들리고, 재정이 무너지며, 가정이 요동치고, 국가가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폭풍이 거셀수록 방파제의 견고함이 증명되듯,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리의 영원한 바위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더욱 또렷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성들은 적에게 포위당하면 수로가 끊겨 말라 죽지만,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에는 은밀히 흐르는 하늘의 맥박이 있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이 강은 무엇입니까? 가뭄 속에서도 마르지 않고, 전쟁의 소음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이 기쁨의 시내는 바로 성령의 역사이며, 십자가로부터 흘러내리는 거룩한 은혜의 줄기입니다! 성도의 심령 깊은 곳에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생명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세상의 거대한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주님의 이 엄위하신 명령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손을 내리십시오! 염려의 계산기를 두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보다 앞서 달려가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절망을 멈추고 만군의 여호와의 주권을 잠잠히 바라보십시오. 역사의 키를 쥐고 계신 분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교회의 기초를 놓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음부의 권세는 결코 교회를 흔들 수 없습니다.
 
시편 44편의 극심한 고난 속에서 울부짖고 계십니까? 시편 45편의 찬란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리하면 시편 46편의 흔들리지 않는 요새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결코 우리 신앙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왕이 계시며, 그 왕은 다름 아닌 환난 날에 만날 우리의 가장 큰 도움이십니다. 눈물의 밤이 깊을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는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이 통째로 뒤바뀐다 할지라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깃발은 영원히 꺾이지 않습니다. 이 한 주간도 두려움 대신 믿음을, 원망 대신 기도를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삼킬 듯 도도하게 밀려오는 세상의 파도를 향해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영원한 힘이시라!”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09 Jun 2026 05:19: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9. 참 기독교는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영혼의 축제 (시 41~43)]]></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9]]></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눈물과 탄식이 가득한 시편의 골짜기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골짜기는 절망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성소입니다. 먼저 시편 41편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가 복이 있음을 선언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던져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손은 문둥병자에게 닿았고, 그분의 발걸음은 과부에게로 향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교회 문틀 안에서만 맴도는 화려한 교리가 아니라, 약한 자들을 향해 흘러넘치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사랑입니다! 다윗은 곧바로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봅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환난의 폭풍이 불어닥칠 때, 율법주의자는 남의 죄를 지적하지만, 참 성도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죄를 고백합니다.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영혼에 묻은 죄의 찌꺼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고, 보혈의 샘물로 고치실 것입니다!

더욱이 다윗의 심장을 찌른 것은 가장 신뢰했던 친구의 배신이었습니다. “내 떡을 나누어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처절한 고백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봅니까? 주님도 가장 사랑했던 제자에게 발꿈치로 찍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상처받고 눈물을 흘릴 때, 갈보리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의 신실함은 아침 안개와 같고 밀물과 썰물처럼 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요새이십니다. 인간의 배신이 여러분의 믿음을 꺾지 못하게 하십시오. 42편에 주목하십시오!

<strong>“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strong>

오늘날 이 시대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육체는 호사스럽고 풍요로우나, 영혼은 바짝 말라 비틀어진 미이라와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돈과 썩어질 명예의 우물을 파느라 분주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품만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금 성전에서 멀어져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오, 성도 여러분! 믿음의 거인도 낙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도 우울증의 깊은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매주 수천 명에게 설교하는 저도, 하늘이 놋쇠 같고 땅이 철 무더기 같아 보이는 어두운 침체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둠 속에서 확신하며 외쳤고, 지금도 외칩니다! “아무리 밤이 길고 어두울지라도, 하나님의 아침 해는 반드시 떠오릅니다!”

다윗이 이 우울의 늪을 어떻게 탈출하는지 보십시오. 그는 주저앉아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영혼을 향해 거룩한 호통을 치며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감정이 “너는 끝장났다”고 속삭일 때, 사탄이 “하나님은 너를 버렸다”고 참소할 때, 그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기 영혼의 덜미를 잡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천둥소리처럼 선포하십시오!

“내 영혼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맹목적인 눈감기가 아닙니다. 요동치는 현실 너머에 계신 거대한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난이 폭포수처럼 밀려오고, 파도가 여러분을 삼키려 합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파도와 폭포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파도 한 조각도 감히 그리스도의 보혈로 산 자녀의 발끝 하나 적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43편에서 다윗은 문제의 해결이나 원수의 파멸을 구하기 전에,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립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소서!” 오, 이 얼마나 보석 같은 기도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고난의 무게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주의 빛이 비추면 우리는 폭풍 속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거짓으로 요동쳐도 주의 진리가 내 발의 등이고 내 길의 빛이 되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군사로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은 가장 고귀한 고백 중 하나를 선포합니다.

<strong>“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시 43:4)</strong>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이 시편 전체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이 말씀을 선택하겠습니다. 다윗은 말하지 않습니다. “큰 축복을 주신 하나님” “큰 성공을 주신 하나님” “큰 승리를 주신 하나님” 아닙니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하나님을 자기 기쁨으로 삼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이 낫기 위해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이 잘되기 위해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가 잘되기 위해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 가기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들을 넘어섭니다.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사 오는 선물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자녀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기뻐합니다. 어린 신자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셔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주일마다 찾아와야 하는 무거운 ‘의무’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영혼을 춤추게 하는 ‘최고의 기쁨’입니까? 참된 기독교는 율법의 사슬에 묶인 노예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영혼의 축제입니다!

건강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병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은혜 때문에 기뻐할 수 있지만,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합니다. 천국이 좋아 천국을 기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천국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기쁨으로 삼으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는 다윗의 권고가 살아 역사하게 됩니다.

질병의 칼날이 당신을 위협합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가슴이 찢어집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베개 가득 눈물을 흘리며 영혼의 깊은 침체 속에 갇혀 계십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세상의 정욕도 지나가고, 가족과 친구들도 떠나가고, 건강도 시들며, 명예와 성공은 날개를 달아 날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무궁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참된 기독교는 죄 사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최종 목적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가장 위대한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주님이 나의 큰 기쁨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08 Jun 2026 05:25: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8. 하나님을 기뻐할 때 나타나는 신비한 역사 (시 37~40)]]></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8]]></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37편에서 40편까지 네 편의 시를 통해 하나님의 다루심과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가 어떠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편들은 성도의 인내, 하나님의 섭리, 메시아의 구속 사역, 그리고 찬양의 삶이라는 네 주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시편 37편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라고 시작합니다. 다윗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성도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죄 중 하나가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성공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성공은 잠시일 뿐입니다. 푸르던 풀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시드는 것처럼 악인의 번영도 결국 끝이 납니다.

<strong>“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strong>

사람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마법의 지팡이처럼 모두 주신다는 의미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자신도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세상 욕심은 작아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곧 우리의 소원이 되는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다윗의 선포처럼 자신의 길을 자신의 원함이나 뜻이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강단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설 때는 여전히 걱정 보따리를 움켜쥐고 나서지 않습니까? 참 믿음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 후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맡긴 문제를 다시 품고 집으로 돌아가 고민하는 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불신앙의 독백일 뿐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잠잠히 여호와를 바라고 참아 기다리라” 성도 여러분, 이 ‘기다림’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군대에서 가장 통과하기 힘든 최고 난이도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즉시 응답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깊은 침묵 속에 우리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이 기다림은 하나님의 거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더 아름답게 가꾸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준비 과정입니다. 11절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는 선언은 훗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그대로 인용하신 위대한 말씀입니다.

세상은 목소리가 크고 강한 자가 승리한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의 법은 온유한 자가 승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유약함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기 때문에, 내 손으로 스스로 복수하지 않는 ‘통제된 거룩한 힘’입니다.

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라며 성도의 발걸음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우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남도, 이별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거룩한 용광로 속에서 빚어지는 필연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편 38편, 통회와 자복의 어두운 골짜기로 내려갑니다. 이 시편은 죄의 비참함을 고백하는 처절한 회개의 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은 온 세상의 왕관을 쓰고 황금 침대에 누워있을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십자가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은 비록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절망의 늪에 주저앉지 않고, 22절에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며 자비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가룟 유다는 죄를 짓고 후회했으나 사탄의 밧줄을 선택했고, 베드로는 통곡하면서도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참된 회개는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추악한 죄보다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바다로 다시 뛰어드는 것입니다.

시편 39편에 이르면,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유한함과 인생의 짧음을 처절하게 노래합니다. 4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하사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소서”라고 애절하게 기도합니다.

미련한 현대인들은 그저 이 땅에서 오래 살기만을 구하지만, 거룩한 성도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를 구해야 합니다. 5절은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셨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토록 허무하고 짧다는 뜻입니다.

청춘의 아름다움도, 세상의 화려한 명예와 권력도, 하나님의 숨결 한 번이면 서리 맞은 풀잎처럼 흔적 없이 사그라질 것입니다. 그 유한함의 끝에서 다윗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위대한 신앙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 외의 사람이나 세상 어떤 것에 소망을 두는 그 순간, 반드시 실망과 배신을 맛보게 될 뿐입니다. 11절 말씀처럼 “사람의 아름다움이 좀먹은 옷 같이 소멸되게 하시나니” 젊음도, 권력도 다 지나가지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은 영원하십니다.

이제 40편으로 나아가면, 고통의 눈물은 마침내 절망을 뚫고 거룩한 찬양의 대합창으로 옮겨갑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기도의 자리를 지켰고, 하나님은 마침내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내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불안에서 안정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두려움에서 확신으로 옮기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반석 위에 굳게 세워 주셨습니다.

3절에서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으니”라고 고백하듯, 지옥 형벌의 수렁에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반드시 터져 나오는 새 노래와 찬양이 있습니다. 은혜의 깊이를 경험한 심령은 결코 침묵할 수 없는 법입니다.

6절부터는 메시아 예언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설명하듯 황소와 염소의 짐승 피로는 우리의 죄를 온전히 없앨 수 없었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영원하고 단번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8절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라는 고백처럼,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오직 아버지를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그 완전한 순종이, 오늘 우리를 의롭게 한 것입니다.

9절에서 다윗은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라고 외칩니다. 복음은 나 혼자 간직하라고 주신 비밀이 아니라, 만방에 외쳐 나누라고 주신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주를 찾는 자들은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며”라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성도의 기쁨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감옥에서도 찬송했던 바울처럼, 사자굴 앞에서도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십자가 앞에서도 순종하셨던 예수님처럼, 성도의 기쁨은 오직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늘 묵상한 네 편의 마지막은 “주는 나를 생각하시오니”라는 가슴 벅찬 복음의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먼지 같고 벌레 같은 저와 당신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명심하십시오. 시편 37편은 악인의 형통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신뢰하라고 가르칩니다. 38편은 죄를 숨기지 말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라고 가르칩니다. 39편은 인생의 날이 한 뼘처럼 짧으니 썩어질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 가르칩니다.

시편 40편은 잠잠히 기다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수렁에서 건지시어 결국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회개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인생의 짧음을 기억하며 영원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소원이 당신의 소원이 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새롭게 된 소원이 하나님의 인도 안에서 성취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07 Jun 2026 06:34: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7. 시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시 33~36)]]></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7]]></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황금 주머니 속에 있는 네 개의 진주 같은 시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노래들은 각기 다른 성령의 거문고 줄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으나, 그 모든 화음은 결국 하나의 위대한 보좌, 곧 ‘하나님의 주권과 영원한 인자하심’을 향해 수렴되고 있습니다.

먼저 33편의 문을 열어보십시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오,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형편이 좋을 때만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파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깊은 밀실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발견한 자가 드리는 보석 같은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질 쓰레기더미와 같은 기쁨을 찾아 헤매지만, 그리스도인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에 두레박을 내립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새 노래’로 찬양하라고 명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어제 내린 만나처럼 썩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 전 이슬을 머금고 내리는 하늘의 떡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려 하지 마십시오. 영적 기근에 처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사람의 말은 아침 안개와 같아서 해가 뜨면 흔들리고 사라집니다. 군주의 약속도, 땅의 법령도 파도에 쓸리는 모래성 같으나, 우리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한 요새의 화강암보다 견고합니다! 

그분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을 때, 어둠은 황급히 겉옷을 챙겨 자기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말씀의 주권이 오늘날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죄와 심판과 절망의 무덤에 갇힌 죄인을 영광스런 의인의 보좌로 옮기십니다.

세상의 열방들을 보십시오. 군대의 많음을 자랑하고, 정치적 계략과 군사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군대는 바람 앞에 날아가는 겨일 뿐입니다. 철마를 타고 방패를 든 용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숨결 한 번이면 낙엽처럼 바스러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영혼은 세상을 바라보며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거룩한 인내입니다.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이 방패 뒤에 숨은 자를 뚫을 수 있는 불행의 화살은 온 우주 전체에서 단 한 대도 없습니다!

이제 발걸음을 옮겨 시편 34편의 험한 골짜기로 들어가 봅시다. 이 시를 쓸 때 다윗이 어디 있었는지 아십니까? 왕궁의 상아 침상이 아닙니다. 그는 가드 왕 앞에서 미친 체하며 목숨을 구걸하다 결국 쫓겨나 아둘람의 어두컴컴한 굴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굴속에서 촛불 하나 켤 수 없었던 그 흑암 중에서 다윗은 무엇을 노래합니까?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역설입니까! 참된 신앙은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환경의 지배자입니다. 

태양이 빛날 때 찬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합니다. 그러나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난의 한복판에서, 내일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캄캄한 밤중에 찬양의 제단을 쌓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에 시민권을 둔 성도의 특권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이 곤고한 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강하다 하는 교만에 속은 착각의 거인들을 물리치시고,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부르짖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은 서재에 앉아 교리를 논하는 신학적 유희가 아닙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음식을 분석하지 말고 입에 넣어 맛을 보십시오! 복음의 달콤함을 혀끝으로 천착하고, 그 보혈의 능력을 영혼의 심장으로 경험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습니다. 

“의인이 고난이 많으나”라고 정직하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폭풍우가 비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황금 같은 약속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고난의 터널은 길 수 있으나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눈물은 밤새도록 침상을 적실지라도, 하나님의 자비의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깨어지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세상이 버린 그 깨어진 사기그릇 파편 같은 우리 마음을 모아, 하늘의 가장 귀한 성전의 기명으로 삼으십니다.

시편 35편에서 우리는 원수들의 거짓 증거와 억울한 비난 앞에 선 한 영혼을 봅니다. 다윗은 사방에서 까닭 없이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을 빼 들어 스스로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법정을 하늘로 옮겼습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소서” 혹시 여러분 중에 억울한 일을 당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이 있습니까? 복수의 잔에 독을 타지 마십시오. 심판의 망치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가 잠잠할 때 하나님의 공의의 칼날이 우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 영혼에 들려오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 “나는 네 구원이라” 이 한 마디면 세상의 모든 비난의 포성은 일제히 침묵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편을 읽으며 다윗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성경의 수박 겉핥기만 하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시고,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 앞에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던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병들었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기도했다고 했으나, 우리 주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며 물과 피를 쏟아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원수를 향해 피를 흘려주신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살렸다면, 우리 역시 어찌 그 길을 걷지 않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불의의 승리는 단 하루 저녁의 아침 안개 같으나, 하나님의 최종 승리는 영원한 정오의 태양처럼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6편은 인간의 참혹한 타락의 심연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제 눈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죄를 먹고 마시는 악인들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인간의 죄악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수렁과 같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이 그 인간의 추악함에서 떠나 하늘을 향할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인간의 죄가 아무리 깊고 깊다 한들, 하나님의 은혜의 높이를 넘을 수 있겠습니까? 

땅 위의 모든 쓰레기더미를 바다에 던져 넣어도 바다를 다 채울 수 없듯이,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악의 악취가 아무리 진동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바다는 그 모든 죄를 완전히 덮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분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아서 요동치 않으며, 그분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아서 우리의 얕은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공의의 바다에 빠져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라는 안전한 방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복음입니까! 진노의 벼락이 떨어져야 마땅할 죄인들이, 구주의 자비로운 날개 깃털 아래로 기어 들어가 평안히 숨을 쉽니다. 그 날개 아래에는 ‘복락의 강수’가 흐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의 시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십시오. 33편은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를 바라보라 합니다. 34편은 신실하신 피난처를 바라보라 합니다. 35편은 공의로운 재판장을 바라보라 합니다. 36편은 죄악을 덮으시는 무한한 속죄의 빛을 바라보라 합니다.

당신의 눈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혹시 여전히 땅의 먼지를 바라보며 한숨 짓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람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요동치고 있지 않습니까? 통장 잔고와 세상의 부와 성공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까? 

시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십시오! 창조주이시고 피난처이시며 재판장 되신 그리스도 예수,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여러분이 받을 모든 심판을 대신 받으신 선하신 목자, 그분만이 여러분을 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쉬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며 그분 안에서 사십시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06 Jun 2026 05:34: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6. 잠깐의 노염과 평생의 은혜 (시 30~3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6]]></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세 편의 거룩한 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깊은 구덩이에서 끌어올리시며, 어떻게 상한 심령을 고치시며, 어떻게 더러운 죄를 은혜로 깨끗이 씻어 주시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세 편의 시편은 한 편의 영적 드라마요, 회개와 고난과 회복의 거룩한 여정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영혼이 울부짖는 소리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영혼이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먼저 다윗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strong>“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시 30:1)</strong>

“끌어내셨다”는 이 말 속에 은혜의 비밀이 있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올라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발버둥 칠 힘조차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전능하신 손이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붙드시고, 끌어올리셨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더러운 손으로, 병든 영혼으로, 우리는 구덩이 속에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덩이에서 왕의 궁정으로, 절망의 밤에서 소망의 아침으로, 사망의 그늘에서 영생의 빛으로 옮기셨습니다.

인간은 병든 존재입니다. 육체의 병만이 아니라 영혼이 썩어 가고 있습니다. 교만이, 탐욕이, 숨겨진 죄악이 영혼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십니다. 그때 놀라운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strong>“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30:5)</strong>

이 구절은 성도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시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자는 영원합니다! 밤은 길게 느껴지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베개에 스며들 때에도, 이미 새벽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금요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땅이 어두웠고, 하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 무덤은 비었고, 부활의 기쁨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도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눈물의 밤이 끝나면 반드시 기쁨의 아침이 옵니다.

명심하십시오! 성도는 평생 형통하기 때문에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평생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평생의 은총을 믿는 자는 잠깐의 노염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가까이합니다.

마침내 다윗은 죽음의 문턱에서 “내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영원한 은총에까지 도달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주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셨습니다. 완전한 신뢰, 전적인 의탁! 몸도, 영혼도, 내일도, 영원도 다 주님의 은총에 맡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 이 고백을 합시다. “주님, 내 삶과 내 사업과 내 장래를 주의 평생의 은총에 맡깁니다. 내 연약한 영혼과 내 영원한 삶을 주님의 영원한 은총에 부탁합니다” 진짜 믿음은 낙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낙심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strong>“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 31:15)</strong>

다윗의 이 고백이 믿음의 정점입니다. 내 삶의 때가 세상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원수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우연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손이 나를 지으셨고, 그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그 손이 나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다윗은 환난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안을 누린 것이 아닙니다. 원수는 여전히 있었고, 위험도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평안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제 시편 32편은 우리를 용서의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기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세상은 부자와 권력자와 건강한 자를 복되다 하나, 성경은 죄 사함 받은 자를 가장 복된 자라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돈은 죽음 앞에서 무용지물이고, 권력은 심판대 앞에서 무너지며, 명예는 영원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의 모든 죄를 씻음 받은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합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속죄 역시 영원한 은총의 열매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진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숨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감옥입니다. 뼈가 쇠하며, 영혼이 메마릅니다. 범죄보다 무서운 것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다윗을 내어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strong>“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시 32:5)</strong>

다윗이 죄를 자복한 그 순간, 십자가의 복음이 다윗을 향해 비추었습니다. 다윗은 장차 흘려질 그리스도의 보혈을 미리 바라보며 자신의 심령을 짓누르던 그 허물과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용서는 얼마나 신속하고 완전합니까!

탕자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달려가셨고, 베드로가 눈물로 회개할 때 주님이 그를 회복시키셨으며, 십자가의 강도가 “기억하여 주옵소서” 할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라고 또 다시 은총의 문을 여셨습니다. 용서는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순례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 손을 잡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시편 30편은 구덩이에서 건짐 받은 자의 찬양이요, 31편은 환난 가운데서도 신뢰하는 자의 찬양이요, 32편은 죄 사함 받은 자의 찬양입니다. 결국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과 연결되고 찬양으로 완성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평생의 은총이 담긴 십자가 복음을 통해 당신 일생의 모든 죄를 사함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의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 복된 은총의 말씀도 당신의 것입니다!

<strong>“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시 32:11)</strong>

구덩이에서 건짐 받은 자도, 환난 가운데 신뢰하는 자도, 죄 사함 받은 자도 결국 한 곳에 서게 됩니다. 그곳은 십자가 아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노염은 잠시이지만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Fri, 05 Jun 2026 06:59: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5. 성도에게 보증하시는 평강의 복 (시 27~29)]]></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5]]></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 편의 시를 통해 하나님을 노래한 다윗의 믿음과 그 믿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다윗은 어둠이 왔을 때 그 어둠과 싸우지 않고 어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strong>“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strong>

성도의 길에 어둠이 찾아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머물러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은 반드시 옵니다. 절망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빛 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면 모든 어둠은 한순간에 달아납니다.

주님은 단지 빛을 비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빛이십니다. 주님은 단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새가 되시는데 누가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악인들과 대적들이 다윗을 삼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넘어진 것은 다윗이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적의 군대가 자신을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두렵지 않고 태연할 것이라는 다윗의 고백은 믿음의 승전가입니다.

믿음은 위험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위험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군대보다 보이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가 더 크십니다. 땅의 병거보다 하늘의 불병거가 더 강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해줍니다.

<strong>“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strong>

여기 다윗이 가진 믿음의 위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가지만 원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왕좌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은 세상의 영광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만을 갈망했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천국의 본질은 황금 길이 아닙니다.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다윗과 같이 성도들을 그의 초막 속에 숨기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감추십니다.

그리고 높은 반석 위에 성도들을 세우십니다. 그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거친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거기서 슬픔은 찬양으로 바뀌고 눈물은 감사로 바뀌며 탄식은 노래로 바뀝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고 말씀하실 때 다윗은 즉시 “주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겠나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것이 복된 영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초청 앞에 즉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감정을 붙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어제 나를 붙드신 하나님은 내일도 나를 붙드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다윗의 믿음의 고백이 그래서 힘이 있습니다.

<strong>“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strong>

인간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린다 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결코 자기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자의 품에 안긴 가장 안전한 사람들입니다.

<strong>“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strong>

다윗은 죽음 이후만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역사하고 지금도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성도 여러분,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서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가장 위대한 전투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성도에게 가장 무서운 고난은 가난이 아닙니다. 질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원수보다 하나님의 침묵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의 외면보다 하나님의 침묵을 더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반석 되신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방향을 잃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광야를 헤매게 됩니다. 다윗은 다른 모든 것보다 “주여 침묵하지 마옵소서. 내 기도를 외면하지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은 침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마지막 선택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사용해야 할 거룩한 무기입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의 표시입니다. 동시에 전적인 의존의 표현입니다.

<strong>“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strong>

인간은 강할수록 자기 힘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 한 번이면 세상의 교만은 힘없이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아무도 높일 수 없고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아무도 낮출 수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권자의 음성을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고,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흔들며,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창조 때 세상을 만드신 그 음성이 지금은 우리의 영혼을 조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strong>“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strong>

성도 여러분, 다윗과 같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노래하게 됩니다. 찬송은 입술의 기술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영혼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영혼을 품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양 떼를 내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고 상한 양을 품으시며 지친 양을 안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양은 모두가 안전합니다. 목자의 손에서 양을 빼앗을 자는 온 우주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묵상한 세 편의 시편에서 27편은 빛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8편은 기도로 지나왔습니다. 마지막 29편은 폭풍을 통과했습니다. 이제 성도에게 남은 것은 평강의 복입니다.

<strong>“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strong>

이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폭풍이 빼앗을 수 없는 평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평강입니다. 혹시 아직도 세상의 기쁨을 붙들고 있습니까? 그 기쁨은 곧 꺼질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꺼지지 않는 평강의 빛입니다. 그분께 나오십시오.

폭풍은 지나갈 것입니다. 원수도 지나갈 것입니다. 눈물도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나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빛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영원히 왕으로 계신 그리스도께만 경배를 돌리십시오.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으로 보증하신 평강의 복을 누리십시오!]]></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hu, 04 Jun 2026 05:54: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4. 성도의 아름다운 장식과 보석, 거룩과 겸손 (시 24~26)]]></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4]]></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24편부터 26편까지 거룩한 계단을 함께 올라가며, 영광의 왕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성도의 구별된 삶을 묵상합니다. 이 세 편의 시편은 언뜻 다른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라는 하나의 큰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편 24편은 하늘의 문을 열듯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는 장엄한 천상의 선언으로 포문을 엽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겨우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울타리의 신으로 제한하지 않고, 영원한 우주의 절대 소유주로 선포합니다.

미련한 인간들은 제 손으로 쥔 얼마간의 재산을 자랑하고 제 알량한 능력을 의지하며 내일을 설계하지만, 성령의 기자는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발등상에 불과함을 못 박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눈먼 소유권을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우리가 가진 것 중 진정 우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을 ‘진짜 우리 것’이 단 하나라도 존재합니까? 우리의 호흡도, 생명도, 흐르는 시간도, 품에 안은 가족도 모두 거룩하신 재판장께서 잠시 맡기신 청지기의 매물일 뿐입니다.

주께서 거두시는 밤에는 우리는 단 한 줌의 흙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결국 모든 육체는 죽어 자기가 주인이라 믿었던 그 차가운 흙 속으로 비참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오직 영원히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만이 흔들리지 않는 유일한 영토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인간의 심장을 찌르는 두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을 가진 거룩한 분이시라면, 죄로 물든 아담의 자손 중 과연 누가 그 엄위하신 면전 앞에 살아서 서 있겠습니까?

이 무서운 질문 앞에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손이 완전히 깨끗한 자가 어디 있으며, 마음의 밑바닥까지 순결한 자가 어디 있고, 거짓의 흔적이 없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율법의 정죄 아래 모두가 죽게 되었을 때, 저 멀리 시온의 산을 홀로 걸어 오르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신 유일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 외에는 죄가 없는 분이 없으며, 그분만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완전한 순종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 같은 비참한 죄인들이 감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을 덧입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반부는 하늘 성문이 진동하는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이는 지옥의 권세를 짓밟은 개선장군이 하늘의 황금 성문으로 당당히 입성하시는 가슴 벅찬 광경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무덤이라는 깊은 수렁에 장사되셨으나, 사흘 만에 사망의 빗장을 부수고 부활하셨으며 마침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터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외쳤습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그때 온 우주를 울리는 승리의 대답이 선포되었습니다.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우리 예수님은 패배하여 겨우 살아 돌아온 사령관이 아니라, 사탄과 죄와 사망의 대가리를 깨부수고 승리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살아 계셔, 피로 사신 교회와 성도들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세상 나라들이 미쳐 날뛰고 흔들려도 우리의 왕은 흔들리지 않으시며, 교회가 사방으로 핍박을 받아도 그분의 통치는 단 일 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제 시편 25편으로 넘어오면, 24편의 웅장했던 나팔 소리가 깊은 골방의 부르짖음으로 바뀝니다. 이는 왕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믿음은 세상의 거친 파도에서 눈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고개의 돌림입니다. 

밀려오는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움의 파도에 잠길 것이요, 가변적인 환경을 바라보면 절망의 늪에 빠질 것이며, 사람을 바라보면 결국 실망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거친 광풍 속에서도 독수리처럼 솟아오를 새 힘을 얻습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아름다운 기도를 이어갑니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시고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미숙한 종교인들은 그저 하나님을 찾아와 제 주머니를 채워줄 야망의 축복만을 구걸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길을 배우기를 갈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거룩함의 고백이 흐르는 시편 26편의 뜰로 들어섭니다. 다윗은 담대하게 외칩니다. “여호와여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니” 이 고백은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에 도취되어 죄가 없다고 뽐내는 교만한 자의 목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비록 연약하여 넘어질지라도, 중심만은 하나님 앞에서 위선 없이 진실하게 살려고 몸부림쳤다는 눈물의 고백입니다. 그는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거룩하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혼을 해부해 주시기를 자청합니다.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대부분의 가짜 종교인들은 자신의 추악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하나님의 조명등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의 영혼은 외식과 위선이라는 영적 나병을 가장 두려워하기에, 차라리 주님의 수술대 위에 누워 점검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다윗은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 길을 단호히 거부하고 돌아섭니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며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구와 깊은 교제를 나누고 어디에 머무는가는 우리의 영적 생사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다윗의 마음이 향한 곳은 오직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막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영혼은,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을 사모하며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묵상한 세 편의 마지막에서 다윗이 선포한 가장 위대한 신앙의 균형에 주목하십시오!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이 문장 안에는 성도가 평생 품어야 할 두 기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피 흘리기까지 거룩하게 살겠다는 단호한 결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철저한 겸손이 있습니다. 거룩한 삶과 은혜를 구하는 삶, 우리는 이 두 가지 보석을 결코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죄악 된 세상을 향해서는 피 묻은 검을 들고 거룩함을 추구하되, 하나님 보좌 앞에서는 오직 그분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 순종하되, 모든 순종의 고백 끝에는 “오직 주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은혜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당신의 거룩과 그 거룩을 지탱해주는 은혜와 접목된 당신의 겸손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은 거룩이요, 그 거룩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보석은 겸손입니다. 잊지마십시오! 은혜는 거룩을 낳고 겸손은 그 은혜를 계속 바라보게 합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Wed, 03 Jun 2026 05:33: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3. 여호와의 양에게 없는 부족함 (시 21~23)]]></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3]]></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되며 가장 분명해야 될 신앙 고백 중 하나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함께 노래해왔던 시편 중의 시편인 23편을 여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strong>“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strong>

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위대한 고백은 궁궐의 황금 보좌가 아니라 거친 들판에서 양의 똥을 치우던 목자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멀리 계신 전능자로 알지 않고 ‘나의 목자’라는 가장 친밀한 사랑의 끈으로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참된 신앙은 교리의 메마른 골격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만왕의 왕을 내 영혼의 구주로 모시는 인격적인 연합입니다. 보십시오, 미련하고 연약한 양의 안전은 그 양이 가진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자의 입을 찢으시는 목자의 강한 팔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거친 광야의 차가운 바위 위에서도, 화려한 왕궁의 침상에서도 오직 하나님이라는 영원한 반석 위에 서 있을 때만 요동치지 않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이 움켜쥐고 더 높이 쌓아야만 만족이 있다고 우리를 속이며 지옥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은 양들은 이미 온 우주의 주인이신 여호와를 소유했기에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육신의 모든 정욕이 채워졌다는 고백이 아니라, 주님 한 분만으로 내 영혼이 과분한 만족을 누린다는 믿음의 승전가입니다.

<strong>“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strong>

양이라는 짐승은 사방의 모든 위협과 사나운 맹수들이 완벽히 사라지기 전에는 절대로 스스로 눕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께서 그 곁에 서 계실 때, 양은 비로소 깊은 평안을 누리며 그 풍성한 꼴 위에 영혼의 몸을 누이게 됩니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무자비한 애굽의 감독관처럼 채찍을 들고 우리를 거칠게 몰아세우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썩어질 양식은 육체의 정욕을 잠시 달랠 뿐이지만, 목자가 먹이시는 푸른 초장의 말씀은 영혼을 영원히 살리는 하늘의 만나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성공의 정점에서도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영혼의 갈증으로 부르짖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가난할지라도 목자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사방이 전쟁터일지라도 하늘의 비밀스러운 평안을 맛보며 깊은 잠을 청하게 됩니다.

이 ‘쉴 만한 물가’는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거룩한 생수이며, 이 생수를 마시지 않고는 그 어떤 성도도 광야를 걸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친 우리에게 먼저 무거운 짐을 지고 뛰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품에서 먼저 깊이 쉬고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strong>“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strong>

양은 시력이 어둡고 미련하여 눈앞의 풀만 뜯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가장 쉬운 비참한 동물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는 울타리가 매 순간 붙들어주지 않는다면, 단 한 걸음도 바르게 걷지 못하고 타락의 나락 아래로 떨어질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찾아오셔서 그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 그저 말로만 위로하는 부드러운 속삭임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시체와 같은 영혼에 하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전능하신 숨결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어떠한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기 이름의 영광’과 그분의 신실하신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나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린 것이 아니요, 결코 변치 않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명예에 묶여 있습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의의 길’은 좁고 험하여 육신이 보기에는 고통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끝은 반드시 축복과 연결된 생명의 길입니다. 미련한 양의 지혜를 의지하여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오직 양을 위해 생명의 길을 여신 목자의 음성을 전적으로 믿으십시오.

<strong>“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strong>

다윗은 평탄한 초장에서는 하나님을 향해 ‘그가’라고 부르다가, 흑암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자 ‘주께서’라고 부르며 주님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듭니다. 고난의 밤이 깊어질수록, 아픔이 더 심해질수록, 세상이 우리를 버릴수록 주님은 더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오십니다.

성도는 환난과 고난이 없는 온실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한복판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무리 어둡고 그늘질지라도, 그것은 단지 그림자로 결코 성도의 영혼을 단 한 터럭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흑암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비결은 내 곁에서 숨 쉬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걸으신다면 그 어떤 광야도 안전한 지름길이 되며, 사망의 골짜기는 오히려 영광의 면류관으로 나아가는 승리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strong>“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strong>

보십시오, 주님의 지팡이는 우리를 바르게 이끄시는 자비의 손길이요, 우리를 꾀는 악한 영의 머리를 부수는 보호의 무기입니다. 때로 그 지팡이가 우리의 살을 아프게 때릴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죄의 길에서 돌이켜 거룩하게 만드시려는 사랑의 매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롱하고 핍박하던 사탄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왕의 잔치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사방에서 원수들이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갈지라도, 목자가 차려주신 식탁 앞에 앉은 성도는 유유히 고기를 씹으며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상황이 좋아야 기뻐하지만, 성도는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때문에 영혼 깊은 곳에서 기뻐합니다. 목자께서 우리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으시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버려진 고아가 아니라, 전능자의 특별한 소유요 사랑받는 자녀라는 왕적인 선언입니다.

하늘의 은혜는 우리 영혼의 바닥을 겨우 축이는 수준이 아니라, 잔의 귀를 넘쳐흘러 이웃에게까지 흘러가는 압도적인 축복입니다. 다윗은 은혜가 간신히 턱밑까지 ‘찼다’고 말하지 않고, 감당할 수 없어 사방으로 ‘넘쳐흐른다’고 소리 높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왜 아직도 갖지 못한 세상의 썩어질 조각들을 세며 불평하고 계십니까? 이미 받은 십자가 구원의 은혜만 세어보아도 우리는 평생 동안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기에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strong>“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strong>

사람은 형편에 따라 우리를 배신하고 떠나갈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끝까지 우리를 붙드십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사울의 시퍼런 칼날 아래서도, 비참하게 쫓기던 광야에서도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이 자신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strong>“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strong>

오, 이 장엄한 시편의 마지막 종착지는 음침한 무덤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늘 아버지가 계신 영원한 천국의 대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로 잠시 눈물 흘리며 지나가는 것일 뿐, 결국 선한 목자의 손에 이끌려 영원한 처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그 처소를 완벽하게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양 무리들이여, 오늘 밤 질병과 가난과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이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온 우주를 향해 담대히 외치십시오!

<strong>“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strong>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Tue, 02 Jun 2026 05:32:3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6.1 죄(Sin)와 죄들(Sins)? (2)]]></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2]]></link>
			<description><![CDATA[본 연구소 고문이시자 예수제자선교회 회장이신 장영출 목사님의 "죄와 죄들"이라는 주제의 두번째 강연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01 Jun 2026 21:15: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24"><![CDATA[생명의 성령의 법]]></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2. 하나님과 연결된 마음의 사모 (시 18~20)]]></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1]]></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의 정금 같은 노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며, 어떻게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어떻게 전쟁 가운데 승리를 허락하시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세 편의 시편은 한 줄기 맑은 강물처럼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18편은 구원받은 자의 찬양이요, 19편은 그 구원받은 자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20편은 말씀을 따라 사는 자가 전쟁터에서 부르는 승리의 기도입니다. 먼저 18편의 다윗의 기도에 주목하십시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기도의 문을 열자마자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선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만,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보다 복을 더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손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감사하며 받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 요새,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보호, 인도, 위로, 용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 안에 충분히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헤매며 필요한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하는 자입니다.

사망의 줄이 그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그를 두렵게 하였으나, 다윗은 사람에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마지막 무기가 아니라 첫 번째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녀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천장에 부딪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반드시 상달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일어나실 때, 땅이 진동하고 산이 흔들리며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께서 결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움직이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사탄보다 강하지도, 죄보다 강하지도, 사망보다 강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특히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흔들리고, 환경은 변하며, 건강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넘어질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정직한 자에게 정직으로 대하시며,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 세상이 교만을 칭찬할지라도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참된 믿음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서, 여리고 앞에서, 골리앗 앞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전진하였습니다. 세상은 돈과 쾌락과 명예와 성공이라는 우상을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반석이시요, 유일한 구원이십니다.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이것이 우리 성도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십니다. 오늘도 살아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아시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시편 18편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반석이시요, 요새이시요,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그리고 시편 19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창조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계시의 책, 곧 성경입니다. 하늘을 우러러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태양을 볼 때 그분의 지혜를, 별들을 볼 때 그분의 광대하심을 보게 됩니다.

무신론은 결코 지식의 결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죄가 낳은 결과입니다. 온 우주가 창조주의 영광을 외치고 있습니다. 자연의 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책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말씀은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고, 죽어가는 심령을 살리며,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금을 사모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모하였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가난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위로할 뿐 아니라 경고합니다. 죄를 지적하고, 잘못된 길을 막아주며, 멸망의 길에서 우리를 돌이키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시편 18편의 반석이 여기서도 다시 나타나십니다. 

이제는 구속자로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분이 바로 이 반석이십니다. 그리고 시편 20편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성도에게도 환난의 날이 옵니다. 그러나 환난의 날보다 더 귀한 것은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환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병거를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분이 승리하셨기에 우리도 승리한 것입니다. 그분의 승리 안에 우리의 승리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반석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같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이름만을 자랑하며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다윗의 승리가 당신의 승리가 되는 이유는 다윗처럼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참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을 사모하는 이유는 다윗이 위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참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다윗보다 다윗이 사랑했던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이 의지했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다윗이 기뻐했던 말씀을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때 당신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된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Mon, 01 Jun 2026 05:23: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1. 전적 타락 위에 피어나는 전적 은혜 (시 14~17)]]></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300]]></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의 거룩한 영토를 거닐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분의 날개 아래 있는 자들이 누리는 안전함을 목도하고자 합니다. 이 장엄한 영적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비참한 파산 선고와 풍성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동시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4편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알리는 하늘의 준엄한 나팔 소리로 시작됩니다. 시인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선언하며, 무신론이 지성의 부족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부패에서 나온 암흑임을 폭로합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인간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며 천지가 흔들리도록 탄식합니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는 이 엄숙한 선언은, 위선으로 분장한 인간의 가면을 찢어버리는 하나님의 칼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높은 보좌에서 인간의 외모라는 거짓 껍데기를 굽어보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도덕이라는 누더기 옷으로 가린 채 의롭다 여길지 모르나, 불꽃 같은 주님의 눈동자 앞에서는 모든 인류가 죄의 포로로 결박되어 있을 뿐입니다.

오, 위대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피를 토하듯 인용한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인간은 제 아무리 몸부림쳐도 제 힘으로 거룩한 보좌에 단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으며, 스스로를 구원할 종교적 사다리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 절망의 구렁텅이가 영광스러운 복음이 선포되는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영적 파산을 처절하게 깨닫지 못한 자는 십자가의 피 묻은 가치를 결코 알지 못하며, 자신의 무능함을 통곡하는 자만이 갈보리의 십자가를 붙들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은 우리를 지옥의 절망에 버려두지 않고,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라며 소망의 불꽃을 피워 올립니다. 구원은 인간의 썩어질 철학이나 종교적 고행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입니다.

이 거룩한 갈망은 시대를 뚫고 지나가 오직 한 분, 영광스러운 메시아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시온의 사자가 되어 죄인들을 피로 사셨으니, 그분만이 타락한 아담의 후예들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영혼의 끔찍한 비참함을 뼈저리게 본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 세상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십자가의 눈물 없이는 결코 그 영광스러운 보혈의 능력과 마주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시편 15편의 문을 열고 다윗이 던지는 엄숙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단순히 좋은 신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사실상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정직한 사람입니까? 공의를 행하는 사람입니까? 마음에 진실한 사람입니까?

성도 여러분,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라면 우리는 모두 문밖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자신의 혀로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누가 단 한 번도 거짓된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까? 누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시편 15편은 우리를 자랑하게 만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릎 꿇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그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능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5편은 결국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로 인도합니다. 오직 한 사람.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으신 분.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으신 분.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신 분. 하나님의 성산에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자격이 있으십니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십니다. 나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15편은 인간의 의를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갈망하게 만드는 노래입니다. 특히 시편 16편은 메시아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는 방이며, 다윗이 눈물로 써 내려간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는 사나운 폭풍우 속에서 바위 틈을 찾아 날아드는 새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의지하던 가짜 피난처들을 모두 불사르고 오직 하나님께만 도망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난의 날에 돈과 권력, 인간을 의지하다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요새이신 하나님께로 달려가 숨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며 세상의 헛된 영화를 배설물처럼 배격했습니다.

슬프게도 세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만을 사랑하지만, 참된 성도는 선물보다 그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시기에, 그분을 얻으면 온 천하를 얻은 것이요 그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파산자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세상의 우상을 탐하며 음녀처럼 달려가는 자들의 결말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돈과 성공, 명예와 자녀조차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사냥하는 우상이며, 결국에는 우리를 철저히 배신하고 실망시킬 오물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굶주린 영혼을 만족시키는 영원한 생명수가 되십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노래했듯, 땅의 기업이 없어도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한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황태자입니다.

이 고독한 순례의 길에서, 주님은 캄캄한 밤중에도 성령의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영혼을 교훈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발치에 머무는 자는 사막 같은 세상에서도 결코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발등상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시편의 절정이자 영광스러운 새벽빛이 터져 나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라는 이 예언은, 사망의 빗장을 부수고 일어나실 부활의 주님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으로 선포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의 차가운 돌문 속에 갇혀 썩지 않으셨습니다. 사망이 어찌 생명의 주를 붙잡아 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죽음을 삼키고 찬란하게 부활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유일하고도 영광스러운 소망입니다. 대장 되신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짓밟고 살아나셨기에 그분께 붙어 있는 우리도 살아날 것이며, 그분의 승리가 곧 우리의 영원한 승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승전가를 부르듯 마지막 고백을 외칩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세상이 주는 쾌락은 아침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주님의 품에서 솟아나는 기쁨은 영원토록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편 17편에서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의인이 드리는 피 끓는 기도를 듣게 됩니다. 사방이 대적들로 둘러싸여 억울하게 찢기는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사람의 바지랑대를 잡지 않고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하며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간의 법정은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 차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밤중에 우리를 찾아오시며 심장 속의 작은 신음까지 정확하게 분별하시고 공의로 판단하시는 재판장이십니다.

다윗은 죄가 전혀 없다는 오만한 완전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하고자 몸부림쳤던 그 중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평가가 어떠할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의 중심을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세력과 악인들이 교회를 흔들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라고 기도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세밀하고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은유입니다.

작은 먼지 하나만 날아와도 눈꺼풀이 번개처럼 닫혀 눈동자를 보호하듯,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당신의 자녀를 그렇게 지키고 계십니다. 그러니 원수가 가로막아도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나를 감추소서”라고 대담하게 선포하며 피하십시오.

악인들이 이 세상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들에게 부를 물려주는 형통함을 보며 결코 부러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몫은 이 땅의 썩어질 흙이 전부이지만, 우리 성도들의 시민권은 저 찬란한 하늘 천국에 있으며 우리의 기업은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 다윗이 남긴 이 마지막 황홀한 고백을 우리의 영혼에 새깁시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이 세상의 고단한 밤이 지나고 영원한 부활의 아침이 밝아올 때, 우리는 마침내 왕이신 주님의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천국의 영광은 황금으로 깔린 길이나 진주로 만든 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피 흘리신 나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고 눈물에 가려져 있지만,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온전히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눈물과 극심한 고난의 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만이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한 낙오자처럼 주저앉지 말고,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네 편이 가리키는 종착지에 주목하십시오. 14편의 인간의 비참한 타락에서 시작하여, 15편의 거룩한 요구를 지나, 16편의 부활의 메시아를 거쳐, 17편의 천국의 소망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했으나 그 위에 그리스도의 전적 은혜가 피어났습니다. 우리의 반역을 그리스도의 순종이 대신했고, 우리의 더러움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대신했으며, 우리의 사망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은 그리스도의 강함이 대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전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때 다윗과 함께 외치게 될 것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un, 31 May 2026 04:52: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50. 전능자 안에서 누리는 승리 (시 10~13)]]></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299]]></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의 거룩한 말씀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 네 편의 시편은 마치 한 영혼이 밤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 아침의 햇살로 나아가는 장엄한 여정을 그린 그림과 같습니다. 

탄식의 어둠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거짓의 폭풍을 지나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을 붙드는 확신으로, 그리고 마침내 깊은 절망의 바닥에서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찬송으로 솟아오르는 승리의 여정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의 궤적인지요! 세상의 바람이 불고, 악인의 번영이 우리를 현혹하고, 친구들의 조언이 우리를 흔들고, 우리 자신의 마음마저 우리를 배반할 때,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인자하심에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먼저 나오는 위 시인의 탄식은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듯합니다! 악인이 교만한 목을 세우고, 가난한 자를 짓밟으며, 연약한 자를 사냥감처럼 노리는 모습을 볼 때, 우리도 똑같이 외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왜 악인이 형통하고 정직한 자가 고난을 당합니까?”

악인은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못한다.” 아,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가장 교활한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침묵의 깊은 골짜기를 먼저 걸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그분이십니다. 영원한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으신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악인은 자신의 탐욕을 자랑하고, 혀로 저주와 속임수를 뿜어냅니다. 사자처럼 숨어서 가난한 자를 덮치고, 그물을 놓아 연약한 자를 잡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외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압제받는 자의 보호자이시며,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보호하심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압제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신 것입니다. 

악인의 번영은 아침 안개와 같아서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11편에서 상황은 더욱 어두워집니다. 친구들이 속삭입니다. “새처럼 산으로 도망하라. 기초가 무너지는데 의인이 무엇을 하겠느냐?”

오늘날에도 이 목소리는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교회가 공격받고,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무너지고, 진리의 터가 파괴될 때,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시인은 담대히 선언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성도 여러분, 육신의 눈은 기초가 무너지는 것을 보지만, 믿음의 눈은 하늘에 있는 보좌를 봅니다! 그 보좌에 지금도 앉아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기둥이 흔들릴지라도, 그분의 보좌는 영원히 견고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금이 불 속에서 정련되듯, 우리도 연단을 통해 그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폭력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지만, 마음이 정직한 자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 얼굴을 보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최고의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그 사랑의 얼굴을 영원히 바라보는 것, 이것이 천국입니다. 하지만 12편에서는 더 무서운 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악인의 칼이 아니라, 그들의 거짓된 혀입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아첨하는 입술로 말하고, 두 마음을 품고 말합니다. 혀는 작지만 온 몸을 불태우는 불입니다. 악인들은 외칩니다. “우리 혀로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의 것이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 아, 인간의 교만이 이처럼 어리석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구원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습니다. 변하지 않고, 순결하고, 영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가의 약속이 변하고, 친구의 말이 변하고, 우리의 결심마저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정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태초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거짓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된 진리를 만납니다.

마침내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 13편에서 시인은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네 번이나 가슴을 치며 외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내 영혼과 더불어 계획하며 종일토록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니이까?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탄식은 믿음 없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기에, 그분의 얼굴이 가려진 듯할 때 이렇게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그리고 마침내 승리의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상황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는 여전히 자랑하고, 문제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바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버림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지 말고 보좌를 바라봅시다.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밤새 눈물이 흘러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악인의 번영을 보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기초가 흔들려도 도망가지 마십시오. 거짓된 말에 무너지지 마십시오. 영적 침체의 어둠이 몰려와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순결한 말씀을 붙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을 굳게 의지하십시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고, 지금도 승리하고 있으며, 영원히 승리할 것입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Sat, 30 May 2026 04:20:0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www.bog.or.kr/?kboard_redirect=32"><![CDATA[스펄전 핵심 설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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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149. 영원한 피난처에 대한 위대한 선언 (시 7~9)]]></title>
			<link><![CDATA[http://www.bog.or.kr/?kboard_content_redirect=1298]]></link>
			<description><![CDATA[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에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어떤 절망의 수렁 속에서 전능자를 의지했는지 그 거룩한 발자취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말씀의 중심은 태양처럼 명백하니,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억울한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날에 가장 확실한 피난처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결코 꽃길만을 걸었던 평탄한 인생이 아니었으며, 도리어 수많은 모함과 불타는 억울함, 그리고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는 연약한 인생의 손을 잡으려고 사람에게 달려가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오늘 고난의 거센 폭풍을 마주한 우리 역시 인간의 얄팍한 계산을 버리고, 오직 은혜의 보좌를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군사력이나 과거의 경험을 단 일 푼도 신뢰하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 날개 그늘 아래로 숨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완전한 절망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결합하는 때가 참된 신앙의 시작입니다. 

오늘날 눈먼 죄인들은 썩어 없어질 돈과 권력이라는 허망한 모래성 속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허덕이다 폭풍 앞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 요새가 되어 주시며, 원수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자에게 환경을 압도하는 믿음의 시선을 허락하십니다.

“건져낼 자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우리의 대적 사탄은 지금도 굶주린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진리를 따르는 성도들을 향해 이 세상에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대적의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우냐가 아니라, 우리의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강하신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실을 왜곡하고 모함으로 가슴을 찢을지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억울함을 정확히 판단하시고 완전한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하게 다가와 영혼을 유혹하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판 파멸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 죽게 만드는 무서운 독약과 같습니다. 

반면 다윗은 눈앞의 고난이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캄캄한 밤중이었음에도, 오직 피난처 되신 하나님의 성품만을 신뢰하며 찬양했습니다. 결과를 보기 전에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믿고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원한 요새를 가진 자의 위대한 특권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제 광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창조주의 위대함을 높이는 장엄한 찬양이 시작됩니다. 어리석은 현대인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교만을 떨지만, 우주의 광활함을 볼수록 창조주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거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연약한 자들의 입술을 통해 당신의 전능하신 권능을 온 천하에 선포하십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끝없는 대우주의 장엄함에 비하면 한 줌의 먼지 같은 우리를, 온 우주의 통치자께서 먼저 기억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가치를 소유와 성공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 영화와 존귀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죄로 망가진 삶을 통회하며 우리의 본향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입술만의 가식이 아니라 자신의 온 심장을 쏟아붓는 ‘전심의 감사’를 만군의 여호와께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황이 좋을 때만 감사하지만, 성도는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의 무덤 속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인해 영원히 기뻐합니다. 세상의 권세와 악인의 성공은 역사 속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라도, 우리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토록 추호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달콤하고도 웅장한 약속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영혼이 환난의 풍랑을 만나 부르짖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시는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어쩌면 고난은 세상에 뺏긴 당신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하나님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살아가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죄악이자 비극의 영원한 시발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정한 세상 속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자의 눈물과 억울한 자의 탄식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성공해 보이는 인생은 결국 무너지지만, 오직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무는 삶만이 영원한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다윗은 인간의 가식적인 힘을 고발하며 오직 전능하신 심판주께서 역사 무대에 개입해 주시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스스로 승리자라 자부하는 인생의 바벨탑은 하나님의 입김 한 번에 먼지처럼 날아갈 헛된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없기에, 오직 전능자의 그늘 아래 머물며 십자가의 대속을 붙드는 자만이 영원한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7편에서 어떠한 원수의 모함 속에서도 하나님 날개 밑으로 피하는 참된 믿음의 정수를 목도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8편을 통해서는 광활한 대우주 속에 깃든 창조주의 장엄한 위대함과, 그분이 우리 죄인들에게 베푸신 과분한 존귀함을 가슴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시편 9편에 이르러서는 깊은 고난과 환난의 한복판에서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터져 나오는 성도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세 편의 시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오직 하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다!”라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세상 권력은 안개처럼 변하고, 믿었던 사람들도 갈대처럼 흔들리며, 눈앞의 환경은 밤낮으로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폭풍이 불어오는 날에는 당신의 영혼을 단 일 초도 보호해 주지 못할 허망한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은 영원토록 단 일 미리도 변치 않고 요새처럼 굳건히 서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품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온 우주의 군대보다 강하신 주님께서 끝까지 지키십니다. 오늘 당신을 짓누르는 억울함과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두려움, 그리고 양심을 찌르는 무거운 죄의 짐이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갈보리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오직 흠 없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만 진정한 죄 사함의 은총과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강, 그리고 영원한 영생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고 절망의 파도가 심장을 삼키려 할 때, 환난 날의 요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지금 당장 뛰어드십시오.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영원한 피난처이십니다!
<br />]]></description>
			<author><![CDATA[Blessing of God]]></author>
			<pubDate>Fri, 29 May 2026 04:55:3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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